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3년 03월 2003-02-25   612

노무현 대통령에게 바란다

새 대통령에게 보내는 릴레이 편지


새 대통령이 청와대로 살림을 옮긴다. 이번 대선과정을 거친 뒤 국민은 그에게 제법 기대를 걸고 있다. “노무현이는 다르겠지!” 과연 그가 역대정권과 다르게 해낼 수 있을까. 스스로 60점짜리 대통령이 되겠다는 그는 아마도 국민의 눈총이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본지는 열살바기 꼬마로부터 칠순 어르신까지 그에게 하고픈 말을 편지로 받았다. 그가 꼭 일독하기를 권한다. 편집자주사려깊은 말의 신선한 울림을 위하여

최일남 소설가 namil1229@hanafos.com

 
   

청와대의 첫 꿈은 잘 꾸셨습니까. 물론 잘 꾸었겠지요. 내 귀에도 이미 그런 대답이 들리는 듯 합니다."맞습니다. 맞고요, 무거운 책무를 동시에 느꼈습니다."댓바람에 대통령의 말투를 흉내내어 미안합니다. 미안하지만 그게 곧 엄숙주의를 싫어하는 노무현 스타일의 한 보기로 재미있고, 그런 어법에 실린 친근한 울림이 좋아 잠시 빌렸습니다. 무엇이 달라도 다른, 새 정부의 기본 성격마저 유연하게 전망케 합니다.

지금까지 경험한 역대 대통령들의 말은 너무 교조적(敎條的)이거나 모호하여 국민 감정과 겉돌기 쉬웠습니다. 청와대식 용어가 따로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언행이 굳어 쌍방향 시대의 소통을 일방통행으로 막았습니다. 노 대통령은 그렇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권위에 스스로 매몰되지 않고 누구나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현실의 본질을 명쾌하게 짚는 데 익숙하니까요. 하지만 걱정되기도 합니다. 간결하고 소탈한 성품이 빚을 수도 있는, 복구하기 어려운 차질을 우려합니다.

취임 이전부터 그 점을 들어 집요하게 흔들어대는, 야당을 비롯한 보수층의 공세가 얼마나 자심합니까. 즉흥연설에 따른 “헤픈 입”을 문제삼고, 그에 따른 “가벼운 처신”을 윽박질렀습니다. 앞으로는 더할 겝니다. 메이저언론은 언론대로 끊임없는 파상공세를 편지 오래입니다. 신생 정권과의 밀월 기간을 초장에 아예 거두고 권력 길들이기에 일찍 나선 듯한 모습으로 노 대통령의 잘못, 특히 말실수를 계속 벼를 것입니다. 김대중정권이 막 출발하던 5년 전 상황과 똑같습니다. 그 시절 신문을 들추면 지금 형편과 얼마나 비슷한가를 당장 알 수 있습니다.

언론자유가 무진장 보장된 나라의 비판으로 여기기엔 지나친, 비난을 위한 비난을 그런 신문들은 연일 퍼붓고 있습니다. 새로 들어선 정권과 끝난 정권의 속내야 어떻든, 떠멘 간판이 같기 때문이라면 그만입니다. 이 대목은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뛰어넘어야지요. 인정할 것 인정하고 부정할 것 부정하면서 말입니다. 알맹이 없는 말의 성찬에 진저리친 세월이 너무 길기 때문에도 노 대통령은 그때그때의 진실을 국민 앞에 가감 없이 이실직고할 밖에 없습니다. 그보다 나은 상책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만 바랍니다. 말에 앞서 늘 신중을 기하되, 타고난 어휘와 때묻지 않은 표현력을 살려 상투적으로 낡은 이 땅의 정치언어에 새로운 자극을 불어넣기 바랍니다. 그러자면 권력 분산 못지 않은 발언의 분산 역시 소망스럽습니다. “대독총리”의 예(例)가 왜 생겼습니까. 총리가 읽어도 너끈한 기념사를 대통령이 꼭 읽어야 한다는 겉치레 탓 아닙니까.

