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0년 05월 2020-05-01   1276

[떠나자] 베트남 하노이 – 하노이의 시간을 거닐다

베트남 하노이

하노이의 시간을 거닐다

 

 월간참여사회 2020년 5월호 (통권 275호)

베트남 수도 하노이는 ‘두 강 사이에 있는 도시’라는 뜻이다 Ⓒ김은덕, 백종민

 

하노이 호안끼엠 호수와 기찻길 마을 

‘두 강 사이에 있는 도시’라는 뜻의 하노이Hanoi는 물을 많이 머금고 있는 땅이다. 도시 곳곳의 호수가 무려 300여 개나 된다. 베트남 수도를 ‘호수의 도시’라고 부르는 이유다. 그중에서도 호떠이(서호)는 하노이에서 가장 큰 호수로 길이만 17km다. 호수는 하노이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다. 호숫가를 따라 잘 가꿔진 가로수 아래에서 하노이 사람들은 책도 읽고 산책을 하고 친구들과 커피를 마신다. 

 

관광객이 즐겨 찾는 호안끼엠Ho Hoan Kiem 호수는 밤낮 할 것 없이 사람들로 북적인다. 호수를 따라 형성된 여행자 거리에서 여행자들은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고, 바둑을 두거나 데이트하는 연인들의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다. 

 

여행자들 사이에서 현지인의 독특한 삶을 엿볼 수 있다고 해서 유명해진 곳이 있다. 일명 ‘기찻길 마을’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하노이 기차역 부근, 선로를 따라 들어선 집들이 경계 없이 한데 어우러져 살고 있다. 기차가 지나가는 시간에는 하던 일을 멈추고 벽에 바짝 붙어야 할 만큼 코앞으로 기차가 지나간다. 그 위태로운 풍경을 보려고 여행자들이 몰려들자 이곳 주민들은 너도나도 커피와 맥주를 팔고 있었다.

 

기차가 오면 카페 주인들은 테이블을 잽싸게 접고 여행자들은 발을 한껏 뒤로 오므려 벽에 붙어서 기차가 지나가는 걸 숨죽이고 지켜본다. 얼마 전에는 미처 선로를 빠져나오지 못한 관광객 때문에 기차가 급정거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현재 대부분의 기찻길 마을이 통제됐고 요즘은 일부 구간만 개방해 놓는다. 아무튼 이젠 기찻길 마을에서 ‘진짜’ 현지인의 삶은 보기 힘들어진 것이다.

 

관광지를 조금만 벗어나면 현지인들의 취미생활 한두 개쯤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그중 하나가 ‘새 감상’이다. 베트남 사람들은 새를 무척 좋아한다. 집집마다 테라스에서 새를 기르는 모습은 물론 가게 앞 가로수에 새장을 걸어둔 풍경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른 아침 상쾌하게 울려 퍼지는 새소리를 들으면 하루를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집 안에서 새를 감상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카페에 갈 때도 새와 함께한다. 한국에 애완견 카페가 있듯이 애완조 카페인 셈이다. 공원에서도 노래하는 새들의 향연을 들으며 시간을 보내는 이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월간참여사회 2020년 5월호 (통권 275호)

하노이 ‘기찻길 마을’에는 선로를 따라 들어선 집들이 경계 없이 한데 어우러져 살고 있다 Ⓒ김은덕, 백종민

 

베트남 근현대사를 만날 수 있는 곳 

관광객의 하노이를 지나, 하노이의 현재를 둘러보았다면, 이번엔 베트남의 천년수도이자 정치 행정 중심을 맡고 있는 유서 깊은 하노이의 과거를 마주할 시간이다. 탕롱왕궁Thang Long Imperial Citadel은 베트남 제국주의 침략의 아픈 흔적을 보여준다. 

 

베트남 최초의 왕조는 11세기 출현한 리 왕조로, 당대 사람들은 하노이를 ‘떠오르는 용’이라는 뜻의 ‘탕롱’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물론 탕롱왕궁을 처음 세운 건 리 왕조가 아니었다. 리 왕조가 출현하기 전인 7세기 무렵, 중국의 당 왕조가 성채城砦를 하나 세웠는데 그 위에 다시 지은 게 오늘날의 탕롱왕궁이다. 이후 프랑스가 하노이를 강제점령하면서 왕궁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의 식민지 총본부로 활용된다. 또한 베트남 전쟁 중에는 북베트남군이 이곳에 작전 본부를 세웠다. 9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세력이 왕궁을 이용하면서 축적된 다양한 건축 양식을 모두 볼 수 있는 특이한 공간이 되었다. 

 

한편, 큰 전쟁을 겪은 나라의 여성의 삶은 기구하다. 베트남여성박물관Vietnamese Women’s Museum에는 남편을 잃고, 자식을 떠나보낸 후 자신도 전장의 일원으로, 가장으로 삶을 이어가던 베트남 여성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특히 ‘베트남의 영웅적 어머니들Heroic mothers of Vietnam’의 사진을 전시해 놓은 특별관은 여행자의 마음을 울린다. 1994년 베트남 국회는 베트남 전쟁에서 아이 또는 남편을 잃은 여성에게 ‘영웅적 어머니들’이라는 국가 명예 칭호를 수여 했고 지금까지 5만여 명의 여성들이 이 칭호를 받았다고 한다.

 

하노이 여행자라면 빼먹지 않고 찾아가는 장소는 베트남 민족운동의 지도자, 호찌민 주석의 묘다. 이곳이야말로 베트남의 과거, 현재, 미래가 살아있는 장소로 충분하지 않을까. 1969년 사망한 호찌민의 시신이 안치돼 있다. 매년 막대한 비용을 들여 시신을 방부 처리하는 덕분에 방문객들은 호찌민의 생전 모습을 그대로 만날 수 있다. 유리관 안에서 그저 잠들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호찌민은 사실 거창한 장례식 말고 소박한 화장을 해 달라고 유언했다. 하지만 그를 따르는 이들은 마오쩌둥, 김일성, 레닌 등 공산주의 국가의 지도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생존 모습을 시민들에게 공개했다. 영원히 잠들지 않고 살아있는 위대한 지도자는 지금도 베트남의 미래를 이끌고 있다. 


글, 사진. 김은덕, 백종민 

한시도 떨어질 줄 모르는 좋은 친구이자 함께 글 쓰며 사는 부부 작가이다. ‘한 달에 한 도시’씩 천천히 지구를 둘러보며, 서울에서 소비하지 않고도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실험하고 있다. 마흔 번의 한달살기 후 그 노하우를 담은 책 『여행 말고 한달살기』를 최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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