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3년 05월 2003-05-01   1462

시계가 없다면?

최근 방송가에서 활약하고 있는 개그맨 김제동 씨는 “시계가 굳이 200m 방수가 돼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인간은 깊은 물 속에 들어가면 죽을 수밖에 없는데 광고가 사실인지 확인하다 죽을 일 있나?”라며 우스갯소리를 한 적이 있다. 사실이다. 인간이 잠수복을 입고 잠수할 수 있는 안전한 깊이는 40m이며, 최고 120m까지 잠수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다. 시계의 기능은 놀랍게 발전하고 있지만 과거에도 현재도 시계의 중요한 기능은 정확한 시간의 표시일 뿐이다.

최초의 시계는 1개의 막대를 땅 위에 세웠던 그노몬(gnomom)으로 고대 이집트에서는 이를 발전시켜 해시계를 만들었으며, 우리나라는 『삼국사기』에 물시계의 사용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인도의 만나만 숲에선 나무와 꽃의 냄새로 한해의 시간을 표시하기도 했다. 이처럼 시계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생활의 필수품이 돼버린, 시계. 이걸 확∼ 없애고 산다면?

보름달이 뜨는 밤에 만나 술 한 잔 하자고 친구와 손가락을 걸거나 해가 동사무소 앞에 있는 국기게양대 위에 떴을 때 밥을 먹자는 약속을 하면 어떨까? 점심식사는 정각 12시가 아닌 정말 배가 고플 때 먹어보자. 출근 시간과 퇴근 시간은 동네 강아지들이 가장 크게 짖을 때나 사무실에서 형광등을 끄면 글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로 정하는 거다. 학교 시간표는 교사와 학생들의 필기 속도에 따라 정하면 되겠다. 시험을 칠 때 종소리 듣고 얼른 찍고 내는 일도 줄어들겠지? 일단 ‘빨리’라는 말만 사라져도 훨씬 속편하게 살테다. 건물 개나리가 핀 시기나 하늘에 나는 새들을 보며 계절의 변화를 파악한다면? 적어도 하늘을 보는 시간이나 자연을 관찰하는 시간이 지금보다 몇 배는 늘 것이며 자신의 몸 안에 흐르는 변화들에 귀를 기울일 수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 먹고, 자고, 일하고 싶은 시간이 다른 데 그게 가능한 일이냐고? 불안해 할 것 없다. 최근 국내 생명과학연구팀에 의하면, 인류는 처음부터 지구의 자전, 즉 24시간 주기로 생활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고 한다. 사람의 몸에는 생체시계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있고 그 유전자는 24시간 주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밤엔 잠이 오고, 저녁밥은 많이 먹고 싶은 이유는 단순한 습관 때문이 아닌 인간의 몸 안에 있는 유전자가 시계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계 밖의 시간』의 저자 제이 크리피스는 시간을 ‘시계의 시간’과 ‘자연·야성의 시간’으로 분류했다. 그는 산업사회가 제시한 절대적이고 수학적인 시간개념은 인간의 하루를 시계의 노예로 만들었고, 야성의 시간이 주는 깊고 풍성함을 알지 못하게 돼버렸다고 안타까워했다.

시계를 없애기에 세상은 너무나 커버렸고 지구는 병들었을지도 모른다. 6시 뉴스가 ‘해가 진 직후 뉴스’로 변해야 한다거나 비행기 출발시간이 그림자의 길이에 따라 정해진다면? 지구의 온난화와 오염으로 철새들이 제 때 우리를 찾지 않는다면? 정시에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지 못해 수많은 커플들이 집단적인 스트레스에 빠진다면? 아마 도시는 일주일도 못 버틸 테다.

황지희(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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