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2년 01월 2012-01-02   1765

경제, 알면 보인다-가계부채 대란에 앞서 구제제도 개선 이뤄져야

가계부채 대란에 앞서 구제제도 개선 이뤄져야

제윤경 (주)에듀머니 대표

현재 채무 과다자 구제제도로 시행되고 있는 것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프리워크 아웃과 개인 워크아웃, 개인 회생 제도와 같이 부채 구조를 조정해서 상환을 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파산 제도와 같이 부채 전체에 대해 상환 의무를 소멸 시키는 방식이 있다.

  상환 내용과 방식을 채무자의 조정을 통해 부채 상환을 이행하게 하는 제도들은 다시 원금을 감면해 주는 것과 이자만 감면해주는 것, 원금과 이자 모두를 갚되 이자율을 조정해 주는 방식으로 구분된다.

  각각의 제도는 그 취지가 채무자의 원활한 경제 생활을 보호하는 범위 내에서 가능한 수준의 채무 상환을 도모하는 것으로 채무자의 소득 수준에 따라 적합한 제도를 취할 수 있다. 채무자의 대부분은 채무 전체를 소멸시키는 파산을 가장 크게 선호할 수밖에 없고 혹은 원금감면이 이뤄지는 제도를 선택하려는 경향이 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제도 모두 나름의 진입장벽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선호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부채 현황과 다른 재정적 상황에 따라 제도 이용이 제한된다. 여기서 문제는 제도 이용의 진입장벽이 지나치게 네거티브한 방식이어서 채무자의 상태에 따라 적절한 제도를 선택하도록 돕기보다는 오히려 제도의 이용 자체를 회피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 따라서 채무자들이 그 제도의 이용에 있어 많은 저항감을 드러낸다.

 

무서워서 구제제도 피하게 만들어

진입장벽의 대표적인 것은 ‘채권추심에 노출된다는 것’과 ‘도덕적 해이라는 사회적 이데올로기가 만들어 내는 죄의식’이다.

  우선 회생이나 워크아웃 제도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신용불량 등록이 이뤄져야 하는데 신용불량 등록은 연체가 3개월 이상 지속된 상태에서 이뤄진다. 결국 3개월 이상 연체를 하면서 채권추심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채권 추심 내용이 과거에 비해 불법성이 상당히 제거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채무자들의 인격모독이 잔인하게 이뤄지고 공포심을 유발하고 있다. 혹은 비교적 원만한 내용의 추심이라 하더라도 하루 종일 수 십 통의 추심 전화를 접하는 일은 그 자체가 일상생활을 파괴하는 일일 수밖에 없다. 그러한 생활을 3개월 이상 지속해야만 신용불량 등록이 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제도의 모순을 실감케 한다.

  두 번째는 도덕적 해이라는 죄의식의 문제인데, 현장에서 살펴보면 도덕적 해이에 의해 부채 상환을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채무자보다 죄의식에 빠지는 채무자를 더 많이 접한다. 이러한 죄의식은 구제제도를 이용하는 것에 대해 의식적인 회피를 만들어 낸다. 혹은 자존감을 훼손시킴으로 인해 구제제도를 이용한 후 자립과 회생에 대한 동기를 꺾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

  이러한 도덕적 해이에 대한 죄의식은 사회화된 의식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죄의식으로 인해 당장 구제제도를 이용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제도 이용을 회피하면서 빚을 무리하게 갚으려고 한다. 물론 부채 상환여력이 있다면 갚으려는 노력을 하는 것 자체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부채 상환여력이 없음에도 갚으려는 노력을 하게 되면 부채가 악성화 될 수밖에 없다.

  가령 5천여 만 원의 빚이 있고 상환여력이 없을 때, 빚을 갚기 위해 다시 카드론이나 신용카드 리볼빙을 이용하게 된다. 당장 카드론 한도가 주어지고 금융권에서 리볼빙과 관련된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수시로 리볼빙 이용과 관련된 요청이 이뤄진다. 이럴 경우 자신의 부채 상환여력에 대한 냉철한 판단을 회피하고 당장 급한 김에 이러한 종류의 카드 대출을 이용하는 유혹에 노출된다.

  그러나 이러한 종류의 카드 대출은 이미 20% 이상의 고금리 상품이다. 가뜩이나 부채상환 여력이 취약해 당장의 현금흐름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20%이상의 고금리 상품까지 이용하게 되면 가계는 급속하게 파산으로 치닫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개인에게 신용이 계속적으로 주어지면서 몇 개월 지나지 않아 부채 규모가  순식간에 더 큰 규모로 증가해 버린다. 결국 구제제도를 적절한 시점에 이용했다면 초기의 5천여 만 원의 빚에 대해서만 조정이 이뤄지면 되었을 텐데 부채 규모를 키우게 되면서 사회적 비용이 더 크게 발생하게 된다. 

  뿐만아니라 이미 지나칠 정도로 악성화된 재무 상태에서 제도 이용을 했을 경우에는 좀 더 일찍 제도 이용을 했을 경우와 비교해 재무 구조 개선이 더욱 어려워진다. 제도를 이용하기 전 채권 추심에 노출됨으로 심리적으로 피폐해진 상태에 내몰리기 때문에 적극적인 소득활동에 대해서도 극도의 무력증을 갖거나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리면서 정상적인 경제활동 동기가 크게 저하된다.

 

자립 동기마저 꺾어버려

또한 구제제도 자체가 이미 이용자에 대해 강한 패널티를 적용하려는 의도를 많이 함의하고 있음으로 인해 부채 상환 조정에 있어서도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다. 즉 수입에서 최저 생계비의 150%만 남기고 나머지는 전부 부채 상환에 강제시킨다. 이런 여건에서는 부채상환을 위해 최소한의 저축도 불가능해 질 수 있다. 최저생계비의 150%라고는 하지만 이미 최저생계비가 최소한의 품위가 가능한 수준이 아닌 굶어죽지 않을 정도의 한계선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렇게 비현실적인 제도 운영으로 인해 상당히 많은 이용자들이 구제제도에 의해 조정된 부채 상환 조차 끝까지 이행하지 못한다. 변제기간도 지나치게 길어 이미 불안한 노동환경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 끝까지 변제를 완료하지 못하게 하는 한계도 갖고 있다. 사실상 5년 7년의 기간 동안 정해진 부채 상환 액수를 끝까지 완수해야 한다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그 기간 동안 갑자기 소득이 중단되거나 가족 사항에 변동이 있을 수 있고 가계 재무 상황에도 전세금 인상과 같은 여러 변수들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진입장벽은 오히려 사람들을 극단적인 상황으로 내몰 위험이 있다. 이미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저소득층은 물론이고 중산층들마저 위험한 수준이다. 구제제도 전반의 수술이 이뤄지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다. 도덕적 해이라는 잣대를 전제할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부채 상환이 이뤄질 수 있는 사람을 위하는 안전망이 절실하다. 최근의 서점가 베스트셀러를 살펴보면 치유와 위로, 공감의 책들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 만큼 사람들은 지쳐있고 툭 건드리면 터질 듯 한 마음으로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비인간적인 구제제도는 이미 구제제도로서 가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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