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6년 07월 2006-07-01   717

천진한 얼굴, 뜨거운 가슴, 꽃집 아저씨

짱 몸짱 열풍에 이어 동안(童顔)이 뜨고 있다. 요란한 차림과 온갖 성형수술로 무장한 동안은 TV 화면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다. 하지만 청정동안(淸淨童顔)을 찾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격이라면 지나친 표현일까.

‘꽃집 아저씨’를 만나러 가던 날은 진종일 비에 천둥 번개까지 가세하던 날이었다. 수원은 서울에서 지척이건만 그날 따라 천릿길이나 되는 듯싶었다. 궂은 날씨 탓인지 화서역에 내리자마자 이른 시각인데도 사방은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한 남자가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며 다가오고 있었다.

참여연대 회원사이트 ‘활기차’의 성골(聖骨)회원, 안정희(37세)님. 70년생 개띠라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는 얼굴에 웃음소리까지 천진하다. 혹 82년생 개띠가 아니냐고 묻자 함박꽃 같은 웃음을 터트린다. 과연 ‘믿음꽃집’의 주인다운 웃음이요, 청정동안이 더욱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자리를 마주하고 앉자 금세 얼굴이 어른스럽게 보인다. ‘활기차’에 많은 글을 쓰고 있는 안정희 회원은 ‘삶을 사랑하며’라는 아이디에 걸맞게 삶에 대한 애정이 충만한 탓인지 사회적 약자들이 겪어야 하는 모순과 부조리를 꿰뚫고 있는 듯했다.

내가 있는 곳에서 약자와 함께

“주거환경개선사업이 이곳 고등동 1, 2지구에서 7년 째 시행되고 있어요. 주거환경개선사업은 노후불량건축물이 밀집되어 있고 대지가 협소하여 주거밀도가 높으며 공공시설의 정비가 극히 불량한데도 재개발사업이 곤란한 지역에 공공시설, 주택개량을 실시하여 현재 살고 있는 주민이 그 자리에서 살 수 있도록 환경을 개선하는 사업이지요.”

흡사 브리핑을 하는 분위기로 요점 정리를 해간다.

“사업주체 선정부터 주민대표회의를 통해 추진된다면 세입자들에게도 혜택이 돌아오죠. 저소득층을 위한 사업인데 생활보호대상자 등 어려운 분들은 공공임대주택에 들어가더라도 임대비를 감당 못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 분들을 보호할 수 있는 주민대표회의를 만들고 싶은데 실제로 주민대표회의는 특별한 권한은 없고 진행되는 사업에 대한 견제와 원가분석 정도 할 수 있는데…….”

말 한마디 한마디가 자못 의미심장하다. 지역사회를 위하여 일찍이 발벗고 나선 가난한 그에게 어찌 유혹이 없었으랴. 살만한 아파트 한 채는 주겠다는 감언이설에 일주일 정도 잠을 못 잤다는 고백도 했다.

“재민이가 아빠 나는 언제 침대에서 자요? 그럴 때 아빠로서 할 말이 없고 코끝만 찡하더군요. 고민을 하다 재민이를 위하여서도 이건 아니다 라는 결론을 내렸지요.”

꽃가게에 딸린 단칸 셋방은 아들 재민(5세)이가 원하는 침대는 도저히 들어올 수 없는 크기다. 그도 약자의 권익보다는 아들의 소박한 소원을 들어주는 아빠가 되고 싶어 잠깐이지만 고민했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중고교 과정을 모두 검정고시로 마치고 10대 때부터 시위 현장을 종횡무진 누빈 그.

“학력이 필요하기보단 배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16살 때부터 흥사단 강연부터 좋은 강연은 다 듣고 다녔어요. 그런데 세상이 모순투성이더군요, 실제로 시위 현장에서 있었던 사실을 언론이 교묘히 비틀어서 보도한다는 걸 알고 더욱 앞장을 서게 되었죠.”

우리의 삶을 사랑하며

역사의 수레바퀴가 최루탄과 함께 돌아가던 1980년대를 미성년으로 통과한 그는 군 복무도 만만찮게 했다고 했다. 덕분에 들불처럼 일던 사회의식도 군이란 특수한 집단 속에서 차분히 갈무리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고 한다. 그 때부터 ‘삶을 사랑하며’라는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신경정신과 병원 직원, 컴퓨터 관련 사업, 경인일보 미디어팀, 생선장수, 우유배달……. 생활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그가 선택했던 직업들이었다. 결혼 일주일을 앞두고 부도가 나는 바람에 시작부터 가시밭이었던 결혼생활도 이젠 꽃동산이다.

“한 2, 3년만 열심히 일 하고 당신 하고 싶은 일하라고 아내가 말해요. 거의 혼자서 가게 일을 하자면 힘에 부쳐서 그러지요. 저도 아내에게 제일 미안해요.”

대화 도중 자주 휴대전화가 울린다. 짐작으로 그의 도움을 청하는 내용인 것 같았고 흔쾌히 해결사 역할을 자처하는 듯했다.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적극 나서지요. 그러나 어떤 일이든 해결되고 나면 그 자리에 나서지 않습니다. 주거환경개선사업 역시 잘 마무리 되면 그럴 거예요. 현 정부 사람들처럼 자리를 고집하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5·31 지방선거에서 참패를 하지요.”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평택미군기지 확장반대 집회에도 몸 사리지 않고 참여하는 그는 사회참여에 대해서도 자기만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민주화 운동의 주축은 20대가 되어야 하는데 요즘 그들은 취업 문제 때문에 사회의식이 없고, 국민들은 민주주의 이루어졌다고 착각하고 있지요. 비민주적인 탄핵으로부터 국민 손으로 대통령을 지켜주었으니 민주주의는 완성되고 국민의 역할을 잘 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이젠 먹고 사는 일이 더 급하다고 아우성입니다.”

“시간 여유가 좀 있으면 참여연대 시민공부모임에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싶고, 내가 사는 이곳에서 평택미군기지확장반대 집회의 진실을 알리는 사진전도 열고 싶습니다. 소외된 사람들을 돕기 위한 법률공부도 하고 싶고, 돈도 많이 벌어 재정적으로 어려운 시민단체도 돕고 싶고…….”

진정으로 삶을 사랑하는 사람의 절절한 희망이 쏟아진다. 여기, 꽃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이 꽃보다 더 향기로운 땀을 흘리며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이경휴 참여연대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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