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9년 11월 2009-11-01   2249

헌법 새로 읽기_재산권과 생존권-헌법의 기본권, 헌재의 이중 잣대

j.towbin© Flicker

재산권과 생존권-
헌법의 기본권, 헌재의 이중 잣대



김진 변호사


대한민국 헌법(우리 헌법의 본디 이름이 이것이다)을 펼쳐 읽어 보면 ‘아름다운’ 말들이 참 많다. 사실 많은 정도가 아니라 어디 하나 구구절절 아름답고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는 것이 없다.

노래 가사로까지 만들어진 첫 머리 조문 –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은 물론이고,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는 5조,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말하는 10조도 참 좋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그 중 으뜸은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는 34조가 아닐까 한다.

보통 법의 동네에서 이런 말들은 아름답기는 하지만 실체적인 효력은 가지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헌법 구절들은 그렇지 않다. 특히 이 조항은 사회보장에 관한 권리들이 문제될 때, 국가가 어느 정도까지 사회보장의 의무를 지는지의 기준이 된다.

사회보장 의무와 관련하여 가장 잘 알려진 사건으로는 1994년 보건복지부장관이 정한 ‘생계보호기준(당시 생활보호법상의 거택보호대상자에게 지급되는 생계보호기준은 매월 금 65,000원 정도로, 이는 93년도의 월 최저생계비 – 전국118,600원, 대도시:141,400원, 중소도시:126,400원, 농촌:106,100원 – 는 물론 육체적인 생존을 위해 필요한 최저생계비 105,000원에도 훨씬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다)‘이 너무 낮아서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한 헌법소원 사건이 있다.

이 사건에서 헌법재판소는 이렇게 말했다 :

“… 청구인들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기 위하여 국가가 실현해야 할 객관적 내용의 최소한도의 보장에도 이르지 못하였다거나 헌법상 용인될 수 있는 재량의 범위를 명백히 일탈하였다고는 보기 어렵고, 따라서 비록 위와 같은 생계보호의 수준이 일반 최저생계비에 못 미친다고 하더라도 그 사실만으로 곧 그것이 헌법에 위반된다거나 청구인들의 행복추구권이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헌법재판소 1997. 5. 29. 선고 94헌마33 결정)”.

최근에는 의료급여를 받는 저소득층도 자기부담금을 내게 한 법이 위헌인지를 다툰 결정에서 이 조항이 기준이 되었다. 2007년경 병의원 이용 시 돈을 내지 않던 1종 수급권자들이 이 병원 저 병원을 다니면서 파스를 처방받아 다른 사람에게 팔아 돈을 번다는 문제 제기가 있었고, 이에 대한 대책으로 나온 것이 이들에게도 의료기관 이용 시 1,000원에서 2,000원의 자기부담금을 부과하는 방법이었다.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의료급여법 시행령이 개정되었고 1종 수급권자 74명이 이것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침해했다고 주장하며 헌법소원을 제기한 것이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2009년 9월 24일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다음과 같은 결정을 하였다 :

“…본인부담금(회당 1,000원 내지 2,000원, 약국 500원)은 이를 과도하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그와 같은 부담도 건강생활유지비의 지원(매월 6,000원) 및 본인부담보상제 상한제를 통해 경감시키고 있으며, 보건소 등 보건기관을 이용하거나 선택 병·의원제를 택하는 경우 본인부담을 면제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 보완할 수 있는 장치들을 마련하고 있다… 의료급여수급권에 다소의 제한이 초래된다 하더라도 이로 인하여 국가가 실현해야 할 객관적 내용의 최소한도의 보장에도 이르지 못하였다거나 헌법상 용인될 수 있는 재량의 범위를 명백히 일탈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할 것이어서, 위 조항들로 인해 1종 수급권자인 청구인들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침해되었다거나 국가가 사회보장·사회복지증진의무·생활무능력자보호의무 등을 위반하였다고 할 수 없다…(헌법재판소 2009. 9. 24. 선고 2007헌마1093 결정)”.

여러 할 말이 있겠지만, 이 두 개의 결정문의 문장을 종합부동산세에 관한 다음 결정과 비교해 읽어 볼 필요가 있다 :

“…주택 보유의 정황을 고려하지 아니한 채 다른 일반 주택 보유자와 동일하게 취급하여 일률적 또는 무차별적으로, 그것도 재산세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고율인 누진세율을 적용하여 결과적으로 다액의 종합부동산세를 부과하는 것이므로, 그 입법 목적의 달성에 필요한 정책수단의 범위를 넘어 과도하게 주택 보유자의 재산권을 제한하는 것으로서 피해의 최소성 및 법익 균형성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선뜻 눈에 안 들어올 수는 있지만. 자세히 보면 앞의 두 결정문은 “최소한도의 보장을 하였는가”와 “재량의 범위를 일탈하였는가”를 기준으로 권리 침해 여부를 판단하는 반면, 뒤의 결정은 “피해의 최소성 및 법익 균형성의 원칙”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는 큰 차이점이 있다.

말하자면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는 “웬만하면(최소한에도 못 미치지 않으면) 침해가 안 된다”는 것이고, 재산권은 “웬만하면(조금이라도 균형이 맞지 않으면) 침해가 된다.”는 것이다. 그 간극이 매우 커 보인다. 게다가 학자들에게는 이렇게 재산권(자유권)과 사회권(생존권)에 대한 기본권 침해의 판단 기준을 달리 보는 것은 매우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과문한 탓인지 우리 헌법이 이들 기본권에 대해서 이렇게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지는 정말 의문이다.
기본권 조문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차이의 단서를 찾기 어렵고,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는 119조 「사회적 시장경제」 조항을 보아도 그러하며, 다른 기본권이라는 것도 결국 ‘인간다운 생활’ 보장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점점 더 미궁에 빠진다.
사실 재산 있는 자, 힘 있는 자는 저절로 법의 보호를 받게 되어 있어 법이 그렇게 큰 보호를 해주지 않아도 (그 이익을 보호할 국회의원을 뽑고 입법 과정에 영향력을 미쳐) 자연스레 보호를 받게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재산권에 대한 보호가 더 약해도 될 것 같은데 말이다. 정말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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