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3년 05월 2003-05-01   451

냉전 안보논리 한미동맹, 21세기형으로 거듭나야

부시의 동북아전략과 참여정부 평화전략은 엇박자


왜 우리는 북한이 “핵 선제공격 연습”이라고 주장하는 대규모 한미합동훈련을 연례행사처럼 치러야 할까. 군사적 차원의 한미동맹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정말 필요한 것인지, 오히려 한반도 평화의 걸림돌은 아닌지 물어야 할 중요한 시점이다. 편집자주

지난 3월 한반도에는 미국의 칼빈슨 핵항공모함과 스텔스폭격기 등이 동원된 대규모 한미연합전시증원연습이 1개월 넘게 실시됐다. 스텔스전폭기가 한국에 온 것은 10년만의 일이다.

북한의 대 남한 및 일본열도에 대한 선제공격 가능성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현실에서 왜 미국과 우리 정부는 스텔스폭격기까지 동원된 훈련을 이라크전쟁으로 북한의 위기의식이 최고조에 달한 시점에 걸쳐 실시했을까.

미국 입장에서 한미동맹이 어떤 전략적 입지와 중요성을 갖는가를 따지기 위해서는 부시 행정부의 세계 및 동아시아 전략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삼성 한림대 정치학 교수는 「부시 행정부의 세계전략과 이라크전쟁, 그리고 한반도」라는 보고서에서 2001년 9월 30일 공개된 ‘4개년 방위정책검토(QDR)’와 2002년 3월 보도된 ‘미국 핵전략검토(NPR)’라는 2개의 문서를 부시 행정부의 세계전략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로 제시하고 있다.

미 세계전략에 편입된 한미동맹의 역할은?

‘방위정책검토’에서 이삼성 교수는 미국의 지역전략상 핵심지역으로 분류되는 지역에 ‘동아시아 연해국’이 새로 등장한 것에 주목하고 있다. 이 교수는 “핵심지역으로 새롭게 등장한 동아시아 연해국은 미국 국방정책의 주요 목표에 중국을 포함시키지 않되 대만을 포함한 해상 연해국에 대해서는 이들이 미국의 영향권에 들어 있음을 주장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동아시아를 두개의 군사적 영향권으로 나눈 개념이 담겨 있다”고 해석한다.

‘핵전략검토’ 역시 북핵문제와 관련해 깊이 주목해야 할 중요한 독트린이 과거의 묵시적 내포와 달리 공개적인 규정으로 표명됐다. 비핵국가와의 전쟁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전술핵무기를 개발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 문건은 “이란, 이라크, 리비아, 시리아, 북한, 러시아, 중국 7개 나라에 대해 핵무기를 사용할 비상계획을 개발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 두 문건에서 드러난 부시 행정부의 동아시아 전략에서 한미동맹이 어떤 전략적 의미를 갖게 될 것인가를 짐작해 보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이와 관련 지난 4월 8일과 9일 이틀동안 한국과 미국 국방부가 개최한 ‘한미동맹 정책구상회의’가 주목을 끈다. 이 회의에서 한미 국방 당국은 기존 한미동맹을 ‘지역동맹’으로 전환하기로 합의했다. 많은 안보 전문가들은 이 합의가 “동북아지역에서 미국이 개입하는 전쟁이나 군사적 분쟁에 대해 한국이 자동적으로 미국의 동맹국으로 개입할 길을 열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주한미군 2사단의 재배치 문제 역시 한반도 안보와 관련해 그 의미를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지점이다. 2사단 재배치의 주요 골자는 2사단 병력의 일부는 철수하고, 나머지는 오산이나 평택 등 서울 후방지역으로 빠지는 것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북한 입장에서 종래 ‘자주포’에 의해 지탱되던 대미억제력이 무력화되는 결과를 가져오고, 그 결과 남한 후방까지 사정거리에 넣을 수 있는 스커드미사일의 전면 배치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주한미군 전력구조개편은 한미연합 방침에 따라 미국이 해·공군력을 강화하고 지상군을 줄이는 대신 한국군은 육군을 강화하고 해·공군 비중을 줄일 수밖에 없다”면서 “2사단 공백을 한국 육군이 메우는 것은 기본적으로 북한과 군비경쟁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정부방침에 일침을 가했다.

