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9년 11월 2009-11-01   1097

참여사회가 눈여겨본 일_민주주의를 위한 시민네트워크: 민주넷



“여럿이 함께 걸어가면
등 뒤에 길이 생긴다”


박효주 참여연대 시민참여팀 간사 

매일 ‘무엇을 먹을까?’라는 사소한 물음에서 ‘나의 길은 어디에 있을까?’ 라는 커다란 물음까지, 우리는 각자에게 던져지는 수많은 물음에 정답을 찾고 싶어 책을 찾아보기도 하고, 물어보기도 하고, 모범답안이라 여겨지는 것을 따라해 보기도 한다. 

지난 10월 23일 저녁 7시 서울 이화여고 강당에서 이 시대에 수많은 물음과 고민을 가지고 살아가는 430여 명이 신영복 교수와 만났다. 강연이 시작되기 며칠 전부터 이미 전석이 매진되었고, 당일 현장에 와서 발걸음을 돌릴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신영복 교수의 강연은 방송인 김제동 씨의 재치있는 사회, 별책부록이라 이야기하시는 성공회대 교수 세 분으로 결성된 ‘더 숲 트리오’의 공연, 영화배우 문소리 씨의 깜짝 출연이 어우러져 2시간 반이라는 시간이 짧게만 느껴졌다. 

신영복 교수는 강연 내용이 모두 아는 얘기지만 꺼내어 확인함으로써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작은 약속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했다. 세 가지를 ‘석과碩果’, ‘머리, 가슴, 발’, ‘더불어 숲’이라는 화두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나무는 석과, 엽락, 분본의 3단계로 설명될 수 있다. 석과는 씨과실로 먹지 않고 남겨두는 것이며, 석과를 지키기 위해서는 엽락葉落, 잎사귀를 떨궈내는 것이 필요하다. 떨어진 잎사귀, 엽락은 뿌리를 따뜻하게 하는 거름으로 작용한다. 이를 ‘분본      ’이라고 한다. ‘본’은 사람이다. 사람을 키워내는 일, 가을과 겨울을 견디는 일이다. 사회에 가장 저력으로 묻혀있는 가능성을 키워내는 일이 중요하다.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다”

‘머리, 가슴, 발’은 신영복 교수의 20년 동안의 긴 여행(수감생활) 경험 이야기다. 처음 감옥 생활을 시작했을 때 ‘왕따’였는데 그 이유는 다른 수감자가 결손 가정인지, 무슨 죄로 왔는지를 파악하며 대상화해 분석했기 때문이다. 수감된 사람들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머리에서 가슴까지는 가장 먼 여행이다. 여기까지 가는 동안 5~7년이라는 시간이 걸려 감옥에서 왕따를 면했다. 그래서 머리보다는 가슴이다. 가슴에다 두 손 얹고 반성하라고 하지 머리에 손 얹으라 하지는 않는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시민운동을 해야 한다는 가르침은 모든 시민활동가들에게 큰 울림으로 퍼져 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가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해 보는 일이 길을 찾고 답을 알아가는 시작이 되지 않을까 싶다.



‘관계의 건설’이 변화로

다른 사람을 자기 세계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러한 아픈 마음들을 자기 삶의 내부로 깊숙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다. 그것은 ‘발’, ‘관계의 건설’이다. 신영복 교수는 20년의 감옥생활을 하면서 모든 위문품이 나오는 종교집회에 빠짐없이 참석하면서 별명이 ‘떡신자’가 되었고, 떡신자들은 치부를 공유하는 인간적인 관계로까지 발전했다고 한다. 이처럼 변화, 관계를 만들어 내는 눈물겨운 일을 해야 한다. 우리사회 많은 사람들이 일하는 방식이 아직도 근대적인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고 문맥에 갇혀 있는데 계속 변화해야 한다. 변화해서 우리 사회를 제대로 볼 줄 알아야 한다. 사람들의 정서를 정확하게 읽을 수 있는 훈련을 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시민운동의 나아가야 하는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곡을 찌르는 날카로운 지적이다. 시민운동이 기존의 문맥을 과감하게 벗어나야 변화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시민운동이 현재 가지고 있는 산재한 문제들 앞에서 어떻게 기존의 문맥을 벗어나 변화의 길을 걸을 수 있을지, 가야할 길은 참으로 멀다. 그래도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나무의 완성은 숲, 변화의 완성은 관계”

