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3년 04월 2003-03-25   1113

얘들아! 몸으로 말해봐~

둥둥둥… 선생님의 장구가락에 맞춰 아이들은 주뼛주뼛 걷는다. “탁”소리에 제자리에 선다. 다시 둥둥둥둥 소리에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를 흉내내고, 자기 이름을 외치며 뛰어다니다가 제자리에 서기를 몇 차례. 그새 볼이 빨개진 아이들이 헉헉거린다. 엉덩이로 인사하자는 선생님의 말에 머뭇거리다 사방에서 날아오는 인사에 까르르 웃으며 엉덩이를 슬쩍 내민다.

경기 과천 ‘해마루 어린이 마당극학교’의 올해 첫 수업. 겨울 방학 때에도 참가했던 아이들이 꽤 있다. 이날 엄마와 아이들 20여 명은 조를 나누어 ‘ㄱ’부터 ‘ㅎ’까지 각 자음으로 시작하는 말을 넣어 ‘우리 동네는 ○○동네입니다’를 채우고 이를 그림으로 그린 다음 정지동작으로 표현했다. ‘쿠키처럼 달콤한’에서 코를 벌름거리며 ‘흐음∼’하고, 양팔을 벌려 허수아비처럼 서 있는 모습으로 ‘빨래가 잘 마르는’을 표현하는 몸짓들이 더없이 즐거워 보였다.

“아이가 동화 줄거리나 자기가 상상한 것들을 얘기해보려고 하더라구요. 이곳의 수업을 즐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딸과 함께 ‘온 몸으로’ 수업에 참가한 지은이(9세)엄마는 이렇게 만족감을 표시했다.

‘해마루’는 교육연극단체다. 80년대 후반에 국내에 소개된 교육연극은 단순히 대사를 외워 남들에게 연기를 해 보이는 것이 아니다. 주어진 상황에 대해 당사자가 즉흥적으로 표현하는 행위다. 표현 수단으로는 공동체 놀이, 역할놀이, 마당극 놀이 등이 활용되는데 이를 통틀어 ‘연극놀이’라고 쓰고 있다. 말 그대로 아이들의 놀이에 연극적 요소를 가미해 아이들이 생각하고 표현할 수 있도록 극적인 상황을 던져주는 것이다. 국내에는 어린이극단 ‘달팽이’ ‘사다리’등이 이미 10여 년 전부터 이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를 하고 있다. 이러한 바탕에서 ‘해마루’와 같은 지역의 작은 단체들이 연극놀이를 확산시켜 나가고 있는 것이다.

함께 하는 법 배워나가기

‘해가 밝게 비치는 터’라는 뜻을 가진 ‘해마루’는 오랫동안 극단활동을 해온 사람들 중 교육에 관심 있는 이들이 모여 2001년 만든 단체다. 초등학교 저학년반과 고학년반으로 나뉘어져 3월부터 9월까지 짜여진 수업의 성과를 연극으로 만든다. 아이들이 자신들의 일상을 소재로 삼아 대본을 만든다. 예를 들어 지난해 발표된 작품인 ‘학습지의 반란’은 부모와 아이들로부터 버림받은 학습지가 이들을 상대로 재판을 벌인다는 줄거리였다.

본격적인 연극 준비에 앞서 아이들은 이날 첫 수업과 같은 몸풀기 훈련을 한다. 이 기간동안 낯선 사람과 환경에 익숙해지면 자신들이 표현한 결과물을 가지고 친구들과 공연의 틀을 잡아간다. 이 때는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을 바꿔해볼 수 있는 역할놀이 등을 통해 극의 장면 하나 하나를 구상한다.

짧지 않은 준비기간 동안 아이들의 시행착오는 당연하다. “아이들이 남을 배려하고 함께 고민해서 더 좋은 방법을 찾아가는데 익숙하지 않아요.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양보를 못해서 결국 어떤 것도 결정을 못하는 팀들이 있어요.” 박정열 대표의 말이다. 하지만 이런 아이들이 서서히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여간 뿌듯하지 않다. “역할을 맡으면 아이들이 스스로 중요한 존재임을 깨닫죠. 그리고 상대방이 없으면 나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가면서 모자란 부분들이 점차 채워지는 거예요. 엄마들이 원하는 창의력이나 발표력과 같은 효과들이 아니라 아이들이 내적으로 변화를 겪는 거죠.” 박 대표가 아이들에게 궁극적으로 가르치고 싶은 것도 “함께 하는 법”이다.

