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10월 2001-10-01   1029

감동과 실속 광고의 두가지 표정

감동과 실속 광고의 두가지 표정

상품을 팔기 위해 광고를 만든다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상품만 파는 광고가 있는가 하면 소비자와의 관계를 파는 광고도 있다. 광고에 표정이 있다고 한다면 광고는 이렇듯 두 가지 표정을 지으며 소비자 곁으로 다가간다.

오렌지 주스는 원래 오후에 많이 마시던 음료였다. 지금이야 시간을 가리지 않고 오렌지 주스를 마시지만, 미국에서는 원래 목을 축여주고 영양을 보충하기 위해 나른한 오후에 오렌지 주스를 즐겨 마셨다. 주스 회사로서는 이것이 이만저만한 고민이 아니었다. 오렌지 주스를 오후에만 마시면 판매량이 크게 늘지 않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렌지 주스를 아침에 마시면 더 좋다는 광고 캠페인을 폈다. 결국 소비자의 태도가 바뀌어 아침나절에도 커피 대신 오렌지 주스를 마시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주스 회사는 판매량을 크게 늘릴 수 있었음은 물론이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요즘 많이 팔리는 청하는 원래 청주였다. 청주란 무엇인가? 설과 추석, 1년에 딱 두 번 제사 상에 올리는 술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되면 술 회사는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아무리 노력해도 그 결과가 기대에 못 미치게 된다. 그래서 데우지 않고도 사시사철 마실 수 있는 술 청하를 내놓게 되는데,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와 같이 상품을 언제 쓰는 게 좋은가(Time), 어떤 장소에서 쓰는 게 좋은가(Place), 어떤 경우에 쓰는 게 좋은가(Occasion)에 따라 광고를 하는 것을 TPO에 의한 광고 표현법이라고 한다.

서울우유의 아침 우유 광고 ‘량현량하’편은 우유 마시는 시간에 맞춘 TPO 광고이다. 즉, 새로운 욕망을 부추기며 상품을 사달라는 표정을 짓는 광고이다. 따지고 보면 아침에 마시는 우유와 저녁에 마시는 우유가 뭐가 다르겠는가. 광고에서 소비자의 상품 사용 습관을 의도적으로 조종함으로써 소비의 확산을 꾀하는 것이다. 특히,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가수 량현량하를 내세워 실제로 우유를 마시는 소비자 속으로 깊이 파고든 점이 이 광고의 장점이라 할 수 있다.

10대 소비 취향에 맞춘 우유광고 등장

10대 시장은 ‘꺼지지 않는 구매력(Rainbow Pocket)’을 바탕으로 갈수록 성장하는 시장이다. 이 시장은 자기 표현 욕구가 강한 신세대들에게 전자기술의 혜택을 제공함으로써 스스로 구매 결정을 하도록 유도한다. 또 이들은 인터넷을 중심으로 정보를 공유하며 의견을 모아 실제 행동에 옮기기 때문에 소비 패턴이 합리적이며 기업의 생사를 좌우할 만큼 대단한 위력을 지니고 있다.

10대의 문화를 반영한 ‘량현량하’ 편은 상표 이름에 나타나 있듯이 TPO에 의한 소구 방법과 함께 새로운 모델 전략으로 승부한 광고이다. 우유 광고라면 대개 정적인 이미지에 건강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 광고는 낡은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소비 주체인 10대들의 정서를 반영하고 그들과 밀접한 의사소통을 시도하고 있어서 TPO 광고의 성공 사례로 부를 만하다.

현대 광고는 대중문화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온 나라 어린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 춤기계 DDR과 량현량하의 신나는 춤을 한데 묶어서 표현하면 ‘아침에우유’라는 상표 이름은 보다 구체적인 시간을 형상화하며 어린이들의 흥미를 돋구는 강렬한 상징으로 작용하게 된다. 광고 메시지도 일반적인 내레이션 기법을 쓰지 않고, 량현량하의 히트곡인 ‘춤이 뭐길래’의 랩 부분을 ‘칼슘이 뭐길래’로 바꿔 전달함으로써 공감의 폭을 확대하고 있다. 사실 광고의 랩 부분은 목소리가 작아서 잘 들리지 않는다. 광고 메시지는 무조건 크게 외쳐야 한다는 통설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랩 스타일은 초등학생의 정서를 자연스럽게 파고들었다. 이 광고에서 보듯 광고 메시지가 주부가 아닌 10대에게 집중되고 있다는 점은 퍽 흥미롭다. 이는 자기 표현 욕구가 강한 10대가 벌써 스스로 소비 취향을 형성하고 구매 결정자로서의 지위를 확보하기 시작했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또한, 10대의 꺼지지 않는 구매력은 단지 시장을 형성하는 기능을 넘어 대중 문화의 기반을 구축하는 물적 토대가 된다. 광고에서 표현된 새로운 문화적 트랜드는 시간이 갈수록 우리 사회 구석구석으로 널리 퍼져 나가게 될 것이다.

보는 재미와 감동을 담은 기업PR광고

이와는 달리, 한국통신 기업PR 광고 ‘황둔 마을’ 편은 상품만 파는 광고가 아니라, 수용자와의 관계 설정을 시도하는 광고이다. 광고가 시작되면 한 농부가 경운기를 타고 가서 농장에서 오이를 따고 있다. 다음 장면은 “오이 30상자 주문합니다”라는 전자우편이 들어오는 컴퓨터 화면이다. 전자우편을 받고 즐거워하는 부부의 표정이 정겹게 느껴진다. 곧바로 답신을 보내고 나면 “Let’s KT”라는 핵심 광고 주장이 자막으로 뜨며 광고가 끝난다.

이 광고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정보화 마을로 지정된 강원도 황둔 마을에서 유기농법으로 오이를 재배하는 심재근 씨가 등장한다. 첨단 컴퓨터 그래픽으로 치장한 다른 정보통신 회사들의 광고와는 사뭇 다르다. 몇 초에 불과한 짧은 순간에 평범하게 살아가는 농부의 삶을 잔잔한 피아노 음악에 담아 보여주고 있다. 실제 농부의 모습을 그대로 보고 느끼게 하는 이 광고는 수용자들로 하여금 광고 보는 재미와 감동을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이 광고는 이루고 싶은 작은 꿈들에 도전하는 고객들을 소중히 여기는 기업 정신을 표현하고 있다. 험준한 산맥을 넘나드는 초고속 통신망으로 시골 구석도 도시와 똑같이 만들겠다는 기업의 의지도 담겨 있다. 광고를 위해 가짜 상황을 일부러 만들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 것이 오히려 감동을 더한 경우라 하겠다. 이는 곧 상품 판매만이 아닌, 소비자와의 장기적인 관계 설정을 시도하는 광고이다.

광고를 볼 때 단순하게 한쪽 면만 보기보다 광고 메시지가 지향하는 여러 가지 의미를 다양하게 살펴봐야 한다. 광고를 필요악이라거나 대중문화 형성의 제1원소라고 하는 따위의 막연한 허상에서 벗어나, 광고가 사회 구성에 어떠한 영양소로 작용하게 될 것인지, 아니면 어떠한 부작용을 미치게 될 것인지 꼼꼼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이런 연후에야 비로소 광고 메시지에 내포된 여러 의미들을 구체적으로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 광고는 표현 방법에 따라 늘 두 가지의 표정을 짓기 때문에 그것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결국 수용자들의 몫이다. 광고 창작자들의 의도와 관계없이,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광고가 어디에 어떻게 꽂히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결국 수용자들이 마음을 움직여 과녁이 되어 주어야 한다.

김병희 서원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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