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6년 08월 2006-08-01   813

석유 중심 에너지 구조의 위기

앞으로 유가가 어떻게 될까? 세상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사에 속 시원한 대답을 해 줄 이가 눈에 띄지 않는다. 2002년 배럴당 20달러 선이던 유가가 4년 사이 3배 이상 오르는 사이 미국에너지정보청을 비롯해 석유기업과 에너지 전문기관들의 전망은 번번이 빗나갔다. 1년에 서너 번씩 유가 전망을 바꾸는 사례도 흔해졌다.

1859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유전이 개발될 때만 해도 세계가 지금처럼 석유에 깊이 의존하게 되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석유는 때마침 등잔에 기름을 공급해주던 고래가 큰 바다에서 사라져간 시기에 본격적으로 채굴되어 등불을 밝히면서 세상에 등장했다. 자동차의 보급과 함께 석유는 에너지원, 특히 세계 경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교통수단의 주요 연료가 되면서 수요공급의 법칙에 맡겨두는 일반 상품이 아니라 전략적 자원으로 간주되었다. 아주 짧은 기간에 석유는 세계 정치의 핵심적 위치에 서게 되었다. “석유를 가진 자가 세계를 가지게 될 것”이란 말이 공공연히 나돌았고 각국 정부와 거대 석유기업들은 힘없는 석유국가들을 다투어 정복하였다.

20세기 들어 석유는 탄약이나 인력처럼 전쟁물자가 되었다. 석유는 전쟁의 승패를 좌우했고 더 나아가 석유 때문에 전쟁이 일어났다. 트럭, 탱크, 전함, 비행기로 움직이는 전쟁에서 석유 공급로 차단은 핵심 전략의 하나였다. 전쟁 수요로 갑자기 커져 버린 석유 산업은 합성섬유, 합성고무, 합성수지, 염료, 의약품 등 광범위한 석유화학제품을 만들어내면서 수요가 더 급증하였다.

석유가 굴리는 세상

이제 석유가 들어가지 않은 제품은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고 석유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 어려울 지경이 되었다. 세계는 1차 에너지의 36%를 석유에 의존한다. 석유는 수송에너지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난방, 발전 연료로 사용된다. 그 뿐만 아니라 석유는 수 만 가지 제품을 만드는 석유화학공업의 원료이다. 20세기를 석유문명의 시대라고 부르는 것도 과언은 아니다. 정보통신, 생명공학 등 첨단산업이 각광을 받고 있지만 매출액 기준 세계 10대기업 중 4개는 석유기업이고 다른 4개는 석유문명에 의존하는 자동차회사이다. 만약 지금 석유가 공급되지 않으면 세계가 움직임을 멈추고 고요해질 것이다.

1973년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이스라엘의 철수를 요구하며 금수조치를 취하면서 1차 석유파동이 발생하였다. 이 때부터 경제적 성공의 요인이었던 석유가 ‘경제·정치적 취약성의 원천’으로 변해버렸다. 그 때부터 중동, 아프리카, 카스피해 주변, 중남미 등 산유국들의 내전이나 정정불안 때마다 에너지 안보를 목적으로 세계 열강들이 더욱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임박한 석유 위기

석유 공급이 늘어나는 수요를 받쳐줄 만큼 충분하다면 비록 석유를 팔 수 있는 소수와 석유를 사려는 다수 사이에서 늘 긴장이 빚어진다고 해도 지금 같은 불안정한 균형은 유지될 것이다. 그런데 만약 석유 공급이 계속 증가하는 수요를 따라잡지 못한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영국의 지질학자 콜린 캠벨 같은 비관론자들은 유전발견과 석유생산에 대한 광범위한 자료를 토대로 2010년 이전에 세계 석유생산량이 최대값에 도달하고, 그 후에는 해마다 3% 가량 감소한다고 전망한다. 석유생산이 한계에 달하는 석유정점이 임박했다는 것이다. 반면 미국에너지정보청이나 엑손모빌은 석유정점은 아직 멀었다고 낙관한다. 단, 낙관론에 서 있는 국제에너지기구(IEA)도 수요에 맞게 석유생산을 늘리기 위해선

30년간 매년 1천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투자가 필요하다는 조건을 달고 있다.

세계의 석유매장량 추정치에 관한 비관론자들과 낙관론자들 간의 견해차는 크지만 지금까지 확인된 석유매장량과 유전의 생산 능력을 고려하면 세계 석유수급의 불균형은 갈수록 심화되고 유가는 올라갈 것이다. 낙관론자들의 주장처럼 당분간 석유 공급에 문제가 생기지 않더라도 석유산업은 노쇠하고 있고 석유 시대는 이미 막을 내리고 있다. 불행히도 비관론자들의 예측이 맞아 떨어진다면 석유 위기는 바로 코앞이다. 석유 공급 부족이 초래할 경제·사회·정치적 영향을 정확히 예측할 순 없지만 엄청난 혼란을 초래한 1차 석유 파동 때보다 훨씬 길고 훨씬 치명적인 재앙이 될 것임에 분명하다. 설령 석유 위기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석유에서 벗어나는 것은 생존을 위한 필수 과제가 되었다. 인류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생태 위기인 기후변화가 바로 석유를 비롯한 화석에너지 사용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석유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살 길

석유 위기에 대비하는 길은 얼마 남지 않은 석유를 독점하거나 아니면 석유 의존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 등에서 보듯이 파괴와 살상을 수반하는 석유 독점 전략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만이 할 수 있는 선택이다. 반면 유럽연합(EU)은 석유 의존도를 낮추는 에너지 전략을 추진 중이다. 2002년 유럽연합에서 나온 에너지 보고서의 표제는 ‘에너지 의존도 감소’이다. 유럽연합은 지금 이대로 가면 현재 50%인 에너지 역외 의존도가 더 높아져 안보 불안이 심각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재생가능 에너지 개발과 보급도 이런 맥락에서 추진력을 얻고 있다. 이런 흐름이 이어져 올 2월 스웨덴 정부는 2020년부터 석유에너지를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미 최종에너지의 1/4을 재생가능 에너지로 충당해온 스웨덴은 더욱 에너지 전환에 가속도를 내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재생가능 에너지 보급은 흔히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고용을 창출하여 실업난을 해소하겠다는 명분으로 추진되지만 가장 중요한 실리는 에너지 안보의 강화이다. 심지어 외교와 통상의 최우선 과제로 석유 확보에 혈안이던 부시행정부조차 올해 초 ‘석유에서 해방’을 선언하고 석유 대안을 추구하는 정책에 시동을 걸었다. 에너지의 97%를 수입에 의존하고 에너지의 45%를 석유에 의존하는 한국은 전 세계에서 석유 위기에 가장 취약한 나라이다. 늦었지만 석유수입 세계 4위, 석유소비 세계 7위인 한국이 어떤 길을 택해야 할지는 분명하다.

이상훈 환경운동연합 정책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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