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6년 09월 2006-09-01   883

전쟁을 먹고 사는 나라

아메리카 대륙의 토착민들을 학살, 특정지역에 거의 가두다시피 해버린 미국의 이른바 ‘서부 개척시대’는 미국의 전쟁체제를 만든 기초이다. 이 선을 계속 서쪽으로 연장해보면 그것이 곧 1898년 필리핀에 대한 식민지 점령정책이었고, 남쪽으로는 쿠바를 자신의 영토로 지배해버린 전쟁으로 귀결된다.

미국사에 면면히 흐르는 제국주의

이 미국역사 속에 나타난 동선을 유심히 주목해보면, 우선 인종주의가 있고 무차별 살육과 무제한적 팽창주의가 특징인 것을 알 수 있다. 이러면서 미국은 제국의 시대를 향해 돌진한다. 16세기 이래 세계 체제적 연관구조를 가지고 있던 자본주의는 제국의 시대를 맞이하면서 보다 폭력적이고 악랄해져갔다. 자본의 지속적 축적과 그 구조의 확대 재생산이라는 목표를 위해 제국은 거대한 폭력으로 무장해갔고 여기서 패권을 다투는 전쟁은 거의 불가피한 역사의 현실처럼 되었던 것이다.

미국은 그래서 뉴욕 주를 ‘제국의 주(엠파이어 스테이트)’라고 불렀으며 뉴욕 주의 한복판에 ‘제국빌딩(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세웠다. 필리핀과 쿠바를 점령하더니 20세기 초반에 들어서면 카리브 해안의 섬들이 차례차례 미국의 기지나 식민지, 보호령으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미국의 대외정책 실상을 당대 최고 진보적인 지식인 스코트 니어링은 생생하게 고발하고 있다. 토착민 학살은 보통이고 국가를 자신의 입맛에 맞게 바꾸어버리는 일은 당연했다. 냉전 이후 미국이 CIA를 앞세우거나 제3세계에 군부정권을 옹립하는 과정에서 저질렀던 죄악들의 원형이다.

미국은 부시 정권에 들어와 갑자기 전쟁국가 체제를 갖춘 것이 결코 아니다. 이미 이렇게 오랜 세월을 거쳐 군부체제가 미국 정치와 외교의 막강한 핵심세력이 되었고, 냉전기에는 완전한 주도권을 확립했던 것이다. 냉전이 와해되면서 위기를 느꼈던 이들 전쟁주의 세력들은 새로운 적을 찾아 나섰고, 이라크, 코소보에 이어 아프가니스탄과 다시 이라크, 그리고 이란 등을 정조준했던 것이다. 물론 여기서 우리는 국가가 아닌 테러조직 또는 세력이라는 애매한 개념으로 적이 생산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부시 체제가 이전과 확실하게 구별되는 것은 전쟁 논리를 애써 정당화할 이유가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9·11은 미국 대중들에게 전쟁체제의 불가피함과 정당성을 부여했다. 전쟁체제를 변호할 논리를 일부러 개발할 필요가 사라졌다.

제국주의의 세계화

전쟁이라는 미국의 국가적 폭력 행사는 이로써 미국의 자본주의 세계체제를 방어하고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세력을 폭압적으로 토벌하는 힘이 되었다. 냉전시기처럼 다만 봉쇄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진멸시켜서, 그 폐허 위에 미국이 원하는 정치경제적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과정에는 민간인들의 희생을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가 구조화된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에 대한 학살 과정을 통해서야 비로소 그들이 차지하고 있던 땅을 자신의 영토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민중들을 학살하고, 레바논 민간인들을 학살하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불가피한 폭력이 되고, 결국 미국의 이상과 가치가 실현되는 공간이 확대되는 것으로 이는 정당화된다.

“중동 민주화”라는 구호도 민주화가 아닌, 점령정책에 기초한 식민지화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전쟁, 즉 침략과 점령으로 민주화를 이룩할 수 있는 가능성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전쟁국가 미국의 제국주의적 욕망만이 실현되는 현실이 펼쳐질 뿐이다.

그런 까닭에, 가령 전시작전통제권이 미국의 손에 있다는 것은 위험천만이다. 전쟁을 추구하는 국가는 전시작전통제권을 평화를 위한 도구로 사고하지 않는다. 비용과 기타 여러 가지 논란이 있지만, 그건 모두 폭력으로 무장한 체제를 중심으로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의 결과이다. 평화를 위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전쟁국가의 손에서 우리의 군을 움직일 수 있는 권리를 탈환해 와야 한다. 아니면, 우리는 이 인류역사에서 가장 무섭고 거대한 전쟁국가 체제의 위력에 그대로 빨려 들어가고 말 수 있다.

