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7년 04월 2017-03-30   608

[떠나자] 흐르는 강물처럼

 

 

흐르는 강물처럼

 

 

글. 정지인 여행카페 운영자

전직 참여연대 간사. 지금은 여행카페 운영자가 되었다. 매이지 않을 만큼 조금 일하고 적게 버는 대신 자유가 많은 삶을 지향한다. 지친 이들에게 위로가 되는 여행을 꿈꾼다. 

 

봄이 왔다. 따뜻한 기운이 퍼지고, 나무에 물이 오르고 새싹이 움트는 계절이다. 생명의 에너지가 넘쳐난다. 풀과 나무처럼 우리도 겨우내 답답했던 몸에 기지개를 켜면서 슬슬 움직이고 싶어지는 때다. 생동하는 봄의 에너지를 한껏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봄 여행이다. 우리도 봄기운을 받아서 겨울을 겪고 비로소 피워내는 연둣빛 이파리처럼, 겨우내 심신을 피폐하게 했던 국정농단 탄핵정국의 피로를 훌훌 털어버리고 봄이 주는 상큼한 힘을 얻어 보자. 

봄은 예외 없이 모든 곳에 오지만, 조금 더 짙게 봄기운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다. 도시에 갇혀 살며 자연의 감수성, 생명의 감수성이 둔감해진 사람들에게 더욱 필요한 그런 곳들 말이다. 봄을 발견하기 위해서 봄기운이 팍팍 용솟음치는 곳으로 가야 비로소 “아 봄이다!” 하고 감탄이 나올 테니까. 그런 여행지로 봄이 오는 강변길을 소개한다.

 

구담마을

섬진강 구담마을 ⓒ정지인

 

섬진강 구담마을

강물이 굽이굽이 휘돌아 감는 산골 강변마을에 하얗게 핀 매화꽃이 그림처럼 펼쳐지는 곳이 있다. 굽이치는 물줄기와 어우러지는 평화롭고 아늑한 강변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전북 임실의 구담마을이다. 섬진강은 우리에겐 구례에서 하동으로 이어지는 19번 국도를 따라 이어지는 강, 봄이면 장관인 화개장터 벚꽃길로 익숙하지만 섬진강은 전북 진안에서 발원해 남쪽바다 광양만에서 바다를 만날 때까지 약 220km 물길을 이어가며 산과 마을과 도시를 끼고 도는 긴 강이다. 이번에 소개하는 구담마을은 그중 상류에 속하는 곳이다.

구담마을은 외진 곳에 산과 강을 기대고 사는 작은 오지마을이다. 구담이란 마을이름은 자라가 많이 나온다고 해서 자라(구龜)를 썼다고도 하고, 물줄기에 소沼가 아홉 군데 있어서 구담(九潭)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도 한다. 구담마을 어귀에 있는 느티나무 당산에서 내려다보는 섬진강 풍광은 마음을 사로잡는다. 산을 만나면 산을 따라 돌고, 바윗돌을 만나면 바위를 피해 굽이굽이 흐르는 강물은 은은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삶의 순간순간 장애물을 만나 요리조리 맞서고 적당히 피하면서도 멈추지 않고 걸어가는 우리들 사는 모습 같아 위안을 받기도 한다.

 

꽃이 핍니다/ 꽃이 집니다/ 꽃 피고 지는 곳/ 강물입니다/ 강 같은 내 세월이었지요      – <강 같은 세월> 김용택

 

구담마을은 섬진강을 노래한 김용택 시인의 고향마을인 진뫼마을까지 이어진다. 진뫼마을에 있는 김용택 시인의 고향집과 정겨운 강변 느티나무 노거수도 만나볼 수 있다. 시인이 근무하던 덕치초등학교도 지척이다.

