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4년 07월 2014-07-01   2501

[통인] 민간인 불법사찰의 기록 펴낸 장진수 전 주무관

이보다 더 추악할 순 없다

민간인 불법사찰의 기록『블루게이트』를 펴낸 장진수 전 주무관

 

박유안  사진 박영록

 

참여사회 2014년 7월호

 

MB는 정권 시작과 거의 동시에 퇴임했어야 했다. 여기가 만약 워터게이트 시절의 미국이라면 말이다. 워터게이트보다 더 추악한 범죄를 그와 그의 심복들은 촛불정국을 잠재우고자 저질렀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이 그것이다. 그런데 여기는 대한민국. 그들 몸통은 온전했고, 목숨 걸고 이 사건의 진실을 폭로하고 검찰의 재수사까지 이끌어낸 장진수 전 주무관은 결국 공직에서 물러나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차마 인정하고 싶지 않은, 정의가 사라져버린 대한민국의 한 단면이다.

“포항, 포항, 포항. 여긴 예천. 이 사람도 포항, 포항, ….” MB정권의 추악한 권력범죄, 민간인 불법사찰을 폭로한 장 주무관의 책『블루게이트』맨 앞, 주요 등장인물 표를 설명는 장 주무관의 말이다. MB정부 출범 5개월 만인 2008년 7월 21일 신설된 국무총리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여느 암행감찰반이 아니었다. 소위 영포라인이라는 MB직계로 꽉 채워져 사실상 청와대의 특명을 받아 일하는 과거 ‘사직동팀’의 부활이었다.

장 주무관은 이 조직으로 2009년 7월 발령받았고, 2010년 불법사찰 증거인멸 사건에 휘말려 2013년 11월 증거인멸 유죄확정 판결로 파면에 준하는 ‘당연퇴직’으로 공직을 마감한다. 『블루게이트』는 경험하지 않았어야 할 일들을 겪으며 보았던 권력과 결탁한 고위공직자들의 추악한 모습을 낱낱이 기록하고 있다.

 

참여사회 2014년 7월호

 

블루게이트, MB정권의 가장 추악한 범죄

 

『블루게이트』를 다 읽고 만나 뵈니, 처음 뵙는데도 오랜 지기 같다. 그저 꼭 안아드리고 싶다. 참으로 엄청난 일을 겪고, 참으로 용케 공익제보자의 길까지 선택하셨다.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드셨을까 싶다. 

 

사건에 휘말려 재판을 받으며 정말 하루에도 수십 번씩 생각이 오락가락했다. 뒤를 봐주겠다, 평생을 먹고 살게 해주겠다, 청와대를 끌어들이면 아무도 당신을 지켜주지 못한다 등등 온갖 회유와 협박이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 폭로를 결심하고 나니 드디어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그대로는 정말 살 수가 없었다. 아내와 두 딸, 부모님 얼굴을 보고 살 자신이 없었다. 2008년 촛불집회 참가자들을 불순세력이라고 몰아붙여야만 했던 집권세력의 공작이 민간인 사찰의 본질이고, 그건 다시 종북몰이, 국정원 댓글 공작으로까지 이어졌다. 그 실상을 밝히고자 폭로도 결심했고, 대법원 확정 판결 후 그때 기억을 되살리고 녹음자료들을 살피며 페이스북 연재를 시작했다. 그러다 페친들의 추천으로 아예 책 원고 작업에 매달렸다.

 

책은 소설처럼 술술 잘 읽힌다. 우리가 몰랐던 고위공직자들과 권력이 결탁해 국민의 세금으로 저지르는 온갖 추악한 일들이 고스란히 잘 담겼다. 