‘발’은 변화의 상징이자 우리 삶의 상징이다. 머리-가슴-발, 이게 하나의 나무라면 나무의 완성은 명목이나 낙락장송이 아니다. 나무의 최고 형태는 숲이다. 혼자서는 안 된다. 신 교수는 단순한 연민, 공감, 공존의 근대적 변형을 뛰어넘고 뭔가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만들어 냈으며, 사회를 바꾸지 못했지만 자신을 바꿨다고 한다. 여럿이 함께 가면 된다. 함께 가면 길은 등 뒤에 생기는 것이다. 나무의 완성은 숲이고 변화의 완성은 관계라는 이야기로 강연은 마무리 되었다. ‘더 숲 트리오’와 청중들이 함께 부른 노래(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가 바로 신영복 교수가 말한 나무의 완성인 숲이 아닐까. 그 숲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문맥을 벗어나 변화하고 관계를 만들어 나가야 하는 큰 과제를 얻었다. 



“함께 숲을 만들어 가자”


홀로 길에 서서 길을 찾으려 헤매고 있던 나에게 이번 강의는 길은 만들어가는 것이고, 여럿이 함께 걸어가면 등 뒤에 길이 생긴다는 교훈을 주었다. 지금 시민운동이 우리사회 약자나 소수자들에게 연민이나 동정의 시선이 아닌 어떤 관계를 어떻게 맺어 왔는지 현 주소를 돌아봐야 할 것이다. 시민운동이 문맥에서 벗어나 시민들과 관계를 맺어 숲으로 나아가는 노력에서 세상을 바꾸는 일은 희망의 싹을 틔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시민들과 함께 숲을 만들어 나가는 단초가 될 움직임은 이미 시작되었다. 바로 이번 강연회를 주최한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네트워크(약칭 민주넷)이다. 민주넷(cafe.daum.net/minjoonetwork)은 내년 지방선거가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유권자의 승리가 될 수 있도록 참여연대를 포함한 30여 개 시민단체들이 모여 시민들의 희망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고 실험하며 실천하기 위해 만든 단체이다. 지난 9월 9일부터 매주 수요일 저녁 7시마다 시사현안을 주제로 각계 전문가와 시민, 네티즌들이 참석하는 정기토론회 ‘희망찾기 100번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이런 작은 움직임을 함께 하면 길이 등 뒤에 생기리라 믿지 않을까. 나, 너, 우리 모두가 함께 숲을 만들어 가는 행복한 일이 지금부터 시작되면 좋겠다.

2009년 10월 23일 저녁 정동에 ‘움직이는 숲’이 만들어졌다. 어느 노래 제목처럼 정말 10월의 어느 멋진 날이었다.


-안내-

<이야기와 노래가 흐르는 신영복 교수 전국 순회 강연>

세상을 배우고 마음을 나누는 아주 특별한 강연회
길이 끊어진 듯 막막함을 느낄 때 … 신영복에게 길을 묻다.
자기 성찰을 통한 의미 있는 한 걸음이 절실한 2009년 대한민국, 민주넷에서 신영복 교수님의 강연회를 준비했습니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보석같은 지혜와 소중한 가치가 가득한 신영복 교수님의 강연회에는 노래하는 대학교수 ‘더 숲 트리오’의 감미로운 하모니가 함께 합니다.

11월 13일 청주, 청주교대 강당, 7시
11월 27일 춘천, 시간/장소 미정 
12월 18일 울산, 시간/장소 미정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네트워크(준)(약칭 민주넷)〉는 시민단체가 만든 2010년 지방선거 대응기구입니다. 시민참여형 선거활동의 모델을 다양하게 실험하고, 좋은 시장 만들기 운동도 벌일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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