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2년 02월 2012-02-06   1456

김재명의 평화이야기-미국의 ‘폭력 후유증’

미국의 ‘폭력 후유증’

김재명 <프레시안> 국제분쟁전문기자, 성공회대 겸임교수

 

21세기 초강대국으로 미국을 꼽는 견해는 세 가지 근거를 바탕으로 한다. 첫째는 강력한 군사력, 둘째는 월스트리트로 상징되는 경제 금융력, 셋째는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문화 권력이다. 특히 군사력에서 미국은 남다른 힘을 지녔다. 구체적으로는 △천문학적인 국방 예산(중국, 러시아, 일본, 인도, 유럽의 나토 회원국 모두와 한국의 국방 예산을 모두 합쳐도 미국에는 못 미침. 2012 회계연도 미 국방비는 일반 국방 예산 5천5백30억 달러와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 전쟁 비용  1천1백78억 달러로 합계 6천7백10억 달러), △1만 개에 가까운 핵무기(해체 예정이라는 핵무기를 제외해도 최소 5천 개 이상), △6개 지역사령부(태평양, 북부, 남부, 중부, 유럽, 아프리카 사령부)와 4개 기능군사령부(전략, 수송, 특수작전, 합동전력 사령부)로 전 세계를 아우른다. 미국은 이러한 군사력에 바탕해서 ‘팍스 아메리카나’(미국의 평화)를 추구하고 있다.

  21세기 들어 미국이 테러 위협으로부터 ‘미국의 평화’를 확보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전쟁에 관한 국제법’을 어기고 폭력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 국제법에 따르면, 합법적으로 전쟁을 할 수 있는 경우는 두 가지 뿐이다. 하나는 다른 나라로부터 침공을 받았을 경우 조국방어전쟁을 펼치는 경우, 다른 하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침략 국가에 맞서 집단 안보를 지키기 위해 공동결의안을 통해 국제 사회가 침략 국가를 응징하는 경우다. 미국이 2003년 이라크를 침공할 때는 이라크로부터 침공을 받지도 않았고, 유엔 안보리 결의안도 없었다. 미국은 이라크 석유 이권을 챙기고, (이스라엘에 위협적인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림으로써) 이스라엘의 국가 안보를 챙겨주기 위한 전쟁을 벌였다. 이라크 침공에 나섰던 미군 병사들은 싫든 좋든 그 ‘더러운 전쟁’에 휘말린 셈이다.

 

폭력에 중독된 병사들

지난 2011년 말 미군 전투병력은 이라크에서 모두 철수했다. 전쟁을 벌인 지 8년을 훌쩍 넘긴 시점에서 이뤄진 철군이었다. 그동안 이라크 사람들이 겪은 고통을 말과 글로 나타내기 어렵다. 미국 브라운대학교 부설 왓슨국제관계연구소의 <전쟁의 비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8년 동안 이라크 민간인 사망자는 12만 5천 명에 이르고, 2백만 명 이상이 난민으로 고달픈 삶을 이어가야 했다. 인권 침해도 큰 논란이 됐다. 이라크 바그다드 서쪽에 자리 잡은 아부그라이브 감옥에서의 인권 침해는 패권 국가 미국의 폭력적 얼굴을 드러냈다.

 
  문제는 이라크에서의 일상적인 폭력에 중독된 일부 미군 병사들은 본국에 돌아와서도 폭력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2012년 새해 일어난 살인 사건 두 건이 한 보기다. 벤자민 컬턴 반스(24세)는 2007~2008년에 걸쳐 이라크에 파병됐다가 돌아온 참전용사다. 그는 미 시애틀에서 2012년 1월 1일 신년 파티를 하던 사람들에게 총을 마구 쏘아 4명을 다치게 하고 국립공원 순찰대원 1명을 죽게 했다. 그 뒤 눈 덮인 산 속으로 도망쳤다가 얼어 죽은 채로 발견됐다. 반스의 아내에 따르면, 반스는 민간인으로서의 새 삶을 꾸려가는 데 어려움을 보였다. 집에 무기고를 차려 놓고 총기를 매만지며 시간을 보냈고 자살 충동을 드러내기도 했다.

 
  시애틀 총기난사사건 보름 뒤인 1월 16일 또 다른 이라크전쟁 참전자 이츠코아틀 오캄포(23세)가 연쇄살인사건을 저지른 혐의로 붙잡혔다.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 거리의 노숙인 4명을 잇달아 죽였다는 혐의였다. 고교를 마친 뒤인 2006년 미 해병대에 입대해 2008년부터 이라크전쟁에 참전했던 오캄포는 멕시코 이민자 출신.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오캄포는 이라크에서 돌아온 뒤 예전과는 달리 훨씬 얼굴이 어둡고 술을 지나치게 많이 마셨다. 손 떨림과 두통 등의 증상도 보였다. 같은 동네 친구가 201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사했다는 소식도 오캄포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는 “세상이 곧 끝날 것”이란 말을 하곤 했다.

 

“나를 이라크에서 내보내 줘요”

 
심리 전문가들은 위 두 사건에 대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라 일컬어지는 정신적 후유증을 진단한다. 이라크전쟁은 지금까지 미군이 겪어온 것과는 다른 전쟁이다. 무엇보다 전방과 후방을 가르는 전선이 없다. 적은 앞이든 뒤든 어디서나 나타날 수 있고, 도로에 매설된 급조폭발물(IED)도 미군의 목숨을 노린다. 거리에 버려진 물건이 폭탄일 수도 있다. 이런 긴장감이 ‘석유 이권과 이스라엘 안보를 위한 더러운 전쟁에 나도 모르게 휘말렸다’는 회의감과 맞물려 병사들로 하여금 극도의 정신적 스트레스에 짓눌리고 외상을 입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 <워싱턴 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바그다드 미 육군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맡았던 리키 맬론 대령은 그곳에서 환자들로부터 늘 이런 말을 들었다. “나를 이라크에서 내보내 줘요.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죽는 게 낫겠어요”

 

‘미국의 평화’를 위한 희생양은?

전선에서 돌아온 참전 군인들의 살인, 폭력 등의 범죄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960년대 베트남전쟁 당시 미국은 이즈음처럼 지원이 아닌 징집제였고, 전쟁 개입이 비도덕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 때에도 미군 병사들은 폭력에 익숙해졌고, 죽음의 공포를 잊기 위해 술과 마약을 가까이 했다. 베트남 참전 군인 가운데 30% 가량은 미국으로 돌아온 뒤 PTSD 증상으로 고통을 겪었고, 일부 사람들은 이혼, 술과 마약 중독 속에 자살 또는 폭력에 빠져들었다. PTSD 증세를 앓는 병사는 군복을 벗더라도 사회로 돌아가 적응하기가 어렵다. 사회적 부적응과 좌절감은 살인이란 삐뚤어진 극단적인 결과를 낳기에 이르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석유 이권과 이스라엘 안보를 챙기려고 미국이 저지른 이라크 침공의 희생자는 누구일까. 이라크에 파병됐다가 돌아와 군복을 벗은 뒤에도 PTSD로 괴로움을 겪는 미국 젊은이들, 전쟁 윤리 의식이 무딘 미군병사의 총질과 군홧발에 희생됐던 이라크 민초들, 이들 모두가 미국의 ‘더러운 전쟁’의 희생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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