 

2005년부터 국무총리실(당시 국무조정실), 참여정부 당시의 암행감찰반인 조사심의관실에서 모든 자료들을 문서화하는 창구 역할을 했기 때문에 추진되던 일의 면모를 속속들이 잘 알 수 있었다. 그런데 MB정권이 된 뒤 다시 가보니 하는 일이 완전히 딴판이었다. 2009년 7월 지원관실에 발령받은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처음 한 일이 지원관실 활동비를 청와대의 비선조직 관리자이던 이영호 비서관에게 상납하러 청와대에 들어가는 일이었다. 국민 세금을 자기네 쌈짓돈처럼 상납하다니. 그렇게 난 첫날부터 불법에 익숙해진 듯하다. 나중에 불법사찰이 PD수첩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고 난 뒤, 청와대와의 연결고리를 감추고자 증거인멸을 지시받고서도 난 또 영혼 없는 공무원으로 열심히 컴퓨터를 깡통으로 만들기만 했다. ‘능력 있는 부하직원으로 비쳤으리라’며 내심 뿌듯해하기까지 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이가 없다. 

 

1980년 쿠데타로 들어선 전두환 정권의 국보위 시절 총리실에 만들어진 사회정화위원회라는 기관이 있었다. ‘사회악 일소’라는 명분 아래 사법절차가 아닌 행정력으로 3만에 이르는 국민을 삼청교육대로 끌고 간 부끄러운 역사다. 사회정화위가 폐지되고도 20년이 지난 2008년의 대한민국, 촛불정국의 와중에 MB의 측근 비선조직은 다시 이 악몽을 떠올리게 하는 ‘민간인 사찰’이라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리고 그 사실이 발각되자 청와대와 검찰 등을 총동원해 ‘꼬리 자르기’에만 몰두했다. 장 주무관은 그 추악한 음모의 희생양이었다. “불법사찰 증거인멸에 휘말린 장진수의 최후 고백”이라는 부제를 단 책 제목 『블루게이트』는 쫓겨난 자의 우울함(“내 인생의 시곗바늘이 그때 멈춰버렸다”)과 청와대게이트(‘블루’하우스게이트)라는 의미를 동시에 담고자 장 주무관이 직접 고른 것이다. 

 

참여정부 때도 암행감찰반인 조사심의관실에서 근무하셨는데, MB정부 때 분위기와 비교하면 어떤가?

 

공무원의 비리가 주로 민간인에게서 돈 받는 일이다 보니 불가피하게 민간인 조사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 참여정부 때는 일일이 사전 결제를 받고 일을 했다. 당시 내가 문서화 창구 역할을 맡아서 잘 아는데, MB정권 때 같은 그런 민간인 사찰은 없었다. 조직이란 걸 만들려면 뭔가 체계가 있어야 하는데, MB때 다시 만든 암행감찰반인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죄다 포항 인맥에 예천, 경주, 진주 등 경상도 일색이었다. 그렇게 지연 학연으로 엮어놓았기에 그 사단이 난 거다. 완전 쑥대밭이 되지 않았는가.

 

되돌아보니 조사심의관실 없앤 MB정권 출범 직후 바로 촛불정국이 닥쳤다. 문제의 공직윤리지원관실을 다시 만들 때의 분위기는 어땠나?

 

당시 총리실에 근무했으니 직접 다루는 업무가 아니라도 정책 전반에 대해 크게 볼 수 있었다. 광우병 촛불시위는 전적으로 MB정권의 실책이 자초한 거다. 미국이 팔고 싶어 하는 소고기를 그렇게 넙죽 받아서는 안 됐다. 최후의 협상카드로 끝까지 쥐고 있어야 했다. 거기다 검역주권도 덜컥 넘겨줘버리고, 국민들이 분노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촛불이  일어난 건데, ‘이 사람들’은 촛불을 어떻게든 끄고 싶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라는 이름으로 암행감찰반을 되살린 데는 그런 배경이 작용했다. 

 

권력중심부의 필요에 의해 다시 살아난 조직이라는 말씀인데, 그러다보니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영호)이 앞장선 건가?

 

그렇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엉뚱하게 민정수석실(비리를 캐는 사정업무 담당)이 아닌 사회수석실의 이영호 고용노사비서관 주도로 만들어진다. MB최측근인 포항 영포라인이 나서서 만들다 보니 그렇게 된 거다. 권력의 뜻이 정확하게 반영된 거였다.

