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3년 04월 2003-03-25   421

참여정부, 개혁-수구의 싸움은 시작됐다

일단 엎드린 관료사회, 보수언론 재벌 여야 기득권 “딴지걸기” 시동


파격적인 내각인사와 서열파괴, 과거 운동권 세력의 대거 청와대 입성, 모두 “노무현 개혁호”의 힘찬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그러나 지난 대선에서 확인된 변화와 개혁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라는 조건을 빼면 노정부가 처한 개혁의 조건은 YS와 DJ정부보다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 외견상 정부의 개혁에 순응하는 듯한 관료사회, 그러나 고위직 관료사회의 정중동 속에는 “내 밥그릇 건드리는 개혁은 시기를 노려 좌초시킨다”는 기득권 엘리트의 노련함이 숨겨져 있다. 정권초기 개혁에 대한 수구의 도전은 보수언론과 여야 기득권세력으로부터 이미 시작됐다.

“DJ정부 시절 행자부는 지방분권이나 공무원 노조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했지만 지금은 새 정부의 개혁안에 맞춰 내부 대비책을 가지고 있다. 새 장관이 요구할 사항을 미리 예상하면서 그에 맞춰 1안, 2안, 3안 등으로 대비책을 준비한다. 그러나 기회만 생기면 무서울 정도로 틈새를 비집고 들어올 것이다.”

오랫동안 광화문 정부종합청사를 출입했던 한 일간지 기자가 남해군수 출신의 젊은 장관을 맞는 행자부 고위 공무원의 분위기를 표현하는 말이다.

관료사회 “지금은 엎드릴 때”

‘정부 내 중앙정부’로 불리는 행자부 공직자의 개혁정책에 대한 반응은 관료사회의 분위기를 압축해서 보여주고 있다. 강력한 지방분권론자인 김두관 장관의 임명 자체가 중앙 관료조직의 권한 축소를 의미하고 있기 더욱 그렇다.

행자부 공직사회는 일단 ‘저항보다는 적응과 주시’를 선택하는 모양세다. 또 초기 충격요법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검찰인사를 예외로 한다면 노 정부의 공직사회 개혁은 조직의 안정성이 최대한 유지되는 선에서 추진되고 있다.

김동완 비서실장은 “최근 간부회의에서 장관이 연공서열과 전문성·능력을 50 대 50의 비율로 고려해 인사를 하겠다는 원칙을 밝혔다”면서 “기존 관행을 완전히 무시하지도 않고, 다수의 공개적인 추천은 의견을 수렴할 것”이라고 인사원칙을 설명했다. 김 실장의 다른 여러 개혁 구상에 있어서도 관료사회를 개혁의 대상이 아닌 주체로 세우려는 고민이 엿보였다.

그러나 행자부 공무원들 사이에서 사석에서 나도는 얘기 중에는 “대통령이 강력하게 나설 때야 대놓고 반대하기 어렵지만 결국 제대로 안 될 것”이란 식의 얘기가 오간다는 전언이다.

‘평검사들과의 대화’ 이후 가라앉는 분위기지만 검찰조직의 개혁 반발 역시 잠복돼 있다고 볼 수 있다. 민주당 개혁특위의 한 인사는 “검찰의 SK수사는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지 구속할 수 있다는 과시수단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검사 생활을 오래했던 한 변호사는 “강금실 장관 기용은 일종의 충격요법으로 효과는 있을 수 모르지만 조직장악력과 개혁 마인드의 부재로 장기적으로 검찰개혁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정권초기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에 일단 숨죽이는 관료사회. 그러나 개혁을 내세웠던 역대 정권의 경험으로 볼 때 관료사회의 반발은 언제고 터질지 모르는 복병이다.

“경제부처 내각의 보수성은 전반적인 개혁 후퇴의 가능성”

파격 장관, 서열파괴 등으로 표현되는 행자부, 법무부 등의 개혁 작업이 관료사회의 저항으로 인한 개혁후퇴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면, 재경부 출신들의 경제부처 장악은 새 정부 경제개혁의 내재적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

김진표 재경부장관 겸 부총리에 이어 산자부장관, 기획예산처 장관, 국무조정실장, 정책수석 등 경제부처 핵심요직을 재무부 출신 관료들이 독차지한 것이다. 이 때문에 분배구조의 개선이라는 진보적 개혁뿐만 아니라, 시장의 투명성·공정성 강화라는 DJ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개혁마저도 쉽지 않을 것이란 진단이 나오고 있다.