하고많은 희망사항 가운데 하필 말의 문제를 들고 나온 발상이 엔간히 소소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일입니다. 그 때문에 흥하고 망한 국가원수가 역사에 좀 많았습니까. 짧은 편지에 이것저것 나열할 겨를이 없기도 하려니와, 사람은 가도 말은 두고두고 남는 내력이 이만저만 깊지 않다는 생각으로 언죽번죽 주워섬겼습니다. 말이 곧 사람일진대 정치는 곧 말이라는 경험칙이 한층 무겁게 떠오르는 시간이기도 하고요. 그만한 차원에서 희망합니다. 어떤 말이 되었건 듣는 쪽이 그 순도를 의심하지 않고 대통령의 입을 신뢰에 가득 찬 눈으로 지켜보도록 내내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아저씨! 학교폭력 좀 해결해 주세요"

김마로 만선초등학교 3학년 shine619@hanmail.net

 
   

아저씨, 안녕하세요.저는 광주군 실촌면 삼합리에 사는 김마로라고 해요.대통령에 당선되신 걸 축하드려요. 아저씨께서 대통령이 되시기 전에 저는 고모와 만원 내기를 했어요. 고모는 이회창, 저는 아저씨를 걸었어요. 그래서 고모께서는 설날 때 만원을 주셨어요! ^_^그리고 아저씨께서는 2∼3년 뒤에 꼭 통일을 이루실 거라고 믿어요. 아저씨께서는 꼭 좋은 대통령이 되실 거라고 믿어요.아저씨 우리나라를 위해서 열심히 일하세요. 파이팅!

아저씨께 바라는 점이 있어요. 저희 집은 전화선으로 인터넷을 쓰기 때문에 느리고, 또 인터넷을 쓸려면 전화통화를 할 수 없어서 여러 가지로 불편해요. 이 점은 지금 이 곳에 사는 것 중 제일 불편한 거예요.

아저씨 그리고요. 저희 집과 학교는 아주 멀거든요. 그래서 항상 엄마께서 출근하실 때 저를 학교까지 데려다 주세요. 제가 만일 늦잠을 자서 늦게 일어나면 엄마까지도 회사에 지각을 하시게 돼요. 그래서 우리 학교에 통학버스가 있었으면 좋겠어요.그리고 반이 더 있으면 좋겠어요. 교실이 작거든요.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교실에서 술래잡기하고 싶은데 너무 좁아요. 그리고 학교폭력을 없애 주세요. 다른 건 몰라도 이것은 꼭 해주세요.제 앞에 앉은 아이는 저를 때리고, 제 옆에 앉은 아이는 저를 괴롭히고, 제 앞에 옆에 앉은 아이는 저를 놀려요.저도 가만히 있지는 않지요. 하지만 때리면 항상 후회를 해요. 하지만 저뿐 아니라 여자아이 여러 명이 남자아이에게 맞고 다녀요. 걔네들과 같은 반이 되기 싫을 정도예요.제가 너무 여러 가지 부탁을 한 것 같아요. 하지만 딱 한 가지만 더 부탁드릴게요.음… 저희 동네 올라오는 길은 포장이 안돼 있어요. 그래서 비만 오면 진흙투성이에요.학원차도 길이 너무 울퉁불퉁해서 못 올라간다고 해서 그 진흙 덩어리 길을 그냥 걸어야 해요. 너무 힘들어요. 그러니까 제 부탁은 길을 포장해달라는 거예요.참… 아저씨가 대통령 하시는 5년 동안 열심히 하세요. 그리고 꼭꼭 통일이 되게 하셔서 이산가족의 아픔을 덜어주세요. 아저씨라면 꼭 그러실 수 있으실 거예요.그리고 대통령 하시면서 힘드신 일이 있으시더라도 열심히!우리나라를 위해 열심히 하세요.그럼 전 이만 줄일게요. 그럼 노무현 대통령 아저씨 만세! 꾸벅.

