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3년 05월 2003-05-01   780

우리 시대의 다도

나에게 유일한 정규직 노동의 경험은 3년 정도 개인회사 사보 편집일을 했던 것이다. 고객관리부서와 함께 사무실을 썼는데, 20평 남짓 되던 그 사무실에는 ‘설탕커피’를 유난히 좋아하던 부장과 싹싹하고 부지런한 막내 여직원이 있었다.

“그냥 모닝커피가 아니라 굿모닝커피예요.”

맛좋은 차 한잔에 미소까지, 부장 뿐 아니라 사무실의 모든 직원들에게, 사무실에 찾아오는 손님들에게까지 발휘되는 서비스 정신이 빛나 보여서 혼자서 자판기 커피만 빼먹을 줄 아는 내가 너무 삭막한 사람인가 싶어지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디자인업체로 외근을 나갔다 오는데 사무실 분위기가 물 빠진 바다처럼 썰렁했다. 옆자리 막내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막내의 책상 옆에 친구처럼 놓여있던 커피믹스랑 각설탕이 휴지통에 박혀 있었다. 문제는 바로 막내가 잠깐 외근을 다녀오는 틈에 벌어졌다. 막내가 잠깐 사무실을 비운 사이 손님이 찾아왔는데 그때 부장은 그 다음 막내인 남자직원에게 커피를 부탁하지 않고 사무실 근처의 지하다방에 전화를 건 것이었다. 그 날부터 막내는 일체의 ‘차 시중’을 중단했다. 막내의 굿모닝커피가 아쉽기만한 부장은 막내의 그런 태도를 ‘옹졸함’ ‘변덕’ 심지어는 ‘질투’로 비아냥거렸지만 막내의 태도는 완강했다.

올 봄, 잊고 있었던 막내의 사건이 다시 생각난 건 어느 기간제 여교사의 ‘차 시중 거절 사건’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나는 내가 아직도 70년대에 살고 있는 줄 몰랐어요. 아직은 내가 굿모닝커피를 탈 때가 아니라는 걸 몰랐네요.”

씁쓸하게 웃던 막내의 얼굴과 더불어 자신의 차 시중 거절이 한 사람의 죽음으로까지 이어지는 상황을 겪어야 했을 이름 모를 기간제 여교사의 ‘차 한잔의 아픔’을 생각해본다. 한 사람의 죽음이 결부된 사건이기에 그게 과연 ‘목숨’을 담보할 문제냐고, 그 따위 차 한잔이 어른을 몰아세워 사과를 받아낼 만큼 대단한 거냐고 되묻는 이들도 적지 않다. 유가족들의 눈물 뒤에 서서 그동안의 모든 갈등과 반목을 꾸역꾸역 토해내는 이들도 있다.

니코틴 중독자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커피생각이 간절한 나에게 언젠가부터 ‘커피 한잔’이 조금씩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차 한잔에 너무나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커피 콩을 재배하는 이국 노동자들의 하루 일당과 같다는 유명브랜드의 커피는 달콤하게 즐기기엔 너무 머리가 무겁고, 또 어떤 커피는 분신노동자를 양산하는 회사의 것이거나 미국산 커피 한잔을 거부함으로써 안타까운 여중생의 죽음을 잊지 말자고도 한다.

옛 선현들이 차를 마시는 데도 법도가 있다고 하셨는데, 우리 시대의 차 한잔은 어떻게 마시는 게 법인지, 어떻게 나누는 게 도리인지 잘 모르겠다. 해마다 이맘때면 차밭에 가장 보드라운 차 잎들이 속속 여린 순을 내밀고 돋아난다는데,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 가득 차있는 차 향기가 지상으로 내려오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우리시대의 다도(茶道)가 새로이 정립되는 데에도 시간이 좀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김인정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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