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경제

대학 원서장사 소비자 힘으로 막자

이맘 때 쯤이면 주위에서 심심찮게 대학입시와 관련한 이야기들을 듣게 된다. “누구 아들이 어느 대학엘 붙었다 하고, 누구 조카는 재수해서도 또 떨어졌다 하고…”. 온통 당락에 관심이 쏠려 있는 사이 대학입시과정에서 나타나는 심각한 문제는 무심결에 지나쳐버리기 십상이다.

이에 지난 해 서울YMCA 시민중계실은 대입 전형료와 대학의 입시관리 서비스에 대한 실태를 조사한 바 있다. 이를 통해 대학의 전형료 과다 인상과 복수지원 허용에 따른 수험생의 전형료 부담, 원서 교부 및 접수로부터 대학별 시험에 이르기까지 대학의 편의주의와 무성의로 인해 발생하는 막대한 입시 비용 등 대학입시과정의 문제들을 제기했다.

또 당시 개최된 ‘대입 전형료와 대학입시 서비스 무엇이 문제인가’ 라는 주제의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객관적인 근거 없이 과다 책정된 대학입시 비용과 대학입시제도의 변화에 따라 학생선발권을 가지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대응력을 갖추지 못한 대학의 행태는 시급히 개선돼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리고 대학입시제도에 대한 대학 측의 횡포와 수험생들의 권리를 소비자 문제 차원에서 대응해야 한다는 결의를 한 바 있다.

그 많은 전형료 수입은 어디에 쓰나?

우리 대학들은 최근 수년간 납입금을 연평균 15% 내외로 꼬박꼬박 인상하고 입시 전형료를 지난 96년부터 8∼9만 원으로 책정하는 등 사실상 교육서비스의 독과점적 공급자의 지위에 따른 횡포를 부렸다. 어디 감히 학문의 전당에다 소비자 운운할 수 있겠는가? 최소한 한국의 대학 상황은 문만 열어놓으면 어떻게든 입학생은 차고 넘치게 돼 있고, 대학들은 사실상 경쟁구조 없이 독점 내지 과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우리도 미국처럼 취업을 못한 대학 졸업생이 대학을 상대로 교육소비자로서 손해배상을 청구할 날이 멀진 않았다고 본다. 또 인종 등 교육내용의 차별성을 이유로 교육수용자가 소비자로서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승소하는 것과 같은 사례도 생길지 모른다.

현재 한국의 대학은 언감생심 졸업장만 주면 그만이다. 한 해 대학입시 전형료를 갑자기 3배로 올려도 아무도 시비거는 소비자가 없다. 한양대학교는 지난 해 대학입시에서 3만여 명이 몰려 전형료 수입만 26억 원을 벌었는데, 도대체 그 돈이 어떻게 지출됐는지 책임을 묻는 사람이 없다.

지난 해 서울YMCA 조사에 따르면 전기대학에 들어간 전형료만 수험생 1인당 18만여 원을 부담했다. 이번 입시 때 일부 대학에서 눈가리고 아웅하듯 1∼2만 원을 내렸으나, 복수지원으로 지원자 총량이 지난 해보다 크게 늘어날 것이고 또 대부분 본고사 전형이 폐지됐기 때문에 전형 업무에 대한 지출이 줄어들 것이 분명하지만 대학들은 그 많은 전형료 수입을 어떻게 사용할 지 알 수 없다.

대학 편한대로, 서비스는 엉망

수많은 수험생 부모들이 대학입시철 수험생들을 따라 대학에 가본 경험을 이야기해 보라고 한다면, 그들은 정말 터무니없는 상황들만을 늘어놓을 것이다. 기숙사를 개방한다고 광고한 대학은 ‘이부자리는 수험생이 준비’하는 사실을 기숙사에 찾아올 때 비로소 알려준다. 추위에 떤 한 수험생과 학부모는 30년 전 자신의 입시와 하나도 나아진 것 없는 대학의 현실에 놀랐다고 한다. 안내문 하나 제대로 붙인 대학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나마 셔틀버스 편의를 제공하는 소수의 대학은 나은 편이다. 수억 원 내지 수십억 원의 전형료 수입을 올리면서도 수험생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가 없는 학사관리 행태로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원망을 사온 게 한국의 대학 현실이다.

입시원서의 분산접수는커녕 대학 측의 편의를 위해 우편접수조차 허용하지 않는 대학의 행태로 인해 매년 되풀이될 수험생의 비용부담 등 사회경제적 부담을 ‘육영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묻어둘 수는 없다. 따라서 대학교육과 서비스 개혁에 수요자 즉 소비자의 참여는 필수적이다.

금년에는 좀 개선될 것인지, 대학도 이제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급자 위치에 있으며 최소한의 서비스 제공자로서의 자질을 갖추고 경쟁해야 한다는 사실은 인식하고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대학 결정과정에 학부모 참여를

따라서 이런 불신들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조치들이 필요하다. 첫째, 대학은 지금까지 발생돼온 허다한 문제와 낙후된 행태를 방치해온 것을 반성하고 대학 측이 책정한 전형료 근거를 밝혀야 한다. 또 전형료 수입의 내역 역시 전형 업무에 충실히 사용됐는지 공개해야 한다. 이에 대해 금년 초 YMCA가 감사원에 감사 요청한 사실이 있고 또 감사에 착수할 수 있다는 회신을 받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야무야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둘째, 금년의 입시관리 등 진행과정을 보면서 대학이 수험생을 우선 고려하는 방향에서의 입시관리 대책을 세우기 위한 의식전환이 시급함을 느꼈다. 따라서 대학은 금번 입시의 경우 우선 개선이 가능한 방법을 제안하고 이의 시행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 예를 설명하면 전국의 대학이 공히 입시원서 양식을 통일해 수험생의 편의를 도모할 것, 분산접수(지방에 접수 창구 개설)를 시행할 것, 국립대학 및 사립대학 등 가능한 대로 접수창구를 네트워크화해 서울의 대학도 수험생 출신지 대학에 접수할 수 있도록 할 것(예, 서울대학을 응시하는 광주 학생의 경우 전남대학에 접수하도록 하고 전남대학이 서울대학으로 보내면 됨), 기숙사 개방, 학교버스 제공 등 편의 시설 준비, 입시원서에 기숙사 등 숙박, 교통에 관한 안내 요망, 면접 시험방법 개선 등이다.

셋째, 수요자 중심으로의 교육 개혁을 위해, 대사회적 영향을 끼치는 대학의 결정과정에 학부모 등 수요자의 참여가 필수적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등록금 등 대학교육 서비스의 가격 결정을 위해 수요자가 참여하는 실질적인 ‘학사운영위원회’의 구성이 필요하다.

학생과 학부모들, 권리의식을 찾자

이제 대학은 학문의 전당만으로 학생과 학부모의 권리와 편익을 외면해도 되는 사각지대로 방치될 수 없다. 우선 교육소비자 운동의 관점에서 수험생들부터 자신의 권리의식으로 대학생활을 여는 주체가 돼야 할 것이다.

신종원 서울 YMCA 시민중계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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