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3년 06월 2003-06-01   1575

풀뿌리 시민운동을 찾아(5) “부산 외국인노동자 인권을 위한 모임”

아무도 이들을 말릴 수 없다


월급 45만원,일요일에도 출근한다. 처리해야할 일도 하루해가 짧을 정도로 많다. 이러한 노동조건에서도 다른 누군가의 권익을 위해 밤낮없이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부산 외국인노동자 인권을 위한 모임” 활동가들이 그 주인공. 이주노동자를 위한 기본적 인권가이드라인도 없는 한국사회에서 이들이 해야할 일은 끝이 없다. 편집자 주

‘지하철 파란색 노선을 타고 20번 부전역에서 내리세요. 3번 출구로 나와 길을 따라 100미터 정도 걸으면 사거리가 나오는데, 대각선 방향으로 건너야해요. 물고기가 그려진 큰 횟집간판이 보일 거예요. 이 건물 4층으로 오시면 됩니다.”

척 보면 안다. 수백 번은 안내해본 솜씨다. 초행자가 어디에서 헤맬 지 정확히 알고 있다. 한국어에 익숙지 않은 외국인을 위해 색깔과 숫자로 알려주는 배려가 느껴졌다.

한 걸음에 찾아간 ‘부산 외국인노동자 인권을 위한 모임(이하 부산인권 모임)’ 사무실은 북새통이었다. 상담전화며 발송이며 말걸 틈도 없이 바쁜 활동가들, 회의하러 온 타 단체 활동가들로 작은 사무실은 활기가 넘쳤다. 그 가운데 눈에 띄는 누군가가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스물다섯 살의 청년, 보비 씨다. 이곳 부산에 온 지 벌써 3년 5개월이란다. 산업연수생으로 왔는데 2년 연수기간을 마친 후로는 불법체류 상태다. 한국은 동남아시아를 비롯해 저개발국가에게 비자발급이 까다롭기 때문에 그쪽 지역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은 비자를 포기하고 불법체류자로 지내는 일이 다반사라고 한다. 한국말이 능숙한 보비 씨는 현재 기계부품공장에서 선반기계 일을 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 부산인권모임은 삶의 터전이나 마찬가지다. 한국어도 이곳에서 배웠다. 이젠 한국생활에 익숙할 것 같은데,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일까. 망설임 없는 대답이 나왔다. “가족들을 보고 싶은 것이죠”.

울산과 함양에서도 찾아오는 ‘무료진료소’

부산인권모임은 1996년에 인권상담을 시작으로 창립되었다. 손발이 잘리는 산재사고 뿐 아니라 심각한 임금체불 그리고 폭행과 구타 등의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인권유린 상황을 접하면서 시작한 상담이었다. 1997년부터는 ‘한글교실’과 ‘한국문화 배우기’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했다. 이 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이주노동자를 위한 무료진료소 운영’이다. 1997년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매주 일요일마다 열리는 ‘무료진료소’는 의료사각지대에 놓인 이주노동자들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로 자리한 지 오래다. 지금은 멀리 울산이나 함양에서도 찾아올 정도.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가 치과진료를, 부산 좌동성당의 의료인 모임 ‘하늘약손’이 일반 진료를 전담하고 있다. 다행히 대부분은 간단한 치료를 요하는 정도지만 때로는 큰 병이 발견되어 안타까움을 더하기도 한다. 결핵, 심장병 등 큰 수술이나 장기치료를 요할 때는 부산인권모임이 나서서 모금운동을 하기도 하지만 수술비만큼의 돈을 모으기는 쉽지 않다. 이곳 ‘무료진료소’에는 의사와 환자만 있지 않다. 소통의 다리가 되어줄 통역도우미들과 간식후원자 등 60여 명이 매주 동참한다.