‘푸른 교실’과 ‘아름다운 학교’는 서울 구로 지역의 공부방이다. 상근교사 2명과 32명의 초·중학생들이 만나는 이곳에서도 매주 한번 연극수업이 열린다. 처음에는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어둡게 그늘진 아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기 위해 연극수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은 치료수단이 아니라 놀이로 연극을 즐기는 동안에 치료의 효과까지 얻고 있다. 오길숙 교사는 “몸으로 부대끼면서 사람들 사이에 친밀감이 생겨나는 것을 느낀다”며 “다른 인물들에게 감정을 이입해 슬퍼하고 화내고 기뻐하면서 다양한 정서를 표출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놀이의 성과물로 이곳 아이들은 지난 2월 ‘우리들의 축제’를 열었다. 예쁘고 깜찍하기만 한 재롱잔치가 아니라 아이들이 연극과 노래, 공예 등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는 진지한 자리였다. 특히 연극은 관객들과 아이들이 반응을 주고 받는 식으로 진행됐다.

내 몸의 나를 느껴요!

초등학생 반인 ‘푸른 교실’ 연극수업에서는 공동체놀이에 중점을 두면서 아이들이 생활에서 접하는 것들을 몸으로 표현하도록 유도한다. ‘숫자 세며 앉기’는 아이들이 순서를 정하지 않은 채 1부터 외치며 차례로 앉는 놀이다. 정해둔 순서가 없기 때문에 눈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자기 차례를 정해야 한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같은 전래놀이도 ‘꽃이 춤을 춥니다’와 같은 형태로 바꾸면서 아이들이 다양한 몸짓을 구사하도록 이끈다.

동화나 일상 이야기를 몸으로 표현하는 수업도 한다. ‘일요일 우리 가족의 모습을 몸으로 표현하자’는 주문에 아이들은 텔레비전 리모콘을 열심히 누르거나 교회에 가서 기도를 하는 몸짓을 척척 만들어낸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아이들의 몸이 열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오 교사는 “초등학생들은 상대방을 이해하거나 배려하는 힘은 약하지만 몸의 움직임은 중학생들보다 자유스럽다”며 “수업을 하면서 아이들의 상상력도 자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름다운 학교’에서는 중학생들이 스스로를 느낄 수 있도록 많은 시간을 준다. 가령 장애인이 되어 몸과 마음의 변화를 느껴본다. 석고가면을 만들면서 자신과 상대방의 얼굴을 관찰는가 하면 가면을 쓰고 여러 가지 모습을 연출해보기도 한다. 이밖에도 마음속에서 두 사람을 각각 킬러와 보디가드로 정하고 킬러와 눈이 마주치면 죽고 최대한 보디가드에게 가까이 가는 ‘킬러와 보디가드’놀이나 다양한 역할 놀이를 통해 아이들은 자기 감정을 알고 상대방과의 관계를 조율해나가는 법을 익히게 된다.

아이들이 품고 있는 다양한 감정들을 건강하게 발산할 공간이 우리 제도교육권에는 아직 충분치 않다. 그만큼 아이들이 자신을 겉으로 표현하는 것을 낯설어하고 힘들어 할 수밖에 없다. 자신을 충분히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끼가 아이들에게 풍부하게 잠재돼 있는데도 말이다. 처음에는 낯설어 하고 피하려고 하지만 어느새 또래 틈에 들어가 있는 아이, 평소에는 위축되어 있고 자신감이 없지만 무대 위에 오르면 자신의 생각을 온몸으로 뿜어내는 아이들을 보면서 교사들은 이를 확인했다. 특히 “몸이 빠르게 성장하고 감정이 더없이 풍부한 시기에 놓여 있는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은 자기 자신을 자유롭게 발산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고 교사들은 입을 모은다.

지금 우리 아이들은 지금 옆을 곁눈질하거나 뒤를 돌아보지 못하고 무조건 앞으로만 내달리고 있다. 자신의 ‘진짜’ 몸과 마음도 잃어가는 듯하다. 언젠가 아이들은 딱딱하게 굳어 있는 자기 몸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른들처럼. 그러기 전에 아이들아, 우리 몸으로 한 번 말해볼까?

김선중(참여사회 기자)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