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3년 06월 2003-06-01   1036

아내의 시골살이

생태 식단과 공해 덩어리 공산품


채소류는 텃밭이나 들에서 나는 것을 먹지만, 아이들 과자나 손님 접대할 때의 안주, 과일 따위는 필요한 만큼 사온다. 농산물과 달리 공산물은 겉포장에서 속포장까지 모두 공해덩어리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봄이 왔다 싶더니 벌써 개구리가 와글와글 울어 밤에 시끄러울 정도다. 산수유, 진달래와 개나리가 화사하더니, 자두꽃, 복사꽃이 피었다 졌다. 꽃잔디와 매화, 앵두, 살구꽃이 피더니 어느새 사라지고, 텃밭 한켠에는 모란이 부끄러운 듯 소담하게 피었다. 연산홍이 한창이고 카네이션이 어버이날에 맞춰 한 송이 꽃을 피웠으나 호기심 많은 고양이가 물어뜯고 말았다. 오늘은 전봇대 옆에 하얀 둥굴레꽃이 조롱조롱 매달려 있어 앙증맞다. 어제는 아내와 함께 지붕 위 돌기와 일그러진 것을 손보았다. 오랜만에 지붕 위에 오르니 사방에서 솟아오르는 신록이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아내는 앞마당에서 날 올려다보며, “흙을 밟고 살며 사계절을 수시로 느끼는 게 너무나 좋다”고 한다.

처음에 시골 생활의 낭만과 나름의 소신에 도취됐으면서도, 아이들 교육 문제나 출퇴근 문제, 시장 보기 따위에 걱정이 많았던 우리다. 그러나 내 직장이 이곳 시골로 정해진 것은 일종의 ‘천운’이라 보고 서로 단단한 결심을 했었다. 조치원으로 오기 전 아내는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였으나 타 지역 근무를 신청한 지 1년 만에 대전으로 옮겼다.

생태적으로 살기 위해 시골에 산다는 것은 여러 모로 불편하다. 그러나 그 불편함도 나와 아내가 육아를 분담하고 팔순 가까운 노모와 함께 살기에 별로 크지 않다.

내가 하는 일 중 하나는 아내가 남긴 설거지를 어머니가 보시기 전에 하는 일이다. 보시면 한사코 당신이 몸소 하시려 하기 때문이다. 또 말씀은 안 하지만 아들이 직접 설거지하는 것이 언짢을지 모른다. 그래도 나는 자주 어머니 앞에서 한다. “요즘은 모두가 함께 하는 세상”이라고 말씀드리면, “참 좋아진 세상이제?” 하신다. 옛날 할머니치고 신식 할머니다. 물론 가끔 세대차가 나타나지만 ‘세대차’라 생각하면 별 탈 없이 넘어간다. 예컨대 음식 오래된 것 처리하는 문제 하나를 두고서도 어머니는 아까워서 내버리지 못하지만 우리는 ‘10원 아끼려다 1000원 버리는 격’이라며 포기하자고 한다.

행복이 불편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아내는 귀가할 때 읍내에서 장을 봐온다. 가끔 나도 간다. 아직 여기는 시골이니 ‘5일장’이 있어 풍취가 있다. 또 읍내에는 비교적 큰 슈퍼가 있어 장보는 일도 그리 힘들지는 않다.

채소류는 텃밭이나 들에서 나는 것들을 쌈으로 싸 먹지만, 아이들 과자나 손님 올 적에 안주, 과일 따위는 필요한 만큼 사온다. 그런데 농산물은 거의 쓰레기가 없지만 공산물은 겉포장에서부터 속포장까지 모두 공해 덩어리다. 재활용 쓰레기는 따로 자루에 담아 매주 수요일 아침에 1㎞ 떨어진 마을 한가운데 큰 길 옆에 갖다 놓는다. 일반쓰레기는 파는 봉투에 담아 역시 마을로 내려가 한켠에 놓아두면 가져간다. 음식물 쓰레기는 버릴 것이 없다.