계절이 바뀌면 꼭 놀러간다

의료서비스 외에 부산인권모임이 강조하고 싶은 활동은 ‘이주노동자와 놀러가기’다. 어렵게 얻은 휴일이 되어도 마땅히 갈 곳도 없고 가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정기적으로’ 놀러 가는 것이다. 봄과 가을에는 야유회, 여름과 겨울에는 캠프를 마련한다. 1997년부터 꾸준히 진행된 캠프는 이제는 매번 100여 명이 참여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얼마 전에는 경주에 다녀왔는데 이때도 150명이 넘는 이주노동자들이 참여했다.

물론 부산인권모임의 주 활동은 상담이다. 전화는 물론 한글, 영어, 인도네시아어로 운영되는 홈페이지에서도 실시간 상담이 이뤄지고 있다. 상담일지에는 손가락을 잘리고도 산재처리는커녕 임금체불상황에까지 처한 필리핀 노동자 제리의 사연과 이에 대해 부산인권모임이 사업주와 한판 싸움을 해가며 체불된 임금을 받아냈던 상황이 생생히 올라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입국과 출국에서부터 한국의 노동법 등의 기본 정보와 관련 법규를 알려주고, 부당해고나 임금체불, 산재 등 이주노동자가 겪게 될 상황을 케이스별로 소개되어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부산인권모임이 최근 가장 관심을 가지는 쪽은 ‘한국인 교육’이다.

“처음에는 이주노동자 문제가 너무 심각해서 다른 데로 눈을 돌릴 수가 없었어요. 지금은 생각이 달라요. 결국에는 바로 우리 문제라는 것이죠. 다르기 때문에 차별 받는다? 정상적인 사회는 아니죠. 우리사회의 성숙정도가 그 정도라는 말이겠죠. 그래서 예전에는 이주노동자들에게 권리를 알려주는 모임 만드느라 바빴는데, 지금은 한국사람을 위한 인권교육에 더 많은 노력을 하죠.” 그러고 보니 벽에는 각종 ‘인권교육 포스터’가 잔뜩 붙어 있다.

“토요일에 쉽니다”

부산경남지역에 있는 이주노동자는 3만여 명. 전국적으로는 30만 명이 넘는다. 이미 한국사회 구성원인 것이다. 그러나 이 구성원에 대한 준비는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7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상담이 들어와요. 상담을 하고 있으면 세상은 전혀 변화가 없는 것 같아요. 우리가 이렇게 활동해도 바뀌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 절망스럽죠.” 그러나 절망을 말하는 순간에도 정귀순 대표의 눈빛은 빛난다. 절망하기에는 해야할 일이 너무 많은 것이다. “우선 제도마련이 시급합니다. 인권침해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죠. 지금은 산업연수생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중요한 것이 의료문제예요. 일하러 왔다가 건강하게 돌아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어요?” 부산인권모임은 아예 본격적인 사회의제화에 나서기로 했다.

이 외에도 부산인권모임이 하고 있는 일들은 열 손가락이 부족할 정도다. 기본적으로 해오던 상담사업, 신문발행, 한글교실 외에도 아프간 난민지원 모금이나 아프간 팔레스타인 사진전 등이 진행되고 있다. 특히 “Asian Workers’ News”는 정보에 대한 통로가 없는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신문이다. 매월 2회 영어, 인도네시아어, 베트남어, 중국어판으로 찍힌다.

부산인권모임은 250여 명이 내는 후원회비로 운영된다. 전체 재정의 60%가 회비, 나머지는 프로젝트 지원사업이나 해외기금을 받고 있다. 상근활동가의 월급은 45만 원, 대표든 간사든 5명의 활동가가 똑같이 받는다. 얼마 전에 5만 원 올랐다고 웃는 모습을 보니, 정말 못 말릴 사람들이란 생각이 든다. 급여만이 아니다. 무료진료를 위해 매주 일요일에도 ‘당연히’ 출근한다. “대신 토요일에 쉽니다.”라며 문제될게 없다는 반응이다. 많은 노동자들이 누리고 있는 주5일제도 이들에게는 먼 이야기다. 다른 사람의 권익을 위해 자신의 권리는 반납한지 오래다. 이주노동자들이 다양한 사회구성원으로 우리와 함께 살아갈 수 있을 그날까지는 아무도 이들을 말릴 수 없을 것 같다.

최현주(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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