인수위 활동과 관련 후문에 따르면 “조세 포괄주의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사전 준비기간이 2년 이상은 걸린다는 재경부의 입장과, 2004년부터 조기 도입해야 한다는 인수위의 입장의 대립이 있었다.”

최근 재경부가 발표한 조세 포괄주의의 연내 도입 등 일련의 개혁정책은 노 정부의 경제개혁 정책들의 골자를 유지하면서, 관료 출신이 장악한 경제부처 내각에 대한 우려를 어느 정도 불식시켰다는 평이다.

그러나 YS와 DJ정부에서 ‘노선은 개혁, 사람은 보수’로 추진된 개혁의 한계 또한 분명하다. DJ정권 시절 규제개혁위가 추진했던 ‘전문자격사제도 개혁안’이 재경부 등 관계부처 공무원의 반발로 무산된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김기식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경제 논리는 다른 사회정책에 대한 확장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경제부처의 보수성이 시간이 갈수록 전반적인 개혁후퇴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를 뒷받침하듯 지난 19일 경제 5단체는 경제위기론에 편승돼 출자총액규제 예외 유지, 집단소송 유예 등 새 정부 재벌개혁을 후퇴시키는 경제정책을 주문했다.

아직 청와대는 ‘외로운 개혁의 섬”

지금 개혁과 반개혁의 대립은 내각 내부보다는 정부와 보수언론, 정부와 여야 기득권세력 사이에 화력이 집중돼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행자부 장관비서실의 한 보좌관은 “동아일보 기자 3명이 남해시에 내려와 10일 동안 뒤지고 다녔다는 말을 들었다. 국회 행정자치위 소속 한나라당 의원 역시 김 장관에 대해서만 17건의 관련 자료를 남해시 관계 당국에 요청한 상태다”고 말했다. 그는 “내각의 대표적인 개혁장관을 초기부터 좌초시켜 노 정부의 개혁을 흔들어보겠다는 발상”이라고 진단했다.

노 정부의 개혁세력 내부에서는 “참여정부 인수위에 참여했던 이범재 씨의 구국전위 활동 전력을 보수언론이 색깔론으로 몰고가는 것은 시작에 불과할 것”이란 각오 섞인 얘기들이 오가고 있다.

최근에는 개혁 세력 내부에서도 당 개혁안을 놓고 이견이 표출되고 있다는 애기도 들린다. 민주당 개혁 그룹의 한 인사는 “당 개혁안이 개혁세력 내부의 이견으로 명분과 추진력을 잃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보수언론과 야당의 저항이 예견된 개혁의 객관적 조건이라면, 집권당인 민주당의 분란과 구주류 세력의 정당개혁안에 대한 저항은 개혁의 주체적 한계다. 당 개혁을 이끌고 있는 천정배 민주당 개혁특위 간사는 최근 “지구당 개혁을 포함한 당 개혁안이 합의되지 않는다면 결국 신당 창당이 불가피하다”는 말로 당내 기득권세력의 저항을 에둘러 피력한 바 있다.

청와대와 집권당의 개혁그룹 분포의 불균형을 지적하는 의견도 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인수위에 참여했던 소장개혁파의 90%는 청와대로 갔다”면서 “당에 남은 사람들 사이에는 약간의 자괴감도 있다”고 전했다.

청와대 보좌진 인사와 관련 안희정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은 “과거정권의 경험자들이 필요하다는 전제 아래 그들에게 맡기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았다. 초기에 수구세력의 저항을 일정 정도 무마하기 위해 노 정부의 개혁 컬러와 맞지 않는 인사들을 들이지 않았다”면서 청와대 인사의 개혁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역대 어느 정권보다 ‘운동권 출신’이 대거 포진한 청와대의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개혁으로 뭉친 집권당의 강력한 뒷받침이 절실한 것은 불문가지다. 안희정 부소장의 말마따나 “개인의 집권이 아닌 세력으로서 집권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청와대는 여전히 ‘외로운 개혁의 섬’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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