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도덕적 해이, 누가 해이하단 말인가
제윤경 (주)에듀머니 대표
폭풍이 치는 산에 입산 금지 조치를 해야 할까 아니면 자유롭게 입산을 허용해야 할까? 『정의란 무엇인가』에서도 이와 비슷한 논쟁을 다룬다. 우리나라는 날씨가 좋지 않을 경우 입산을 금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틈을 노려 산에 올라 사고를 당하는 사례가 있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에는 입산을 허용한다고 한다. 폭풍이 몰아쳐도 산에 오르는 것은 개인의 자유라고 보는 것이다. 자유의지에 의해 산에 올라 사고를 당하면 당연히 개인의 책임이다. 우리는 입산을 금지했음에도 무리한 산행을 해서 당한 사고에 대해 개인의 책임과 관리 책임을 동시에 묻는다. 자유시장주의에 입각해 평가한다면 대단히 비합리적인 현상이다. 자유시장주의는 일본의 경우처럼 개인이 스스로 위험을 인지하고 통제해야 하며, 자유의지로 선택한 결과에 대해 개인이 책임지는 것이 정답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금융시장에서는 이러한 논리가 판매 과정 전반의 지배적인 전제다. 폭풍이 칠 때 입산 금지 조치를 취하는 우리나라에서도 금융시장만큼은 자유시장주의 논리를 따른다. 때문에 ‘자신의 신용도를 스스로 평가해 갚을 수 있을 만큼만 돈을 빌려야 한다’는 생각이 모든 사람의 상식처럼 굳어져 있다. 상환능력을 뛰어넘는 돈을 빌려 갚지 못할 경우, 그 책임은 순전히 채무자의 몫으로 돌아간다.
못 갚을 것 알고도 빌려줬다면?
참으로 이상한 것은 금융권이 전 국민에게 등급을 매겨 신용을 평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복잡하고 난해한 프로그램에 의해 신용도를 평가하고 시스템에 개인 정보만 입력하면 금융거래 내용을 전부 들여다 볼 수도 있다. 등급 안에서 점수까지 매긴다. 가끔씩 신용 평점이나 등급을 접하고 있으면 도대체 누가 무슨 권리로 나에 대해 이런 식의 평가를 하는 것일까 의아하다. 이러한 신용 평가는 신용 시장의 안정을 위한다는 명분을 전제로 한다. 돈을 빌려줘도 되는지, 얼마나 빌려줄 수 있는지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거의 강제적인 신용 정보 이용에 대한 동의를 받아내고서 무례한 신용 평가를 하는 것이 불쾌하긴 하지만 돈을 빌려주기 위한 합리적인 판단을 위해서라니 참고 넘어가줄 수 있다. 문제는 그렇게 무례한 평가와 판단 이후에도 결과는 순전히 개인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점이다.
산에 오르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산에 올라서 사고에 대응할 만한 건강과 운동 능력이 있는지까지 검사하는 것과 같다. 불쾌할 정도로 온몸을 샅샅이 검사하고 심지어 줄 세워 등수를 매긴다. 그런데 막상 산에는 대충 올려 보낸다. 사고가 나면 산에 오른 사람의 책임으로 떠넘긴다. 이런 황당한 일이 금융권과 금융 소비자들의 관계에서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금융권에서는 빚을 갚지 못해 파산과 회생 제도를 이용하는 것조차 도덕적 해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그런 생각을 전제로 파산과 회생 전에 최소한 3개월에서 6개월 이상 비인간적인 채권 추심을 받도록 방치한다.
최근에 발생한 카드론 보이스 피싱 사고를 보면 경악을 금치 못할 금융권의 태도가 상식으로 통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카드 소유자도 모르게 카드론 한도가 주어지고 카드론 피싱 사기꾼은 이를 악용해 카드론 대출을 가로챈다. 소비자는 자신의 카드에 대출 한도가 발생한 사실도 모르고 사기꾼에게 개인 정보를 넘긴다. 이 경우 카드사는 카드 소유자에게 알리지도 않고 카드론 한도를 발생시켜 사기 피해에 노출 시킨 간접적인 책임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드사는 전혀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카드 소유자 탓으로만 돌린다. 카드 소유자의 무지와 개인 정보 관리의 부주의 탓으로 뒤집어씌우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보이스 피싱 사기 피해는 고학력자, 심지어 전직 은행 지점장도 당할 정도로 고도화되고 있다. 한마디로 사기를 피해갈 방법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또한 자신에게 카드 대출 한도가 발생한지 모르는 상태에서 당한 것을 소비자 부주의 탓으로 돌릴 수 있을까. 사실상 신용 평가를 통해 신용 공급을 하는 과정에서의 주의 알림은 금융사가 당연히 해야 할 의무 사항이다. 그러한 의무 사항은 지키지도 않으면서 모든 것을 소비자 책임으로 돌리고 있다. 이렇게 모든 것이 개인의 책임이라면 애초에 신용 평가는 무엇 때문에 했던 것인가. 사람들을 실컷 줄 세워 놓고 등급을 매겨 불쾌감을 주고선 결과는 소비자 책임이라고 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 것인가.
금융권 중심 사고를 전환할 때
문제는 금융소비자 당사자들조차 이런 금융권 중심의 사고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사회 전반적으로 채무 불이행자에 대해 불편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파산과 회생 등의 부채 구제 제도에 대한 진입 장벽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금융권의 논리가 금융감독당국에 의해 인정되고 합법화 되는 과정에서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학습된 결과가 아닐까 싶다. 그 과정에서 금융권은 늘 책임에서 자유로웠다. 그러니 가계부채가 날로 심각해지는 이 와중에도 일반 기업의 두 배 가까운 수준의 고배당을 하는 것이 아닐까. 채무자들의 사연을 들어보면 일자리를 잃고 가족이 병에 걸린 경우가 허다하다. 취약한 사회안전망, 불안정한 노동 정책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돈을 빌려 쓸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적지 않다. 복지로 해결해야 할 것을 금융으로 내몰고 금융권에서는 못 갚을 줄 알면서도 신용을 뿌려댔다. 도덕적 해이는 오히려 금융권에서 공공연히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업계는 예금자의 돈을 허술하게 관리해왔고 그 돈을 쥐고 있다는 사실이 권력인 양 행세했다. 가계부채 상승세가 대란으로 이어질 것이라 예측되는 이 때, 더 이상 채무자들에게 채무 불이행의 불편한 잣대, 구제제도 이용에 대한 도덕적 해이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된다. 이제 사고를 바꿔 개별 금융 소비자가 아닌 금융권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따져 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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