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6년 06월 2006-06-01   850

시종일관 빈정대며 일상에 저항하는 젊은 운동가

문화연대 활동가 김완 씨

주목받는 영 보이

요즘 운동판이 급박하다. 대추리 투쟁에서 젊은 활동가들이 연행을 ‘경험’하고 있다. 그 투사들 속에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문화연대) 활동가 김 완 씨가 있다.

“당돌하다”, “문화연대의 문화를 만들어내는 역량을 가진 사람”, “나이에 비해 사고는 성숙한데 가끔 돌발적 행동을 보임”, “노력하는 활동가”, “끊임없이 자기 성찰을 통해 성숙해가는 활동가”, “거칠거칠하다”, “문제 설정이 뛰어나고 추진력도 있고 문화운동의 여러 가지 모델을 새롭게 보여줬다” 문화연대 동료들이 그에 대해 하는 이야기다.

불량한 행보, 즐거운 청춘

그는 나이 밝히길 거부한다. 맘 맞는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가 출석 일수가 부족했지만, 어쨌든 고등학교는 졸업했다. 이내 대학 가는 것이 권력임을 깨닫고, 칵테일 주조사나 항공정비사가 되려던 꿈을 포기한다. 6개월 정도 기숙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했고, 수능에서 좋은 성적을 받았지만 내신 성적이 좋지 않아 대학에 떨어져 심하게 좌절했다. 결국 삼수로 대학을 갔다.

“대학이란 곳엘 갔지만 적응이 안 되는 거예요. 너무 재미가 없어서 채 한달을 못 다녔어요.”

그 짧은 기간 동안 ‘말도 안 되는 추상적인 이야기를 진지하게 하는 운동권’을 싫어했다. 학번을 내세우는 선배들에게도 질렸다. 홍대 앞, 충무로에서 문화패들과 어울리다가 문화운동판에 뛰어들게 됐다. 요즘 TV 인터뷰에 나온 그를 보고 그 시절 친구들에게서 문자가 온다. “연예인 됐네.”

‘컬러TV를 보면서 자란, 그래서 소비문화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세대’로 자신을 규정하는 그는 문화적인 삶(?)을 위해 선택한 문화연대를 이렇게 평한다.

“문화연대는 의사결정방식이 간결해요. 활동가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조직적 문제가 발생하는 일은 없거든요. 극명한 입장의 차이를 보이더라도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취향, 속성만 존중한다면 같이 할 수 있다는 거지요. 문화연대 안에서 활동방향이나 기조를 갖고 싸우는 일은 별로 없어요.” 딱 자기 스타일이라는 이야기다.

‘운동벌레’로 신명나게

당돌하다고 소문난 그는 운동가로서의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까.

“되게 급하고요, 뭐든 잘 못 참는 성격이고, 말이 굉장히 많아요.”

그게 ‘시간보다 일이 많은’ 운동가에게는 장점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단점으로 작용할 경우도 많다.

그는 기질적으로 운동을 즐기는 듯하다.

“누가 시킨 것이 아니라 스스로 운동가로 살고 좋은 운동가가 되고 싶어 힘들다, 피곤하다, 바쁘다 이런 말 잘 안 쓰는 편이예요. 그러다보니 항상 피곤해 보이는 사람들이 제 입장에서는 관계하기 어렵다고 생각될 때도 있어요. 저도 다른 사람한테 그렇게 보이지 않도록 신나게 지내려고 노력하는 편이구요.”

그는 고민하며 울거나 우울해 하지 않는다. 다른 이와 갈등이 생겼을 때는 “다 서슴지 않고, 싸가지 없이 얘기하는 편”이다. 타고난 기질대로 신명나게 ‘운동벌레’로 살아가고 있다.

너무 진지한 선배들이여

소위 ‘386’세대에 대해 물었다. 우선 그는 어떤 집단이나 세대를 집합적인 방식으로 규정짓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개별적인 특성을 더 존중한다는 전제를 달고 말문을 연다.

“거시적인 수준에서의 정의나 운동의 열정에 대해서는 유의미하게 생각하면서, 일상적 관계, 남녀 문제 등 구체적인 운동의 장은 개인적이고 의미가 적은 것으로 치부하고 비상식적으로 조율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정치 일색, 정치 과잉. 또한 교양인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강박이 있어 문화조차 학습하는 경향이 있다. 하나도 신나지 않으면서 신나게 살자고 외치는 모습이 재미있다.

그들의 또 다른 대안, 대안학교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신자유주의 트랙’이라고 일갈한다.

“운동장에서 애들이 조회 중인데 한가한 트랙에 나와서 조깅하고 있는 거죠. 그러면서 바글바글한 애들을 비웃는 것 같은…….”