 

참여사회 2014년 7월호

“사건에 휘말려 재판을 받으며 정말 하루에도 수십 번씩 생각이 오락가락했다. 뒤를 봐주겠다, 평생을 먹고 살게 해주겠다, 청와대를 끌어들이면 아무도 당신을 지켜주지 못한다 등등 온갖 회유와 협박이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 폭로를 결심하고 나니 드디어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그대로는 정말 살 수가 없었다. 아내와 두 딸, 부모님 얼굴을 보고 살 자신이 없었다. “

촛불은 불순세력이다!

 

이 기관의 민간인 사찰이 훗날 문제가 되자, 이들은 “김종익 씨 사찰”이 익명의 제보를 통해 진행된 거라고 우겼다(그 암행감찰반 전화번호는 총리실 직원들에게도 공개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공공기관 대표가 (쥐코동영상 게재로) 대통령을 음해했다”는 제보에, 이들은 공공기관 대표도 아닌 김종익 씨 회사로 바로 쳐들어가 강압적인 수색을 펼친다. 대통령 명예훼손과는 직접 관련도 없는 회계장부를 오밤중에 뒤지는 등, 무리수를 둔 건 이들의 저의가 배어 있을 거라는 게 장 주무관의 확신이다. 회계장부 등을 통해 “촛불의 자금이 이 회사에서 나왔고, 그러니 촛불은 불순세력이다, 이렇게 몰아가고 싶었을 것”이라는 거다. (사찰 피해자인 김종익 씨는 결국 기소되어 논란 끝에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고, 김 씨는 이에 불복,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하라”는 헌재의 판시를 받아냈다.)

 

불법사찰은 그렇게 일어났고, 발각되었고, 수사가 시작됐으며, 장 주무관은 증거 인멸 지시를 받았다. 수사 시작 이후에야 증거인멸이라는 범죄를 인식한 장 주무관은 “이 사찰 사건에는 청와대가 개입되어 있다”는 진실을 밝혀야 할지, 아니면 “권력을 거역해봤자 너만 다친다, 돈 걱정은 하지 마라, 뒤를 봐주겠다”는 그들의 회유를 받아들여야 할지 번민하며, “분노와 두려움 사이에서 미쳐가는 기분”인 나날을 보냈다. 

 

희한하게도 검찰 수사가 진행되자마자, 불법사찰 본건은 뒷전이고 증거인멸부터 물고늘어졌다. 

 

1차수사 2년 뒤에 KBS리셋뉴스에서 보도한 불법사찰 리스트가 1차 수사 때 이미 검찰에 제출되어 있었는데도, 본건인 사찰에 대한 수사보다는 증거인멸 수사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결국 청와대는 손도 안 대고 총리실 직원들의 실수라는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이 정의를 구현하는 최후의 보루라고 믿었는데, 재수사 때도 “참여정부에서도 사찰이 있었다”는 식으로 물타기에 앞장섰다. 살인자를 잡아 놓고서, 그 살인자를 도우려고 “예전에도 살인자가 있었다”고 검찰이 나서는 꼴 아닌가. 뒤돌아보니, 사건을 그런 쪽으로 여론몰이해서 사찰사건에 대한 관심을 돌리려 한 거였다. 어떻게 보면 청와대 최종석 행정관이 내게 대포폰을 주며 증거인멸을 지시한 것부터가 이미 예정된 각본에 의한 게 아니었나 싶을 정도다. 

 

책에도 검찰을 가리켜 ‘법무법인 청와’라고 부르는 항간의 평가를 인용했다. 

 

힘없는 사람은 말만 잘못해도 감옥엘 가고, 권력자들은 마구 범죄를 저질러도 유야무야되는데, 어떻게 정의가 바로서고 민주주의가 바로서겠는가. 나중에 국정원 댓글사건이 터졌을 때 보니 상명하복에 따른 단순 지시 이행이라고 처벌을 안 받더라. 그런데 나는 똑같은 단순 지시 이행인데도 처벌을 받았다. 사법정의는 온 데 간 데 없고, 법의 잣대는 그때그때 자기네 맘대로 구부리는 거로구나 싶었다. 당시에도 문서 파쇄는 처벌 안 했고, 외장하드 삭제도 처벌 안 했고, 딱 내가 한 내장하드 삭제만 처벌했다. 이런 어이없는 사법권 행사는 결국 장진수처럼 폭록해 봐야 득 될 거 없으니 조용히 있으라는 무언의 협박 아니겠나.

