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2년 01월 2012-01-02   2684

칼럼-중구난방(衆口難防) 2012

중구난방(衆口難防) 2012

 

 

 이태호  월간 『참여사회』 편집위원장, 참여연대 사무처장

 


1.


중구난방衆口難防 1)이라는 고사성어는 종종 어수선하고 종잡을 수 없이 제각각 떠드는 모양새를 부정적으로 표현하는데 주로 사용됩니다. 하지만 중구난방이라는 고사성어의 본래 뜻이나 유래는 사뭇 다른 듯합니다.

 

중국의 역사서인 십팔사략에 따르면 중구난방이라는 고사성어는 주나라 소공召公이 여왕周勵王의 탄압 정책에 반대하며 “백성의 입을 막는 것은 개천을 막는 것보다 어렵습니다[防民之口 甚於防川]. 개천이 막혔다가 터지면 사람이 많이 상하게 되는데, 백성들 역시 이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내를 막는 사람은 물이 흘러내리도록 해야 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은 그들이 생각하는 대로 말을 하게 해야 합니다”라고 충언한데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주나라 여왕은 소공의 충언을 따르지 않았으므로 백성들은 국인폭동國人暴動으로 알려진 난을 일으켰고, 여왕은 도망하여 평생을 갇혀 살게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여왕이 없는 동안 일부 제후와 재상이 왕을 대신하여 집정執政하던 시기를 공화共和라 불렀는데, ‘공화제共和制’란 말이 여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중구난방과 관련된 고사는 백성들의 생각과 말을 흐르는 개천에 비유함으로써 사실상 그 속에 일정한 경향과 흐름, 즉 시대정신이라 할 만한 것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구난방이 무질서를 상징하는 표현으로 알려지고 이용되게 된 까닭은 민주주의에 대한 통치자들의 원초적인 두려움과 공포가 반복적으로 이 용어의 해석에 작용해온 탓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중구난방(衆口難防) 2012

2.


2011년은 전 지구적 의미에서 ‘중구난방’의 한 해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연초 시작된 아랍과 북아프리카에서의 민주화 도미노가 금융자본주의의 심장부인 월스트리트 점거시위로 이어지고 이것이 다시 유럽과 전 세계로 ‘역병처럼 퍼져나가’ 전지구적인 민주주의 운동의 흐름을 형성하였습니다. 이 흐름은 시민들의 신속하고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가능케 한 SNS 시스템에 의해 촉진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시민이 주도하는 민주주의의 흐름은 여지없이 하나의 시대정신으로 자리잡고 있다. 2011년 한 해 동안 극단적인 경쟁사회, 양극화사회, 위험사회, 소수를 위한 특권사회에 대한 시민의 이의제기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습니다. 경제민주화, 복지, 평화, 표현의 자유를 향한 목소리가 힘을 얻는 반면, 재벌체제, 정당질서, 주류언론, 공안기구 등은 전에 없는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정리해고, 비정규직, 민영화, FTA, 원자력발전, 군사기지 등 2011년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군 사회적 이슈의 목록을 보면, 시민들 내면의 금기가 해체되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기성의 체제가 제시한 (글로벌) 스탠다드는 무너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99%의 시민들이 더 이상 그들의 언어와 권력에 더 이상 주눅 들지 않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 볼만 합니다.

 

주류언론은 이러한 경향을 여전히 혼란과 위기의 징후로 표현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위기는 특권적 구조의 재생산에 봉사해온 가부장적인 국가주의, 시장만능주의의 위기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시민들이 맹목적으로 강조되어온 국가안보나 국익보다 사회적 안전망과 구성원 개개인의 행복을 위해, 고삐 풀린 시장의 자유보다는 시장과 국가권력에 대항하기 위한 표현의 자유를 위해 행동함으로써 도리어 실질적으로 더욱 공익적이고 안전하며 균형 잡힌 사회로 나아갈 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겁을 집어먹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시민이 주도하는 민주주의가 가져올 건강한 결과에 대해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연말 들어, 사정기관들에서는 SNSSocial Network Service를 규제하기 위한 일련의 방책들을 내놓고 있습니다. 최근 수년간, 특히 올해에 와서 ‘역병처럼 번져나가’ 정권의 존립마저 위협하게 된 SNS에 대한 검열과 통제를 시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기간 중 선관위는 ‘정치성향이 있는 유명인들이 SNS를 이용하여 투표독려를 위한 인증샷을 올려서는 안 된다’는 모호하고 포괄적인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는데, 이 방침은 여론의 조롱과 비난 속에 사실상 무력화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뒤이어 몇몇 보수적인 시민들이 선관위 방침을 근거로 익살스런 투표독려 인증샷을 올린 김제동 씨와 조국 씨를 선거법 위반혐의로 검찰에 고발하자, 검찰은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이어 검찰은 지난 12월 26일 내년 총선을 앞두고 SNS 선거운동 처벌기준을 작성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선관위와 검찰에 이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도 SNS 규제에 나서고 있습니다. 방통심의위는 SNS를 위원회의 심의대상으로 포함시킨데 이어 이를 규제하기 위한 전담팀도 꾸렸습니다.

 

이명박 정부 당국의 이런 접근방식은 SNS에서 일어나는 시민의 의사소통이 본질적으로 예측하기 힘든 혼란을 야기한다는 인식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부질없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강력한 단속이나 처벌로도 SNS를 통한 자유로운 생각의 이동을 통제할 수 없을 뿐더러, 설사 SNS를 잠시 통제하는데 성공한다 하더라도 군중의 입을 막는 것은 본디 가당치 않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2012년에도 중구난방의 힘, 그 신나는 축제의 에너지는 어김없이 시민이 주도하는 새로운 민주주의의 역사를 열어나갈 것입니다.

 

 

* 이 글은 필자가 2011. 12월 29일자 프레시안에 ‘중구난방(衆口難防), 무리의 입은 막을 수 없다’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글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20111229093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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