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3년 05월 2003-05-01   1566

흙집은 봄에 지어야 좋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에 집을 지어야 일꾼도 집도 생기가 돈다~


통나무 귀틀이 차곡차곡 올라가면서 4~5월의 연한 녹색과 푸른빛을 띠는 주변 경치가 한데 어울려 한 폭의 그림 같은 집이 되었다. 자연미가 조화미가 돋보이는 집, 사람이 눌리지 않는 편안한 집, 투박하지만 서민냄새가 나는 집, 내가 꿈이 그리던 집이 현실로 다가왔다.

마침내 99년 4월부터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되었다. 물론 그 이전에 집터를 고르고 엉성한 설계도이지만 그 밑그림에 따라 기초 선을 잡았다. 모든 건축 구조물은 물론 사회적 구조물도 기초가 튼튼해야 오래 간다. 그래서 기초 선을 따라 한 자 정도의 폭으로 석 자 이상의 깊이로 골을 만들고 그 속에 깬 자갈과 물을 넣고 커다란 나무 망치로 다짐 공사를 하였다. 그래야 벽체 선이 높이 올라가고 지붕 무게가 제법 있어도 집이 기울어지는 낭패가 없기 때문이다.

기초작업과 더불어 해야 하는 일은 각종 상하수도의 배관을 고려해 길을 만들어 놓는 것이었다. 물은 집 아래쪽에 지하수를 파서 잘 나오고 있었기에 이를 위로 끌어올려 부엌과 화장실로 연결하는 것, 또 부엌이나 화장실에서 나오는 하수를 정화 연못으로 흐르게 해서 우리 집에서 나오는 하수는 최대한 정화를 해서 내보내는 것, 이것이 당시로서는 꽤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나는 일반 생활하수와 변기 정화조 하수로 구분한 뒤, 일반 생활하수는 미나리깡(미나리가 수초와 함께 섞여 있는 습지)으로 흐르게 하되 정화조 하수는 정화조를 3단계 거친 뒤에 부레옥잠이 가득 든 정화연못으로 들어가 일차 정화를 거친 뒤 미나리깡으로 흘러가 2차 정화를 하게 했다. 그리고 미나리깡에서 나온 물은 다시 수초와 뒷산의 맑은 물로 3차 정화가 되도록 하였다. 물론 미세한 생물 실험을 하지 않았기에 나도 완벽한 정화시스템을 갖추었다고 감히 말하지는 못하지만, 최소한 내가 서당골 안쪽에 살면서 동네를 오염시켰다는 말을 듣지 않으려 최대한 애를 쓴 것만은 분명하다. 앞으로 이 오염 예방 부분은 더 궁리해야 한다.

바람이나 지진에도 끄떡 않는 내진 설계

다음은 바로 그 기초 선을 따라 기단을 쌓아 올리는 일이다. 기단은 기초에서 하방(문지방 높이)까지의 담을 말하는데 이것은 지면과 방바닥의 높이 차이가 된다. 이 기단 쌓기는 인조 돌 공장에서 나오는 납작한 자투리 돌을 몇 차 구해서 잘 버무린 흙 위에 차곡차곡 쌓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전우익 선생의 『혼자만 잘살믄 무슨 재민겨』라는 책에도 나오지만 흙은 집이 나도록 충분히 반죽을 잘하고 잘 이겨야 차지고 잘 붙으며 견고해진다. 내 평생 흙을 그토록 의식적으로 많이 만져본 적은 처음이다. 흙 냄새는 또한 구수했다.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어머니 냄새가 난다. 마치 어릴 적 엄마 젖을 만지작거리던 느낌이 되살아 올랐다. 그때 나는 비로소 흙집 짓는 묘미를 보다 구체적으로 느꼈던 것 같다.

기단 쌓기가 모두 끝나자 목수님은 문골을 짜서 올리기 시작했다. 문골은 모든 방문이나 방과 방 사이를 잇는 틀이다. 일단 문골을 제 위치에 세워야 귀틀짜기를 제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로 세로 5치 가량의 소나무 기둥으로 짜여진 문골을 들어 세울 때는 여러 사람의 협업이 필요했다. 잘못하면 쓰러지거나 뒤틀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도 다칠 수 있다. 그래서 일하는 사람들끼리 호흡이 잘 맞아야 큰 사고 없이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것도 이때 절실히 깨달았다.