미국의 실체, 냉엄하게 인식해야

솔직하게 현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미국은 엄연히 제국주의 국가이다. 폭력을 앞세워서라도 자신의 국가적 이해를 관철하려는 공포의 무장체제이다. 이 무장체제 속에는 뿌리 깊은 인종차별주의와 종교화된 선민의식, 그리고 탐욕스러운 팽창주의가 날마다 숨쉬고 있다. 자본의 제국은 이렇게 유지되고 있다.

민주주의는 투쟁의 피를 먹고 자란다고 했던가? 그러나 미국은 제국의 폭력으로 희생된 이들의 피를 먹고 팽창하고 있다. 모세는 대제국이었던 고대 이집트의 군주 파라오 앞에서 나일 강에 지팡이를 담근다. 그러자 나일 강은 핏빛으로 바뀐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고대 이집트 제국의 풍요, 그 근원을 이루는 나일 강의 밑바닥에 히브리 민중들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고발이다. 모세의 고발은 오늘날 미국을 향해서도 여전히 동일하게 적용된다.

전쟁국가 미국. 결코 적당히 볼 일이 아니다. 외교정책차원에서 어떻게 이런 미국을 대할 것인가의 전략 선택에는 여러 고민이 있어야 하겠으나, 그 출발점에서 우리는 미국이 어떤 국가인지 결코 착오 없이 인식하지 않으면, 민족과 이 나라의 미래에 비원(悲願)의 한을 품게 될 것이다.

이 땅에 자신들의 군사력을 주둔시킬 기지에 대한 저 무제한의 욕망과 폭격훈련장에 대한 무도한 요구, 그리고 환경파괴와 오염을 서슴지 않는 나라의 양식에 대해 순진한 기대를 하는 자가 당연히 어리석다. 외교는 냉혹한 현실인식에서 출발하지 않고서는 재앙이 된다.

< 미국이 지난 100년 동안 관여한 테러 및 전쟁 >

필리핀과 전쟁, 1899-1902·중국 의화단 진압 군사원정, 1900-1901·파나마, 콜롬비아 상륙, 1900-1902·사마르섬, 필리핀 레에테섬의 이슬람교도에 대한 군사작,

1903-1904·파나마 운하 영구점령, 1903·산토도밍고 침공, 1904·조선 상륙, 1904·쿠바 점령, 1906-1909 니카라과 침공, 1910·온두라스 침공, 1910-1911·중국 상륙, 베이징 침공,

1911-1912·파나마 침공, 1912·터키 상륙, 1912·니카라과 침공, 1912-1915·멕시코 상륙, 1912-1916·산토도밍고 점령, 1916-1925·제1차 세계대전 참전,

1917-1918·파나마 치리키 점령, 1918-1920·신생국 소련 침공, 1919·코스타리카 침공,

1919.과테말라 침공, 1920·파나마, 코스타리카 침공, 1921·중국에 무력개입,

1922-1941·온두라스 침공, 1925·니카라과 침공, 1926-1933·온두라스 침공,

1931·쿠바 연안 정찰, 1933·중국 양자강 연안 점령,

1937·중국 광동, 태평양의 엔더베리 점령, 1938·그린랜드 항구 점령,

1941·아이슬랜드 점령, 1941·한국 전쟁, 1950-1953·이란의 모사디그 정권 전복,

1953·중동 위기 선동, 1958·케모이섬, 마쓰섬 주변에서 무력시위,

1958·유-2 첩보기 소련 영공 정찰, 1960·콩고에서 ‘유엔 군사작전’ 선동,

1960·베를린 위기 선동, 1961·통킹만 무력도발, 1964·베트남 전쟁,

1964-1972·도미니카 공화국 내정개입, 1965·엔크루마 정권 전복,

1866·라오스, 캄보디아 무력개입, 1970·칠레 아옌데 정권 전복,

1973·포르투갈에서 파괴활동, 1974-1975·오스트레일리아 노동당 정권 전복,

1975·콩고인민공화국 정권 전복, 1977·이란에 대한 군사행동,

1981·파나마의 토리호스 암살, 1981·인디라 간디에 대한 음모,

1981·폴란드 내정간섭, 1980-1984·아프가니스탄 군사개입,

1980-1984·엘살바도르 내전 군사개입, 1981-1983·니카라과에서 군사도발,

1981-1983·시드라만에서 리비아에 대한 군사도발, 1982·걸프전,

1990-1991·소말리아 무력개입, 1992-1995·수단, 아프가니스탄 미사일 공격, 이라크 공격, 1998·유고연방 침공, 1999·아프가니스탄 침공,

2001-·이라크 침공, 2003-.

김민웅 성공회대 사회과학 정책 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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