결국 한미동맹 재조정 과정에서 야기되는 딜레마를 풀기 위해 주한미군 재배치를 남북 상호군축의 계기로 삼아야 할 정부가 오히려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이번 이라크전쟁에서 선보인 미국의 새로운 세계군사전략을 별다른 문제제기 없이 수용한 셈이다.

한반도 평화는 미 세계전략과 근본적 긴장관계

위에서 살펴본 대로 미국이 구상하는 한미동맹의 효용은 분명하다. 결국 동북아에서 미국이 주요 적국으로 상정하는 중국에 대한 군사적 전초기지로서 한반도를 설정한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사실상 중국을 겨냥하고 있는 미국의 MD(미사일방어) 기지로서의 의미를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는 우리 정부가 한반도평화를 위해 필요하다면 미국의 한반도전략과 배치되는 남북공조와 협력을 실천할 의지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참여정부 출범 이후 우리 정부가 취한 일련의 정치군사적 결정은 철저히 부시 행정부의 동북아 및 한반도 전략에 코드를 일치시켜왔다.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스텔스기를 동원한 대규모 군사훈련, 한미동맹의 지역동맹으로의 변화, 주한미군 재배치의 군비경쟁화 등이 그것들이다. 그리고 이런 정책과 결정들이 남쪽의 새로운 정부의 성격을 주시하는 북한 정부의 불신과 의심으로 이어진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이는 한미동맹의 성격이 군사적 팽창주의 노선을 견지하는 부시 행정부의 세계 및 동아시아 전략에 편입되어 있는 한, 남북협력과 동북아번영정책으로 압축되는 참여정부의 한반도 평화 전략은 기본적으로 부시의 세계전략과 끊임없는 긴장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미동맹이 21세기 한반도 안보 패러다임이 될 수 있는가를 묻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DJ정부에 개념이 도입되고, 참여정부가 동북아 담론으로 구체화한 포괄안보개념 역시 한미동맹 안보관과 배치된다. 참여정부의 동북아번영정책의 핵심은 결국 남북협력과 동북아 경제를 연계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북에 대한 미국의 포괄적 경제봉쇄 아래서 남북간 경제교류는 단순 교역이나 임가공에 국한될 수밖에 없고, 기술집약적 장비가 북에 들어가야 하는 개성공단사업도 실효성을 거두기 힘들다”고 설명한다.

물론 한미동맹의 현실적 필요성을 인정하는 주장 역시 전적으로 부정할 수는 없다. 김근식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한미동맹과 남북공조는 현재로선 제로섬 게임의 성격이 있지만 북미관계의 진전에 따라 그 성격은 바뀔 수 있다”면서 “현재로선 한미동맹과 남북공조를 동시에 추구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또 한미동맹의 불가피성을 주장하는 근거로 한미동맹이 단순히 군사적 협력 차원을 넘어선 정치·경제적 차원의 국익과 연결돼 있다는 논리도 나름의 일리가 있다.

여러 가지 색깔을 띠고 있지만 한미동맹 강화의 필요성을 긍정하는 입장에는 공통적으로 국제사회 유일 초강대국으로서의 미국의 힘에 대한 현실적인 고려가 담겨 있다. 그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정부가 한반도 안보에 대한 중장기적 비전과 구상 속에서 한미동맹을 바라보고 있느냐는 것이다. 지난 94년 미국의 정세분석과 한반도전략을 맹목적으로 추종한 결과 한반도가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로 치달았던 경험에서 배워야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미국의 안보우산 아래 있는 것이 냉전시기 우리의 안보 패러다임이었다면 21세기 안보패러다임은 한미동맹을 그 하위개념으로 두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방향이 되어야 할 것”이란 정욱식 대표의 주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장흥배(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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