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3년 06월 2003-06-01   783

‘도박이면 어때, 돈이 되는데!’

지방자치단체들의 빗나간 주민복지정책


지방자치단체들은 자신들이 유치하려는 경정이나 경륜장, 경견장 등은 가족들을 위한 레저스포츠일 뿐이라고 강변하지만 실상 경정이나 경륜은 주민들의 호주머니를 터는 “사행산업”에 불과하다. 세수 확보를 주민복지 향상에 기여한다는 자치단체들의 기만을 고발한다. 편집자 주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이 경마, 경륜 등 각종 사행산업 유치에 눈을 돌리고 있다. 유치목적은 대내외적으로 분명하다. 세수확보와 이를 통한 주민복지 향상. 서울과 경기도를 제외한 나머지 시·도의 재정이 취약한 실정에서 강구해낸 방안이지만 지자체들의 낙관적 기대와 달리 우려 섞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2001년 경주 레저세로만 4415억 원의 실적을 올린 경기도는 이듬해 하남시에 경정장을 유치했고 광명 역시 경륜장 허가를 받은 상태다. 도는 2005년 이후에는 최소 8000억 원이 넘는 재정을 도박산업으로 조달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2002년 재정자립도가 73.4%로 지난 90년대 95%에 비해 계속 떨어지고 있는 안산시도 2006년 6월까지 2650억 원을 들여 시화호에 경정장을 만들 계획이다. 시는 이번 유치가 고용창출과 안정적인 세수확보에 기여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시의 투자분석팀 관계자는 “오염도시라는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다. 비슷한 규모의 예산이 투입되는 종합운동장이나 문예회관 등이 활용도는 낮고 관리비는 그대로 나가고 있기 때문에 실익 면에서도 경정장사업이 나을 것 같다는 판단에서다”라고 말했다. 시는 구체적으로 2007년 연간 2600억 원대의 매출을 올려 세수입을 123억 원, 2015년에는 세수입 950억 원 정도를 잡고 있다.

전남 화순군은 폐광지역 개발을 위해 2005년 말까지 390억 원을 투자해 경견장을 조성하기로 했다. 진도군 역시 올해부터 2006년까지 70억 원을 들여 앞으로 조성될 진돗개공원 내에 경견장을 설치할 계획이다. 경북 청도군은 전통적인 소싸움 놀이를 세계적 축제로 만들겠다는 의욕을 보이고 있다. 올해 1월 우권법이 국회를 통과해 우권 발매를 준비중이다.

장외사업장에 대한 유치도 치열하다. 수원, 대전 유성 등 전국에 13개소(2003년 3월 현재)가 있는 장외경륜장은 올해 창원경륜장에서도 개장을 앞두고 있다. 용산, 대구 전국 28개소에 분산되어 있는 장외경마장은 올해도 충북 청주, 마산 등 지방주요도시 개장을 위해 접수를 받고 있는 상태다.

도박산업인가, 가족레저산업인가

한국레저산업연구소가 지난 1월 발표한 ‘2002년 사행산업 현황’에 따르면, 경마·경륜·경정 등 사행산업(복권사업 제외)의 시장규모는 무려 11조3178억 원으로 급성장했다. 이는 2001년보다는 29.9% 성장한 것이며 2000년에 비해 2배나 되는 규모다. 전국 최상위 재정자립을 유지하고 있는 과천시의 경마장 매출 덕분으로 경기도는 2001년 4415억 원의 레저세를 거둬들였다. 경상남도는 창원시 경륜장에서 2001년 306억 원, 2002년에는 7969억 원의 레저세 수입을 올려 90%의 급성장을 보였다. 이같은 사행산업 규모의 성장과 세수입 증대가 지방자치단체들의 눈과 귀를 솔깃하게 하는 것은 당연하다.

사업을 유치중인 지자체 관계자들이나 경륜과 경정, 카지노 소관부처인 문화관광부 관계자들은 대개 ‘사행산업’이나 ‘도박산업’이라고 불려지는 것을 한사코 거부한다. 110억 원을 들여 올해 경견장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제천시는 “레저산업”임을 분명히 밝혔다. 부정적 이미지를 벗기 위해 소관부처를 농림부로 추진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세수확보를 위한 특별한 방법이 없는 실정에서 경마나, 경륜 같이 사람이 조정하는 것도 아니고 소액 배팅으로 개들이 순수하게 실력을 겨루게 하는 정도는 괜찮지 않은가. 개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레저산업으로 봐주었으면 좋겠다”고 항변한다. 특히 경견사업 등으로 열악한 농가재정을 살찌울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많은 농촌 지자체들이 이러한 사업들에 달려들고 있다.

그러나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하고 있는 경견장은 제외하더라도 한국레저산업연구소에서 펴낸 『도박산업의 현주소와 지방정부의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2002년 전국 경륜장에서의 하루 1인당 평균배팅 금액은 55만9000원이다. 그러나 경륜장 고객 가운데 150만 원 이하 소득자가 전체 고객의 56%이고 350만 원 이상의 고소득자는 13.5%밖에 되지 않는 것을 보면 도박시설이라는 우려가 나올 법하다. 구미가족상담센터에서 단도박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정태권 관장은 “사람들이 일할 의욕을 잃게 하고 더 나아가서 가정경제를 파탄시킬 수 있는데도 지방정부들이 공식적인 도박을 부추기고 있다”고 못박았다.

사행심 유발로 대박이 쪽박?

지역 안팎에서의 과열경쟁이 제살 깎아먹기를 불러 실제 지자체가 장기적으로 예상하는 수익을 달성할 수 있는 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한 지자체 관계자도 “잡고 있는 수익에 거품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 적자를 보지 않도록 효과적으로 운영하는 수밖에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시장원리에 맡기고 보자”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다른 지역의 도박시설 추가 입지에 따른 고객감소를 예상하지 않고 매출액을 산정해 실현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지자체 입장에서의 재정수입 증가가 곧 지역민의 피해라는 지적도 많다. 서천범 한국레저산업연구소 소장은 “도박산업이 결국 서민들의 주머니에 있는 돈으로 운영되는 것이기 때문에 매출액의 급증은 그만큼 국민들의 손실액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사행심 유발로 지역주민들의 ‘대박’ 꿈이 ‘쪽박’되는 꼴이 지자체에도 해당되지 않는다고 볼 수 없는 셈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려되는 대목은 지역주민들의 사행심을 부추겨 개인, 나아가서는 가정에 폐해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뒤따를 부작용에 대해 치르게 될 사회적 비용을 심도있게 고려하지 않는 것도 문제라는 것이다.

정 관장은 “재정이 열악한 지자체로서는 가장 좋은 수단이겠지만 어쩔 수 없이 택하는 방법일 것이다. 분명 바람직하지 못한 방법이다. 도박자가 늘어나고 가정경제가 파탄나는 것은 예정되는 수순”이라며 나중에 도박치료센터 등을 세우는 것은 “병 주고 약주는 식”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환경의 중요성을 들어 “단도박 프로그램에서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이 정부 탓을 한다. 자신의 의지도 물론 필요하지만 도박에 관심 없던 사람들도 분위기가 형성되면 관심 갈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김선중(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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