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3년 04월 2003-03-25   1182

『전쟁의 기억, 기억의 전쟁』

‘월남에서 돌아온 김 상사께’


봄볕이 하늘하늘 상춘객을 부르고 있지만, 잠시 시간을 거슬러 새해 벽두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새해 아침, 한 방송사에서는 베트남 10주년을 기념하는 다큐멘터리를 방송했습니다. 한류(韓流) 열풍이 불고 있는 호치민시를 지나 베트남 전쟁의 격전지였던 다낭을 지납니다. 당신을 비롯한 한국군들도 이곳에서 생사의 고비를 넘겼겠지요. 그런 생각이 스치자 저는 TV 앞으로 바싹 다가앉습니다.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제가 원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습니다. 고로쇠나무도 아닌데 몸에서 진기가 빠져나간 듯 맥이 풀립니다. 이번에도 역시 반쪽만 쓰여진 역사입니다. 프로그램마다 기획 의도라는 게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저이지만, 해야 할 말을 피해가는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은 괴로운 일입니다. 거짓을 이야기하는 것만이 죄가 아니라 할 말을 안 하고 침묵하는 것도 죄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김 상사님! 당신도 보셨는지요? 그 다큐멘터리를? 아니 설혹 보시지 않았더라도 베트남 전쟁 발발 후 지금까지 이 땅에서 쓰여지고 있는 반쪽의 역사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제가 지금부터 말하려고 하는 책 『전쟁의 기억, 기억의 전쟁』은 바로 그 ‘쓰여지지 않은 반쪽의 역사’, ‘기록되지 않은 다른 기억’에 관한 책입니다.

1966년 음력 9월 27일 아침 7시경이었다. 한국군은 마을에 들어오며 닥치는 대로 쏘았다. (중략) 아버지는 밥을 먹다가 밥그릇을 든 채 넘어져 있었다. 입안에는 밥알이 그대로 있었다. 조카들은 기어다니기에 아, 안 죽었구나 하고 가보니 기어다니는 채로 죽어 있었다. 뚜껑 없는 땅굴로 가보니 어머니와 조카들이 앉아 있었다.

안 죽은 걸로 알고 꺼내려고 보니 앉은 채로 모도 죽어있었다. 외조카는 모두 세 명의 아이를 데리고 있었는데 생후 두 달된 아이는 죽어서도 가슴에 안고 있었다. 젖을 먹이던 중이었는지 젖 한쪽이 나와 있었다. 얼마나 무서웠는지 얼굴이 파랬다.

민간인을 죽이지 말라

글로 옮기기도 두려운 이 무시무시한 기억은 『전쟁의 기억, 기억의 전쟁』에 나오는 꾸앙응아이성 선띤현 푹빈촌의 응웬 리 씨의 것입니다. 김상사 님도 이런 기억을 갖고 계시는지요? 지난해 저는 ‘베트남전’을 소재로 다룬 소설로 유명해진 한 소설가를 만났습니다. 마침 그 자리의 주제가 ‘전쟁과 종군 기자’여서 저는 오랫동안 품어왔던 질문을 풀어놓았습니다. “정말로 베트남에서 한국군이 그렇게 몹쓸 짓을 했나요?” 그의 질문이 담배 연기와 함께 뿜어져 나왔습니다. “나쁜 짓 많이 했지. 전쟁이 그런 거야.”

‘전쟁이 가해자인 한국군에게도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가?’라는 기억에만 매달려 있는 것 같던 작가에게도, 또 다른 기억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기억’을 애써 되찾으려고 하는 것일까요? 저는 그 답 역시 이 책에서 찾습니다.

우리에게 “민간인 죽이지 마라, 아이나 노인이나 여자 죽이지 마라, 강간하지 마라” 한번이라도 얘기했다면 그렇게까지는 안 했을 겁니다. 단 한번도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월남 가는 교육을 받으면서부터, 배 안에서 월남에 도착해서 내가 들은 이야기는 “강간을 하고 나서는 반드시 죽여라. 죽이지 않으면 말썽이 생긴다. 아이들도 베트공이니까 다 죽여야 한다.”였습니다. 베트남전의 성격을 알기만 했더라도 베트남의 역사를 한번이라도 읽었더라도 나는 그렇게는 안 했을 것 같아요.

김 상사님과 같이 전쟁을 치른 또 다른 김 상사 김영만 씨의 증언입니다. 백마부대 11중대원으로 베트남 전쟁에 참가한 그는, 게딱지같은 집을 31차례나 이사다닐 만큼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도 원호 신청을 하지 않았고, 화랑 무공 훈장도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베트남 전쟁으로 돈을 받는다면 사람을 죽인 대가로 돈을 받는 것’ 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솔직히 저는 300여 쪽의 책에서, 이 부분에서 가장 많이 울었습니다. 업이 업인지라 저는 글로서 인쇄된 내용도 그림으로, 영상으로 떠올리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런 저에게 젖을 문 채로 죽어간 아이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공포, 그 자체입니다. 지하철, 사무실을 가리지 않고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국인, 그것도 월남전의 김 상사 님들이 벌어온 달러로 이뤄낸 한강의 기적의 후손이었습니다. 피라는 게 참 몰염치한 것인지, 전쟁의 피해자보다도 더 제 가슴을 긁어댄 것은, 삶의 방향이 잡히지 않은 어린 나이에 끌려간 가해자, 당신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그 몹쓸 일을 치르고, 기억했을 당신의 생은 또 얼마나 괴로웠을까를 생각하니, 눈물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용병으로 고용했던 나라, 미국에서는 종전 이후 대규모의 참전 군인들이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해득실을 따져 전쟁을 일으킨 나라의 사람들도 그런데, 이유도 모른 채 광기 속에 끌려간 용병 김상사 님의 혼란과 상처는 누가 보상해주는 건가요?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전쟁에서 죽어간 자와 살아남은 자 모두의 상처를 치유하고 화해를 제의하는 책입니다. 물론 진정한 화해는 진실 위에서 가능한 것이기에, 고통스럽지만 진실과 대면하기를 종용하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아는 김 상사님이 계십니다. 여고 시절 제 뒷자리에 앉아있던 J의 아버님도 월남에서 돌아온 김 상사였습니다. 그분께도 전쟁의 기억은 잔인했던지 술만 드시면 폭력과 통곡이 되풀이됐고, 그런 기질이 빌미 잡혀 삼청교육대에 끌려가기도 했습니다. 굴곡 많은 우리의 현대사가 김 상사 님을 또 한번 나락에 빠트린 것이지요.

전쟁의 고통이 대를 잇지 않기 위하여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초읽기에 들어갔습니다.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이 글이 책으로 나올 때쯤엔 이미 전쟁이 시작됐을지도 모릅니다. 참여정부는 이미 전쟁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파병을 적극 검토하고 있습니다. 나이를 따져보니 김 상사님의 아들 뻘 되는 친구들이 파병 대상이더군요. 전쟁의 고통이 대를 잇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한미 동맹 운운하며 파병에 찬성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의 한 구절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지금도 상황은 다르지 않으니까요.

흔히 한국의 베트남전 참전은 한국전 당시 미국의 신세를 톡톡히 진 한국이 도저히 미국의 요청을 거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루어진 결정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미국의 신세를 가장 많이 진 나라를 꼽는다면 단연코 영국이라 할 수 있다.(중략) 영국조차 6명의 의장대를 보내는 것으로 그친 명분 없는 전쟁이 바로 베트남 전쟁이었다. 그러나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이 등을 돌린 이 전쟁에 한국은 32만의 병력을 파병했다.

김정은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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