고액의 비용에 부모의 수공이 많이 드는데, 그 노력과 열정을 공교육 개혁에 쏟으면 좋겠다는 거다.

운동판에서도 학벌은 통한다. ‘한 반 50명 중에서 4년제 대학을 10명 정도 가는 학교’에서 40명에 속했던 그가 볼 때, 운동권은 10명에 속하고, 또한 그런 감성을 가지고 있다.

“나머지 40명을 이해하려는 건 있지만 거리감은 분명히 있는 거 같아요.”

소위 좋은 학교 나온 경우는 전화 한 통화로 쉽게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보여주는데 반해, 지방대나 고등학교 밖에 나오지 못한 이들은 여전히 지역에서 고생하면서 현장운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갈수록 비판 강도가 높아진다. 결국, 그들은 “굉장히 폐쇄적이고 비슷한 스타일”들이다.

이런 감수성이라면, ‘노무현’과는 십중팔구 불화를 겪었을 것 같다. 예상보다 혹독하다.

“컨텐츠가 없다고 생각해요. 인디정권 같아요. 이라크 파병, 평택 해법은 실망 그 자체이고, 엉뚱하게 다른 분야에서 실험정신을 발휘하면서 우왕좌왕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요사이 노무현 정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있는 선배들에게 명쾌한 관계 청산을 요구하기도 한다.

“솔직하게 잘못 판단했다고 인정하고 반성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삶’은 소중하다. 그래서 운동한다

그에게 요즘 대추리 싸움은 그야말로 ‘인상적’이다. 자기중심으로 운동하던 문화연대의 활동가들이 싸우고 또 연행되는 경험을 공유하며 동고동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시골에 대한 향수가 없는 도시아이로서 대추리의 풍광과 사람들을 보면서, “이렇게 사는 사람들에게 지금 상황은 너무 야만적이고 폭력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원주민의 생존권이 아주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는 지율스님 단식투쟁 때처럼 그냥 ‘필’을 받아 ‘무조건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대추리를 오가며 싸웠다. 그래서 ‘감동적 지점보다는 관료적이고 기능적으로 사안을 판단하면서 평택문제를 외면하는’ 시민단체들에 대한 심기가 매우 불편하다.

“대안이 없는 것이 아니라 반대가 대안이죠. 지금 있는 미군기지 안으로 미군이 들어가는 것이 대안이죠.”

대추리 투쟁과 함께 그에게 지금껏 가장 인상적이었던 활동은 대마초 합법화 운동이었다. 문신 합법화 운동을 하면서 실제로 판화가 오윤의 그림을 몸에 새겼던 그는 대마초도 한번 피워 보려고 했다. 그는 대마초 합법화 운동을 제3세대 인권운동으로 주목했지만, 문화연대 내부는 물론 어떤 시민사회단체도 관심을 보여 주지 않았단다. 대마초의 환각 정도조차 엄밀하게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마약사범이란 이유로 인권을 짓밟히고 사회로부터 냉대 받는 이들을 가까이 하면서 그는 “운동단체도 강고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개별적으로 만나면 열려 있는 거 같고 사회문화적인 현상에 관심도 있고 호응도 하는 사람들인데, 실제로 조직에 들어가면 못 하는 거예요.”

신나는 분탕질을 꿈꾸며

김완 씨는 축구를 참 좋아한다. 그래서 월드컵 문제와 문화운동가로서의 정체성이 가끔 내면에서 충돌하는 것이 고민스럽다.

“욕망은 실제 존재하는 거고, 진행과정의 문제는 비판하면 되는 거고. 솔직해지자는 게 지금 생각이에요.”

그런 그가 하고 싶은 일은 조선사회주의연예인동맹이나 조선공산주의축구단을 만드는 거라며 이념적 잣대로 보지 말아달라고 당부한다.

앞으로 상당기간 자본주의 트랙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그 안에서 전복과 탈주를 꿈꾸며 분탕질하는 운동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변방에서 외치는 건 의미 없으니, 어떻게 대중을 감화시킬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말이다. 도대체 이런 도발적인 발상은 어디서 솟아나오는 것일까.

“맨 땅에 헤딩 많이 했어요. 술자리 등 사람들 속에서 많이 들었어요. 책을 좋아하긴 해요. 그런데 사회과학 서적은 ‘재수 없다’고 생각해요. 대중들이 읽기엔 어려운 게 많아요. 책을 저자가 읽나요.”

그는 “운동하면서 지치지 않고 시종일관 빈정거리는 태도를 잃지 않는” 삶을 늘 살고 싶어 한다.

그에게 인생은 늘 개봉 박두 영화처럼 흥미진진한 것이 아닐까.

김정인 <참여사회>편집위원, 춘천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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