 

책과 함께 탄생했다는 ‘장진수와 함께하는 사람들’, 일명 ‘장함사’는 결국 사법정의가 지켜내지 못한 공익제보자 장준수를 사회단체와 시민들이 지켜내겠다는 다짐이겠는데,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나?

 

민간인 사찰사건을 다룬 책으로는 한국일보 법조팀 기자 분들이 펴낸『민간인 사찰과 그의 주인』이라는 책이 먼저 나왔다(2013년 11월). 재판기록 수만 장을 정리하고 집대성한 알찬 책이고, 불법 민간인 사찰의 전모(박원순, 김미화, MBC노조를 비롯 478개 사찰)를 잘 기록한 책이다. 법조팀은 이 책의 인세 전액을 참으로 고맙게도 나에게 기부해주었다. 이에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이 “기자들도 이렇게 하는데, 시민들도 공익제보자를 보란 듯이 지켜보자”고 제안해서 꾸려진 게 장함사다. 나로서는 참 든든하다. 

 

참여사회 2014년 7월호

 

책에서도 소상하게 밝히셨지만, 오랜 번민과 갈등의 시간이 있었다. 그 과정을 낱낱이 지켜보니, 용기 있게 공익제보를 한다는 게 정말 힘든 일이구나 싶었다.

 

실컷 제보했는데 외려 ‘배신자’로 낙인찍히고 피해를 입는 제보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운이 좋아 이렇게 인터뷰도 하고 하지만, 그저 잠깐의 해프닝으로 끝나버리고 된통 당하기 일쑤다. 공익제보자보호법이 있긴 하지만, 어떤 내용을 어느 곳에 제보해야 공익제보로 인정하는 등 아주 제한적이다. 가령 국민권익위나 국회 같은 국가기관에 제보하는 건 인정하고, 언론사에 제보하는 건 인정하지 않는 거다. 아니, 공무원 고발하러 또 공무원에게 찾아가라니, 누가 그러고 싶겠나? 공익제보자에 대한 시민사회의 응원도 중요하지만, 이런 제도 개선도 시급하다. 참여연대나 호루라기재단 등의 단체가 좀 더 활동 폭을 넓혀 관련 제도 개선을 이끌었으면 좋겠다. 거기에 내 의견을 보태라면 언제든지 기꺼이 함께하겠다.

 

장 주무관의 현재 수입은 이 책의 인세가 전부다. 2013년 연말부터 오로지 집필에만 매달리느라 다른 장기적 계획을 고민할 여유도 없었다. ‘장함사’의 일원이기도 한 조국 서울대 교수는 “제대로 된 정부라면 이 책을 공무원의 필독서로 지정해야 할 것”이라고 추천했다. 어디 공무원뿐이랴. 그들이 우리를 암암리에 사찰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그들을 더 세게, 더 치열하게 감시해야 한다고 믿는 시민이라면 이 책을 펴들 일이다. 책을 통해 추악하게 부패한 권력을 더 열심히 감시하겠다는 각오가 불끈 솟구쳐 좋고, 책 판매를 통해 난데없이 직장을 잃은 어느 공익제보자의 인세 수입이 올라가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다. 책을 읽은 모든 이들이 장진수의 분노에 공감하며 “나도 장함사 할래!”라고 다짐하는 순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도 한 발짝 더 나아질 테니, 그야말로 일석삼조다. 

 

박유안 기웃기웃 번역가. ‘알트’ 출판사에서 일하는 그는 “까칠해도 친절하게”가 삶의 모토이며, “쟌 모리스를 번역한 작가”로 기억되길 바란다. 밤엔 주로 땅고 추며 논다. 맘 놓고 춤 출 좋은 세상을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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