구담마을을 찾는다면 장구목도 놓치기 아깝다. 임실 구담마을에서 순창 구미마을 쪽으로 강변을 따라 마을길을 걷다 보면 강바닥에 넓게 형성된 구멍바위지대가 있는 장구목 계곡을 만난다. 요강모양으로 독특하게 생겨서 마을의 자랑인 요강바위가 분실되었다가 마을주민들의 힘으로 되찾은 이야기가 전해지는 장구목마을도 함께 둘러볼만 하다.

구담마을을 찾는다면 여건에 맞춰 여행코스가 다양하다. 걷기를 즐겨하면 김용택 시인의 고향집이 있는 진뫼마을에서 강변을 따라 천담마을, 구담마을, 장구목까지 걸어도 좋다. 3월말 4월초라면 매화꽃을 벗 삼을 수 있고, 김용택 시인의 시집 한권 들고 문학기행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벼룻길

금강 벼룻길 ⓒ정지인

 

금강 벼룻길, 학교길
비단처럼 아름다운 강, 금강의 비경을 따라 걷는 무주 강변길을 소개한다. 금강은 전북 장수의 작은 샘에서 발원해 무주, 영동, 부여를 거쳐 서해 군산 바다까지 천리(394km) 물길을 이어가는 긴 강이다. 금강은 천리를 흐르며 곳곳에 비경을 남기는데 그중 무주는 금강의 상류부분으로 거친 물살이 깊게 산을 휘감아 돌며 벼랑을 발달시켰다. 그래서 무주에는 강변을 끼고 가파른 벼랑길이 많고, 오지 강변마을 사람들이 거친 물살을 헤치고 살아가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벼룻길’은 무주군 부남면 대소마을에서 율소마을로 이어지는 길로, 1930년대에 마을사람들이 농사를 짓기 위해 물을 끌어오던 수로가 있던 옛길이다. 벼룻길이란 이름은 강가 낭떠러지 비탈길이라 해서 붙은 것이다. 2km 남짓의 길지 않은 이 길은 조붓한 오솔길로 봄이면 나무와 강에 연둣빛 물이 든다. 길가에는 현호색, 진달래, 으름꽃이 반겨주고, 따라 걷는 금강에는 푸르스름한 물그림자까지 초록빛 향연에 생기를 더해준다. 길을 걷다보면 동굴을 하나 만나는데 사람들이 일일이 정으로 쪼아 뚫은 것이라고 한다. 길이 없던 시절 물을 대기 위해, 사람들이 옆 동네로 가기 위해 손수 길을 내던 삶의 흔적이다.

‘학교길’은 무주 뒷섬마을 아이들이 학교 다니던 옛길이다. 금강이 고리모양으로 둥글게 휘감아 흐르는 지형이라 다리가 놓이기 전에는 뒷섬마을에서 무주읍내로 나가려면 나룻배를 두 번을 타야했다. 배를 타지 않고 아이들이 읍내로 학교 가던 길, 어른들이 장보러 가던 옛길이 학교길이다. 길에서 만나는 질마바위는 자녀를 학교에 보내기 위해 부모들이 일일이 정으로 쪼아 낸 바윗길이다. 정성 가득한 부모님의 마음으로 낸 길이다. 산이라도 넘을 수 있던 뒷섬마을보다 더욱 고립무원으로 섬처럼 금강에 둘러싸인 앞섬마을 사람들은 배가 없으면 꼼짝할 수 없었다. 나룻배가 세상을 이어주는 유일한 수단이었던 앞섬마을은 1976년 폭우로 배가 뒤집혀 통학생 18명이 생명을 잃는 참사가 난 뒤에나 다리가 놓였다. 금강변에 기대고 살아가는 강변오지마을 사람들의 삶의 애환이 가득한 길인 것이다.

근처에 잠두길도 함께 다녀올 만하다. 4월 중순 산벚꽃과 복사꽃이 만발할 때면 그윽한 봄의 정취가 일품인 아름다운 옛길이다. 이번에 소개한 무주의 강변길들은 무주군의 걷는 길, ‘예향천리 금강변마실길’과 ‘금강 맘새김길’에 속한 구간들로 관련 정보는 무주군청 문화관광과로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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