문골이 끝나자 드디어 귀틀을 짜 올리기 시작했다. 귀틀이란 가로 세로로 서로 엉겨가며 만든 통나무 벽체를 말한다. 그래서 귀틀집은 뼈대집과 달리 모서리에 기둥이 없다. 통나무와 통나무가 직각으로 만나는 부분들이 모두 모여 자연적으로 기둥을 형성하게 되기 때문이다. ‘양의 질로의 전화’라고나 할까? 이렇게 직각으로 교차하는 귀틀이 벽체와 기둥을 만들기 때문에 목수님은 “귀틀집은 바로 그 자체로 내진 설계가 된 집”이라고 자랑했다. 웬만한 바람이나 지진에도 끄떡 않는다는 것이다. 각각 하나의 통나무는 힘이 없을지 모르나 서로가 서로에게 맞물려 있다면 그 어떤 외압에도 튼튼하게 견딜 수 있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풀뿌리 민초들이 온갖 기득권 세력이나 지배 집단 앞에서 굳세게 연대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었다.

민주적 집짓기

귀틀을 짜면서 주의해야 할 점은 창문 위치를 잡아 그 부분을 창틀로 메워 넣는 일이었다. 방바닥 위치에서 얼마나 올라가고 좌우 어디에 잡아야 햇빛 들기나 사용 면에서 더 나을 것인지, 어머니 방과 안방, 아이들 방에 따라 창을 어떻게 할 것인지 따위를 잘 생각해서 진행해야 했다. 미리 모든 것을 잘 설계해 설계도대로 하기보다는 목수님과 내가 하나하나 만들어가면서 수시로 의논하고 바꾸고 더 나은 방식을 찾는 식으로 일을 전개했다. 따라서 집 구석구석에는 나(아내)와 목수님의 의견이 같이 스며들어 있다. 이런 식으로 집을 짓다보니 나는 이것이 바로 ‘민주적 집짓기’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돈 있다고 덜컹 아파트 한 채 사고, 그것도 포장 이사시켜서 열쇠만 달랑 가지고 들어가서 사는 방식은 뭔가 좀 이상하지 않은가, 집에 대해 죄를 짓는 것이 아닌가 라는 의문까지 들 정도였다.

귀틀이 어느 정도 짜여지자 이제 귀틀 사이사이로 격자 모양으로 졸대(옛날에는 수수깡이나 대나무를 씀)를 대고 흙벽을 칠 차례가 되었다. 집터 닦을 때 땅을 고르면서 나온 그 흙을 한켠에 잘 쌓아 놓았다가 작두로 볏짚을 썰어 물과 함께 버무렸다. 마침 이 흙은 물에 적시면 찰흙 같고 굳으면 차돌같이 딱딱해서 집짓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우선은 집 안쪽에서 밖으로 한줌의 흙을 잘 이겨서 던져 넣어 벽체를 만들어갔다. 일손이 많이 들었다. 목수님은 거듭 “흙집은 봄집이 좋다”고 했다. 그것은 비도 덜 오는 데다 흙이 얼지 않고 잘 말라 튼튼해지기 때문이다. 내 생각엔 만물이 소생하는 봄에 지어야 일꾼들도 생기가 돌고 그래야 집도 생기가 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귀틀이 올라가는 동안 아이들 셋과 우리 부부는 ‘참 신기하다’며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통나무 귀틀이 차곡차곡 짜여져 올라가면서 그 나무 구조물과 4∼5월의 연한 녹색과 푸른빛을 띠는 주변 경치가 한데 어울려 한 폭의 그림 같은 집이 되고 있으니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가. 물론 책 같은 데서 보는 말쑥하고 고상한 집은 아니지만 자연미와 조화미가 돋보이는 그런 집, 사람이 눌림을 당하는 느낌을 받지 않는 편안한 집, 투박하지만 서민 냄새가 나는 집, 그런 집이 바로 내가 꿈에 그리던 집이었기 때문이다.

강수돌 고려대 교수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