아내는 시골 생활에 대해 예단하는 것은 금물이라고 강조한다. 가상 경험이나 피상적 이해에서는 생태적 시골 생활이 불가능하고 불편할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 생활 경험을 하다보면 그 과정에서 그런 두려움과 불편함이 신기하게도 “깨지고 없어진다.” 직접 살아보는 과정과 체험 속에 자기도 모르게 두려움이 사라진다는 말이다. 생활 속에 소록소록 피어오르는 행복감이 불편함을 직접 줄이거나 더 이상 불편함으로 느끼지 못하게 한다. 심하게 말하면 시골 생활에 ‘중독’ 된다고나 할까? 이것은 너무나 신기해서 직접 살지 않으면 못 느낀다. 아내 말대로 “행복감이 불편함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나는 예전에 이미 시골에서 생태적으로 사는 한 선배께서 “시골 생활이오? 혹시 듣는 사람이 시샘할까봐 겁이 날 정도지요”라고 한 말이 실감난다.

그러면 불편함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로 아내가 느끼는 행복의 원천은 어디에 있는가? 아내는 간단히, “사람이 자연의 한 부분임을 느끼는 것 자체가 행복이 아니냐” 한다.

“사계절을 몸으로 느끼면서 사는 것, 그 중 겨울에서 봄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너무나 좋다. ‘꼭 봄이 올 거야!’라는 믿음을 갖고 사는 것, 이건 마치 힘든 세상에서 ‘희망’을 꿈꾸는 것과 통한다는 생각이다. 봄이 오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져 무조건 들로 산으로 나가 걷고 싶다.” 문만 열면 땅이고 나무고 모두가 자연이니까.

자연이 주는 다른 기쁨으로는 동식물의 재롱과 변화이다. 까치, 딱따구리, 비둘기, 매, 재두루미, 참새, 휘파람새, 청둥오리, 꿩, 청설모, 다람쥐, 노루 등 야생 동물은 너무나 활기차다. 집에 기르는 고양이는 토끼와 친구가 되기도 한다. 고양이가 새끼 낳는 것도 보여준다. 강아지 두 마리는 말하는 듯 쳐다본다. 이 동물들의 소리나 표정, 이것은 책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느낄 수 없다. “가공된 드라마에서는 결코 못 느끼는 짜릿한 감수성을 자신 안에서 키우는 느낌이다. 그래서 사람은 신체만 자란다고 온전한 것은 아니라 본다. 논리와 더불어 감성이 풍성히 자라야 온전한 성장이 된다.”

그런데 아마 자식 교육 문제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가장 힘든 문제로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중학교까지는 이곳 생활이 아이에게 더 좋다.” 아이들이 자전거 타고 녹색 많이 보고 동물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 자연을 소재로 소꿉장난 하는 것, 연못에서 우렁이 잡기, 땅 속 지렁이 만져보기, 뱀을 보아도 죽이려 하지 않는 것, 애기똥풀 노란 즙도 내 보고, 네잎클로버도 찾아보는 것, 이 모든 것이 책보다 더 소중하다.

선생님 시골집 일일체험

자연과 가까이 살면서 느끼는 이 정서가 나중에 커서도 ‘마음의 고향’이 되어, 어려운 일 있어도 기억할 수 있고 편히 쉴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이 될 것이라 본다. 또 삶의 어려운 문제를 자연의 이치로 풀어갈 지혜도 얻을 것이다.

특히 아내는 교사이기에 시골 생활을 맘껏 활용할 수 있다. 아내가 자연을 보고 만지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모두 수업의 생생한 재료가 된다. 예컨대, 도시 생활하는 선생은 애기똥풀 보여주기, 봉숭아 물들이기, 도롱뇽 알 부화시키기 등을 가르치기 어렵다. 아내는 “아이들에게 책보다 자연의 직접 경험이 백 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대개는 책을 많이 보는 어린이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연에 대한 직접 경험이야말로 최고 좋은 책이 아닐까 한다.” 직접 느끼고 생각하게 하는 것, 이것 때문에 아내는 올해도 반 아이들에게 ‘선생님 시골집 일일 체험’의 시간을 가졌다. 불편함이 있지만 아이들과 행복감을 같이 나누기 위해….

강수돌 고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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