월간참여사회 2008년 02월 2008-02-05   888

[김재명의 평화 이야기] 세계로부터 고립된 팔레스타인의 한숨과 눈물

[김재명의 평화 이야기]


세계로부터 고립된 팔레스타인의 한숨과 눈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정책으로 고통 극심


글·사진 김재명 <프레시안> 국제분쟁전문기자, 성공회대 겸임교수 kimsphoto@hanmail.net


이스라엘 관문인 텔아비브 국제공항 활주로에 내리면, 공항 건물 벽면에 ‘이스라엘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라는 대형 간판이 눈에 띈다. 그러나 환영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취재기자들이다. 1967년 6일 전쟁 뒤 40년 넘게 불법적으로 이스라엘 군은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를 점령, 국제사회로부터 비난을 받아왔다. 그렇기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겪는 고통의 실상을 취재하려는 외국 취재진을 반기지 않는다. 팔레스타인을 전 세계 언론의 ‘취재 사각지대’로 남겨두려는 것이 이스라엘 정부의 희망사항이다.


여러 차례 중동을 다녀오면서 ‘고문’에 가까운 공항 보안요원의 심문을 받다보면 아무리 참을성이 많은 사람이라도 짜증이 극에 달한다. 왜 왔느냐, 누굴 만나려느냐, 어디에서 묵을 예정이냐 등등 보안요원의 질문이 30분쯤 이어지면, 결국은 화가 나기 십상이다. 지난번 중동 방문길도 그랬다. 택시비를 아끼자고 공항에서 시내로 나가는 택시를 함께 타기로 한 스웨덴 배낭족 여인 둘은 필자를 기다리다 못해 손을 흔들고 가버렸다. 이스라엘 정부의 외국 취재기자들에 대한 괴롭힘은 갈수록 심해지는 느낌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겪는 고통, 즉 이스라엘이 바깥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은 억압과 공포의 무게에 비례해서일 것이다.


발전소 가동 중단, 추위와 어둠에 떠는 가자지구


이즈음 들려오는 또 다른 슬픈 소식은 지중해변에 자리 잡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더욱 악랄해진 봉쇄정책으로 그곳 사람들이 커다란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로 통하는 검문소들을 모두 폐쇄, 의약품이나 연료 등 일상생활에 쓰이는 필수품들을 실은 트럭마저 발을 묶었다. 그런 봉쇄정책으로 말미암아 가자지구에 단 하나 있는 발전소에 연료 공급이 끊겨 발전기계의 작동이 멈출 수밖에 없게 됐다. 전기가 끊어지자, 가자지구는  암흑천지로 바뀌었고, 가자지구 주민 150만 명 가운데 80만 명이 추위와 어둠에 떤다는 소식이다.


예루살렘에서 자동차로 1시간 30분쯤 달리면 가자 지구로 들어서는 길목에 에레즈 검문소가 보인다. 유럽지역 국경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검문소다. 2000년9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제2차 인티파다(intifada, 봉기)가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예루살렘, 텔아비브, 하이파 등 이스라엘 쪽으로 일하러 가는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출입이 엄격히 통제된다. 검문소에서 일하는 이스라엘 병사들을 빼고 인적이 드물어 썰렁한 느낌마저 든다.


지중해를 바라보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들어설 때마다 ‘회색(灰色)지대’란 말이 떠오른다. 집들은 대체로 색깔이 여린 회색에다 낡았다. 게다가 이스라엘군의 오랜 경제봉쇄로 사람들은 가난에 찌든 모습들이다. 세계은행 통계로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실업률이 50%를 넘고, 하루 2달러의 수입으로 먹고사는 절대빈곤에 내몰린 사람들이 60%다. 가자지구는 상대적으로 서안지구보다 더 상황이 심각하다.


가자지구는 지중해를 따라 길게 직사각형(길이 40km, 폭 10km)으로 뻗은 360㎢의 좁은 회랑이다. 6일 전쟁으로 이스라엘군이 점령하기 전까지는 이집트 관할이었다. 2005년8월 가자지구 21개 정착촌에 살던 유대인들이 떠나가기 전까지는 지구상에서 가자지구만큼 생활공간의 배분이 불평등하게 이뤄진 곳은 없었을 듯하다. 140만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가자지구의 3분의 2에 몰려 사는 반면, 불과 8,500명의 유대인 정착민들이 3분의 1을 차지하고 살았다. 1인당 점유 면적은 너무나 큰 차이가 났다.


이집트와 국경을 맞댄 라파 난민수용소를 비롯해, 가자지구 곳곳에는 난민촌들이 들어서 있다. 그곳 주민들 대부분은 1948년 이스라엘의 이른바 ‘독립전쟁’ 과정에서 대대로 살던 집과 농토를 버리고 떠났던 난민들이다. 이들이 정치적으로 지지하는 팔레스타인 정파는 반이스라엘-반미 강경노선을 걸어온 하마스다.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지도자로 하는 파타는 미국과 이스라엘에 타협적인 온건노선을 걷는 까닭에 가자지구에선 인기가 없다. 이스라엘이 같은 팔레스타인이라도 서안지구보다는 특히 가자지구를 압박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밭 갈아엎고 집 무너뜨려도 눈물조차 말라버린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다녀보면 곳곳에서 이스라엘 군이 저지른 만행들을 볼 수 있다. 탁 트인 시계를 확보한답시고, 그곳 농민들의 생업인 올리브 밭을 불도저로 갈아엎고 난민촌 주택들을 허물어뜨리는 일이 너무나 흔하다. 이들 난민들을 돕는 유엔 팔레스타인난민구호기관(UNRWA) 관계자들조차 “이스라엘 군의 강압조치가 해도 너무 한다”며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UNRWA 대변인은 “난민촌을 파괴하고 점령지역의 민간인들을 강제 이동시키는 강압조치들은 제네바협정의 규정을 위반하는 뚜렷한 전쟁범죄 행위”라고 이스라엘 정부를 대놓고 비난했다.


이스라엘군의 불도저에 밀려 집을 잃은 한 50대 후반의 여인은 “내 평생 동안에 이런 험한 일들을 하도 여러 번 겪어놔서 눈물도 안 나온다”고 했다. 그 여인의 하소연을 들으면서, 일제 식민지 시절 눈물과 한숨의 세월을 보냈을 우리 어머니들의 얼굴이 문득 떠올랐다.  팔레스타인 민초들의 슬픈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들의 얼굴에서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얼굴이 겹쳐진다.


지난 일제 식민지 시절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동양척식회사나 한반도로 건너온 일본 이주민들에게 대대로 살던 땅을 빼앗기고 만주 벌판으로 떠나가야 했다. 조상들의 고달팠던 삶과 오늘날 팔레스타인 민초들이 겪는 고단한 삶이 본질에선 같다. 우리 한민족은 일본 제국주의의 한반도 지배를 체험했다. 팔레스타인 민초들이 겪는 고통은 남의 일이 아니다. 팔레스타인 상황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곧 한반도 평화는 물론 지구촌 평화사랑의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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