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6년 09월 2006-09-01   1498

아메리칸 드림의 허구

미국은 꿈의 나라였다. 오죽하면 ‘미국의 꿈(American Dream)’이라는 말이 만들어졌을까? 그것은 무엇보다 가난한 사람도 열심히 노력하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뜻했다. 실제로 미국의 역사는 이런 성공담으로 가득 차 있다. ‘미국의 아버지’ 벤자민 프랭클린이 그렇고, ‘강철왕’ 앤드류 카네기가 그렇다.

1960년대 말 패티김이 불러서 큰 인기를 얻었던 <하와이 연정>이라는 노래는 ‘미국의 꿈’을 지극히 낭만적으로 그렸다. 이 노래를 들으며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나라’ 미국에서 풍요롭게 사는 꿈을 꾸었다. 패티김의 남편이었던 작곡가 길옥윤은 슬라이드 기법으로 연주하는 하와이안 기타의 낭만적 선율로 많은 사람들의 혼을 쏙 빼놓았다. 그들에게 미국은 풍요로운 나라일 뿐만 아니라 말 그대로 ‘아름다운 나라’로 여겨졌다. 그리고 이 나라의 지배층과 부유층은 스스로 미국의 한 부분이 되어 엄청난 이득을 챙길 뿐만 아니라 자식들을 미국에 유학보내거나 이주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미국 신화를 이루기 위한 기회의 땅 미국으로

한국전쟁과 분단을 배경으로 한국에서 미국은 더욱 더 강하게 신화화 되었다. 그러나 ‘미국의 꿈’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신화는 세계적인 것이었다. 이 신화는 ‘미국 예외주의’라는 논리로 이론화되기도 했다. 그 뿌리도 상당히 깊다. 그리고 우파만이 아니라 좌파도 이런 논리를 적극적으로 제시했다. 예컨대 카를 마르크스도 미국을 ‘역사발전법칙’의 예외지역으로 설명했고, 그의 가장 강력한 실천적 후계자인 레닌은 ‘사회주의란 테일러주의 더하기 전력’이라는 식으로 미국을 극찬했다. 레닌식 마르크스주의를 넘어서 서구 마르크스주의의 길을 연 그람시도 ‘포드주의와 미국주의’라는 글에서 미국의 예외성과 선진성을 극찬했다. 마르크스주의에서 반마르크스주의로 돌아선 좀바르트라는 독일의 경제사학자는 100년 전에 ‘미국에는 왜 사회주의가 없는가?’라는 논문을 써서 미국의 예외성을 더 구체적으로 밝히고자 했다. 이런 모든 주장의 바탕에는 남북전쟁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영국을 따라잡고 세계 제일의 공업국이 된 ‘미국의 힘’과 신분이 낮고 가난한 사람들도 노력과 능력에 따라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미국의 꿈’에 대한 동경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은 어떤가? 오늘날 미국의 꿈은 크게 퇴색한 상태이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꿈을 가슴에 품고 미국을 찾아가고 있다. 수많은 중국인들이 목숨을 걸고 태평양을 건너고, 수많은 멕시코인들이 목숨을 걸고 사막을 건넌다. 그들 중의 몇 명은 미국의 꿈을 이룰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는 기껏해야 하층민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으며, 그 상태는 대를 이어가며 계속되기 십상이다.

미국의 꿈, 그 무서운 실상

오늘날 미국의 가장 큰 문제는 불평등이라고 한다. 미국식 신자유주의는 사유화의 확대와 승자독식을 두 축으로 한다. 두 가지 모두 불평등의 심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미국의 남미화’가 추진되고 있다는 높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미 상무부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빈곤선인 1만 9157달러(약1,780만 원) 이하의 연수입으로 살아가는 빈곤층 인구는 2000년 3,160만 명, 2002년 3460만 명, 2004년 3,700만 명으로 계속 늘어나고 있다. 소득불평등의 정도를 보여주는 지니계수는 0.46으로 대단히 높다. 사실 OECD 30개 회원국들 중에서 미국은 지니계수가 가장 높은 대단히 불평등한 국가이다. ‘빈곤층에 가까운 집단’을 보면 문제는 더욱 더 심각해진다. 이들은 빈곤선인 1만 9157달러에서 그 두 배인 3만 8314달러 사이의 연수입을 올리는 사람들인데, 약 5,400만 명의 인구가 여기에 해당한다. 2004년 현재, 빈곤층과 이 집단을 합하면 약 9,100만 명에 이른다. 미국 전체 인구는 3억 명을 넘어 섰으니, 전체 인구의 30%에 조금 못 미치는 수치다. 반면에 CEO들은 일반 근로자의 연봉을 하루에 벌기도 한다. 상층과 하층의 차이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런 문제는 범죄로 이어진다. 인구 10만 명당 강력범죄 발생 건수는 미국이 145건이지만, 지니계수가 0.28로 소득이 상당히 균등한 노르웨이는 48건일 뿐이다. 이런 사회적 배경 속에서 ‘로보캅’과 같은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마약의 남용도 퇴색한 미국의 꿈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마약 소비국이다. 미국의 하층민들은 마약에 빠져서 고단한 삶을 잊고자 할뿐만 아니라 중산층에게 마약을 팔아서 생계를 이어가려고 한다. 영화 <스카페이스>가 잘 보여주듯이 마약은 미국의 하층민이 미국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이다. 무너진 미국의 꿈에서 범죄와 마약의 문제가 자라나면서 총기의 소지로 말미암은 문제가 더욱 더 커지고 있다. 미국인이 소유하고 있는 총기의 수는 미국인의 수보다 많다. 이러한 총기 소지의 자유는 저 식민지 시대의 ‘자유인’ 이데올로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이 이데올로기는 마이클 무어가 <볼링 포 콜럼바인>에서 잘 보여주듯이 총기업자들이 최대이윤을 올리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미국 바로알기

10년 전에 6살 어린이를 죽이고 해외에서 도피생활을 해 온 미국인이 태국에서 잡혔다. 죽은 어린이의 부모는 살해범으로 몰려서 오랫동안 이중의 참극을 겪어야 했다. 어머니는 몇 달 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 가족의 변호사는 “램지 가족의 삶은 미국의 불공정함을 보여주는 비극이며, 궁극적으로 사람들이 이를 통해 무언가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FBI나 CSI에 대한 환상의 이면에서 국민에 대한 감시와 폭력과 불공정 수사의 문제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것은 인종차별과 계급차별의 문제를 더욱 악화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기도 하다.

니티 그리티 더티 밴드의 유일한 히트곡인 <아메리칸 드림>은 자메이카 해변에서 아가씨들과 바다를 즐기며 놀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의 꿈을 노래한다. 그런데 이런 ‘소박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미국은 세계를 대상으로 전쟁을 벌인다. 이스라엘을 지원해서 레바논의 양민들을 학살하고 있다. 지구온난화를 완화시키고자 하는 세계의 노력에 결코 동참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미국의 꿈은 소박한 꿈이 아니라 ‘무서운 꿈’이다.

홍성태 참여사회 편집위원장, 상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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