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3년 03월 2003-02-25   992

남동발전 매각 강행 이대로 둘 수 없다!

지난해 초 DJ정부의 5개 발전산업회사 매각방침 철회를 요구하며 파업을 강행했던 발전노조 이호동 위원장. 그가 최근 남동발전 매각절차 강행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며 원고를 보내왔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이 후보 시절 ‘전력, 가스, 철도 등 이른바 네트워크 산업에 대한 민영화 방침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밝힌 것처럼 이 문제는 재론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편집자주

1898년 전기가 한반도를 밝힌 지 어느덧 105년, 전기는 현대사회에서 물이나 공기처럼 한 순간이라도 공급이 중단되어서는 안 되는 필수적이고 보편적 서비스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전력산업은 그동안 양적, 질적 성장을 거듭하며 소비자들에게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노력해왔으나 IMF 경제위기와 함께 닥쳐온 정부의 무리한 발전소 매각 정책으로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여 있다.

전기는 다른 재화와 달리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이루어지고 저장이 불가능하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폭증하는 전력수요를 충족시키고 산업발전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1961년 발전, 송전, 배전으로 분리되어 있던 3개사를 단일공급체계로 만드는 제1차 전력산업구조개편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IMF체제라는 국가적 비극의 와중에 초국적 자본의 전력시장 개방압력을 거부하지 못한 결과 전력산업은 2차 구조개편을 맞이하게 되었다. 현재 한국전력이 독점하고 있는 발전부문을 여러 개의 발전주식회사로 분할해 경쟁체제를 도입하고 분할된 발전주식회사는 단계적으로 민영화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전기요금 폭등과 전력대란이란 미래가 뻔하게 보이는 데도 앞뒤 재보지 않고 발전소 매각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역사적 경험을 보더라도 전력부문을 사유화했다가 대규모 정전이나 요금 폭등 사태를 경험한 지역은 중남미 각국,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캐나다 온타리오주, 미국 캘리포니아주 등 상당수에 이른다. 2003년 1월 캘리포니아 공공사업위원회(CPUC)는 전력산업구조개편 중단 결정을 내리면서 “캘리포니아 역사상 최악의 실패를 낳은 공공정책이며, 소비자, 전력회사와 그 종사자 모두에게 재난을 안겨다 주었기 때문에 전력시장 자유화 정책을 전면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캘리포니아는 경제규모가 국가 별 순위로 따져도 세계 5, 6위에 이르는 미국 산업의 심장부다. 캘리포니아의 전력난은 미국 내 대부분의 주들로 하여금 전력산업구조개편을 중단하거나 장기유보 결정을 내리도록 했다.

산업자원부, 반대여론 무릅쓰고 발전소 매각 박차

이 같은 전철을 되밟을 것을 우려한 발전노조는 지난해 전력산업사유화 반대와 공공성 사수를 위해 38일간의 파업을 전격 단행했다. 이로 인한 노조원들이 입은 피해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치명적인 것이었다. 해고 348명, 고소·고발 894명, 425억 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 4000여 명에 이르는 조합원 급여 가압류, 수십 명의 수배·구속자 양산….

그러나 발전노조는 인권단체들로부터 인권탄압백화점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심한 탄압을 받으면서도 전력산업매각문제를 뜨거운 사회적 의제로 등장시켰다. 국민의 80%가 넘는 압도적인 발전소 매각 반대 여론조사 결과는 피투성이가 된 조합원들의 가슴에 그나마 투쟁의 보람과 위안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런 노력도 헛되이 정부는 발전소 파업이 마무리된 뒤 압도적인 반대여론을 무시한 채 발전소 매각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 7월 5개 발전회사 중 남동발전(주)을 1차 매각사로 선정 발표하고, 투자의향서(LOI) 제출요청 공고를 실시해 모두 14개 업체(국내 6사, 국외 8사)로부터 투자의향서를 받았다. 그러나 정부의 기대와 달리 해외 주요업체들인 엔론, 미란트 등은 회계부정사건과 그 영향으로 해외사업에 나설 여력이 없어 참여하지 않았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입찰제의요청서(RFP)를 배포하고 국내외 투자자에 대한 순회설명회를 열었다. 입찰자를 되도록 많이 모으기 위해 산업자원부가 기울인 노력은 거의 필사적이라 할 만한 것이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2003년 1월 1차 입찰제안서 접수마감 결과 응찰자가 4개 업체 밖에 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산업자원부는 평가 후 쇼트 리스트(후보 명단)를 확정 통보하겠다는 당초 계획을 포기하고 응찰자 모두에게 기회를 주었으며, 현재 경쟁 없이 예선(?)을 통과한 입찰자들이 기업 실사를 받고 있다. 산자부는 2월 25일까지 실사를 진행하고 최종 입찰서를 다시 받아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하고 최종계약을 위한 협상을 진행할 예정이다. 또 최종계약(지분 34∼51% 매각)으로 경영권을 매각하게 되면, 후속작업으로 나머지 지분에 대한 기업공개(IPO)를 실시하겠다는 계획이다.

새 정권, 발전산업 민영화 재고해야

이처럼 발전소 매각작업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가시적 성과에 급급한 관료들의 성향으로 인해 졸속매각, 헐값매각, 특혜매각의 가능성마저 우려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후보 시절 전력, 가스, 철도 등 이른바 네트워크산업에 대한 민영화 방침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노무현정권 인수위원회 관계자들 또한 이와 비슷한 의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들이 과연 거대한 관료집단과의 내부투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2002년 순이익이 2조 9000억 원에 이를 정도여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는 전력산업은 그동안 초국적 자본과 재벌들이 호시탐탐 눈독을 들여왔던 먹음직한 사냥감이었다. 이들의 탐욕스런 정부 압박에 이중(二重)권력 상태였던 지난 두달 동안 오리무중이었던 네트워크 산업의 향배는 이제 새 정권의 손에 달렸다.

전력산업이 중대한 고비를 맞은 이 때 보편적 서비스의 수혜자인 소비자들과 시민사회단체의 입장이 특히 중요하다. 환경, 여성을 포함한 폭넓은 시민사회단체들이 이 문제에 대해 명확하게 입장을 밝혀야 할 것이다. 지속가능하고 친환경적인 전력산업 발전을 위해 노동자들과 시민사회단체가 대화를 지속하자는 제의는 얼마 전 열린 ‘사회포럼’에서 이미 나온 바 있다.

우리나라는 전력망이 한반도 남반부에 고립돼 있어서 전력이 부족할 경우 전력망 붕괴로 인한 재앙의 우려가 상존한다. 이런 상황에서 발전소 매각은 매우 위험한 실험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전력산업구조개편은 전력수요의 폭증이 멎을 것으로 예측되는 2015년 이후나, 동북아 전력망 구축(중국, 러시아, 북한, 일본 등이 전력이 남아돌거나 부족할 때 서로 사고 팔 수 있도록 전력망을 연계하는 일) 이후에 해도 늦지 않다. 정부는 지금 강행하고 있는 배전 분할과 발전부문에 대한 졸속 매각 기도를 즉시 중단하고, 국민적 합의를 통해 전력산업의 중장기적인 발전방안을 새로 세워야 할 것이다.

이호동 발전노조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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