로또복권말고 진짜 대박을 꿈꾸며…

채웅식 회사원 mrsavy@korea.com

 
   

대통령도 퇴근이 있겠죠. 퇴근할 때 보통 어떤 인사를 하시나요?최근 제가 다니는 회사에서는 주말 퇴근 인사가 달라졌습니다."나 월요일부터 안 보일 거야.""한 1년 세계일주나 해 볼까?""시골에 살면서 일년 내내 낚시하고 등산만 하면서 살 테니, 놀러들 와!""차 없는 사람들, 돌아와서 내가 차 한대씩 뽑아 줄게!"

안 해본 사람을 찾아 볼 수가 없다는 로또복권 열풍으로 생겨난 주말 인사법입니다. 월요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혹시나 하며 빈자리가 있나 확인해 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가 되었습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확률에 희망을 걸어보며 농담 같은 주말 인사를 나누는 상황이 그저 우습기도 합니다만, 각자 드러내 보이는 속내에 동료들의 고뇌가 읽힙니다. (일단 경제적 압박에서) 벗어나고 (도시를) 떠나고 (직장을) 그만두고…. 산업화된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한 스트레스가 느껴집니다. 나 혼자 살아남는 것도 아니라 온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는 것이 때론 얼마나 무거운지 모르겠습니다. 그 짐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가쁜 숨을 몰아쉬기 위해 가끔 넥타이를 풀어봅니다. 마치 그 짐이 모두 넥타이 매듭에 달려있는 듯 말이죠. 물론 일상의 무게가 만만치는 않습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를 실망하게 때론 삶의 의지를 포기하게까지 만드는 것은 다른 데 있습니다. 주5일제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이들하고 제대로 이야기 나눌 틈도 없이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사무실에서 보냅니다. 아마 제 인생에서 정신이 초롱초롱한 젊은 날은 거의 회사에서 보냈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그런 신세를 한탄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도 끊임없이 불안에 시달려야 한다는 겁니다. 실직의 불안, 갑작스런 재난이나 사고, 질병으로 인해 고통받고 가정이 유지되지 못할 불안감에 시달립니다. 저만이 아니라 이 땅의 소시민들이 대부분 그러합니다. 사회적 안전망이 제대로 되어있지 못한 한국사회에서 회사원이 실직 또는 불의의 사고를 당하면 그것이 바로 최저생계선으로 내몰리는 것을 의미하니 말이죠. 제대로 된 사회적 안전망의 확립, 말로는 복지국가인데 도대체 복지는 어디에 있는지 찾아볼 수 없는 시대는 이제 지나가길 바랍니다. 불필요한 강박과 불안에 인생을 소모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이 행복하게 잘 사는 세상!”아직도 이런 세상을 꿈꾸냐구요? 내색은 안 했지 모두의 꿈 아닙니까? 하지만 우리 일상에서 이 말을 꺼내면 십중팔구는 바보나 모자란 사람 취급받을 겁니다. 편법과 거짓이 판을 치고 오히려 대우받는 세상입니다. 이미 말이죠. 세상 사람들은 이제 진짜보다는 그럴듯한 거짓에 더 익숙합니다. 사회가 하루아침에 바뀔 것을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럴듯한 가짜와 편법을 걸러내는 것을 시작만이라도 했으면 좋겠습니다.”성실하게 일하는 자가 뜻을 이루고 행복하게 사는 사회!”우리 사회가 이렇게 된다면 이건 로또당첨은 비교가 안될 대박일 겁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대박을 기대합니다. 이 땅의 소시민들의 열망이라면 그런 대박은 몇 개라도 터뜨릴 수 있을 겁니다.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진정한 대박을 기다리며.

 

모두에게 칭찬 받으려고 하지 마시길

오한숙희 시민운동가 jhheelok@hanmail.net

 
   

두 가지가 걱정됩니다. 우선 노 대통령이 경상도 지방 출신이라는 겁니다. 여자들 사이에서는 “남편이 경상도 사람이야”하면 벌써 삼천리를 내다봅니다. 그만큼 경상도는 가부장적인 분위기가 강하고 여성에 대한 불평등 의식이 세다고 알려진 곳입니다. 남아선호로 인한 성비불균형이 전국적으로 가장 심한 곳이기도 합니다.

"여성 여러분, 아이는 저 노무현이 키워드리겠습니다" 하셨는데 이것이 여성에 대한 선심이나 특혜로 여겨져서는 안 됩니다. 마땅히 아이는 부모 둘 다가 그리고 가정과 사회가 분담해야 할 일이었기에 이제 제자리를 잡는다고 보아야 합니다. 남편들이나 아이들이 가사노동을 하며 “도와줬다”고 하는데 도와서 누굴 줍니까? 다 자기가 먹은 밥그릇에, 자기가 입었던 옷에, 자기가 늘어놓은 것들인걸요.

존재 피구속성이라는 말이 있지요. 혹여 지역분위기 속에서 노 대통령의 속에도 여성에 대한 낡은 고정관념이 있을까봐 걱정입니다. 『여보, 나 좀 도와줘』라는 책을 통해 그래도 자아비판 의식이 있으신 분이라 조금 안심은 됩니다만 주변 인물들의 성평등 의식은 저으기 걱정됩니다. 청와대를 성차별 없는 조직의 모델로 키워가실 생각은 없으신지요. 대통령 이하 직원들이 여성학 공부를 하신다면 저도 도우미로 자원하겠습니다. 노무현을 지지한 사람 중에는 여성도 많다는 사실을 기억해주십시오(선관위에 성별에 따른 지지후보에 관한 자료를 요청했더니 성별을 분석변수로 삼지 않아 없다고 해서 통계를 제시하진 못하지만요).

또 다른 걱정은 모두에게 칭찬 받고 싶어하실까봐입니다. 저부터도 칭찬만 받고 싶지, 욕을 먹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이런 보통 사람과는 달라야 합니다. 저는 지도자란 깃발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공중에 나부끼는 깃발은 밑에서 우러러 보는 것 같지만 무수한 바람들이 흔들게 마련입니다. 공자말씀에 “군자란 선한 사람에게 칭찬 받고 악한 사람에게 욕을 먹는 자”라고 했답니다. 노 대통령의 당선을 “국민의 승리”라고 한다면 대다수 서민들에게 칭찬 받고 소수의 기득권자들에게 욕을 먹는 정치를 해야합니다. 가진 것 많고 나눌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 욕먹는 것을 당연하고 기쁘게 생각해 주세요. 모두에게 칭찬 받으려 한다면 우화에 나오는 당나귀를 몰고 가던 아비와 아들처럼 될 것입니다. 그건 대통령 개인에게가 아니라 국민들에게 크나큰 불행이 될 것입니다.

특히 언론과의 관계가 걱정됩니다. 문제가 되는 언론이 분명히 있겠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그것을 언론탄압이라고 하니, 저라도 곤란할 것은 이해가 됩니다. 따라서 언론내부에서 자정노력이 일어날 수 있도록 만들어 줄 국민적 분위기가 가장 적절한 해법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쉽게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노대통령께서는 기득권자들을 지지하고 국민을 분열시키는 문제있는 언론과의 한판이 불가피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런 언론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듣기 위해 타협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물건도 너무 가까이에서는 제대로 보이지 않듯 대통령 노릇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임기가 끝난 다음에야 나타날 것입니다. 누구에게 욕을 먹어야하고 누구에게 칭찬 받아야 할 것인지를 아는 현명한 대통령이 되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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