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7년 03월 2017-03-02   575

[읽자] 약자가 강자를 변화시키는 최후의 기술, 비난과 수치심

 

약자가 강자를 변화시키는 최후의 기술,
비난과 수치심

 

 

글. 박태근 알라딘 인문 MD
온라인 책방 알라딘에서 인문, 사회, 역사, 과학 분야를 맡습니다. 편집자란 언제나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는 사람이라 믿으며, 언젠가 ‘편집자를 위한 실험실’을 짓고 책과 출판을 연구하는 꿈을 품고 삽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등의 국정농단을 둘러싼 일련의 사태를 보면, 과연 잘못을 바로잡는 가능한 방법이 무엇일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상대가 잘못을 인정하고 변화를 다짐한다면 대체로 용서와 화해가 가능하고 나아가 협력과 공생에 이를 수도 있겠지만, 상대가 잘못을 인정하지 않거나 모르쇠로 일관한다면 법적 조치와 수단을 동원하여 상대의 잘못을 인정받거나 드러내야만 한다. 그런데 세상살이라는 게 그리 명료하지 않아서, 통용되는 규범으로는 명명백백한 잘못조차 제대로 인정받기가 어렵고, 이를 간파한 상대가 오히려 큰소리를 치며 괜한 억측으로 억울한 상황에 처했다며 적반하장을 보이곤 한다. 죽으라는 법이 있어도 죽을 수는 없고,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만들 수 있는 법이니 강자의 잘못에 대응하는 약자의 최후 기술, 비난과 수치심을 익혀 공정사회 구현에 한 걸음 다가서보는 게 어떨까 싶다.

 

참여사회 2017년 3월호 (통권 243호)

비난의 역설_비난의순기능에 관한 대담한 통찰 / 스티븐 파인먼 지음 / 아날로그(글담)

 

양날을 동시에 쓸 수밖에 없는 비난
비난은 비판과 비교되며 나쁜 행위로 평가받곤 하는데, 조직 행동 연구자 스티븐 파인먼의 『비난의 역설』은 비난이 사회구성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고 주장한다. “합당한 비난과 분노가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 사회는 상상하기 어렵”고, “비난이 없다면 도덕규범은 실천이 보장될 수 없고 법적 구조도 지탱될 수 없다.”는 말인데, 물론 중세의 마녀와 오늘날 소수자에 대한 비난처럼 구별짓기를 통해 약자를 배제하는 비난의 역기능도 살펴야겠지만, 기업의 횡포와 부도덕한 정부에 맞서는 시민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비난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비난에 덧씌운 오해의 틀에서 벗어나, 비난의 순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자는 제안이다.

그런데 비난의 순기능과 역기능은 동전의 양면 같아서 순기능을 활용하는 데 역기능이 필요하기도 하다. 비난은 어떤 문제를 설명해주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주목을 끈다. 왜 실업 문제가 생기느냐에 정부가 잘못해서 그렇다며 정부를 비난하는 것은 문제를 단순화하여 온전한 해결에 이르게 하기에는 부족하겠지만, 문제의 핵심 고리가 무엇인지 드러내는 데에는 효과적일 수 있다. 결국 비난의 속성보다는 비난이 이루고자 하는 방향이 긍정과 부정을 평가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싶다. 이 책은 비난의 최종 목표가 잘못을 바로잡는 데 있다고 말하면서 진정한 사과가 가장 현명한 비난 대처법이고, 이런 과정을 거친다면 비난을 주도한 쪽에서도 비난이 일으킨 피해와 상처를 회복하는 데까지 힘을 쏟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비난을 꽤 시원한 방법이라 여겨온 이들에게는 다소 답답한 활용법일 수도 있겠다. 그런 분들께는 다음 방법, 수치심을 권한다.

 

 

참여사회 2017년 3월호 (통권 243호)

치심의 힘_약자들이 강자들에게 휘두를 수 있는 강력한 무기 / 제니퍼 자케 지음 / 책읽는수요일

 

개인의 죄책감, 기업의 수치심
수치심을 활용한 유명한 사례로 캘리포니아 주가 악성 세금 체납을 해결한 방법이 꼽힌다. 캘리포니아 주는 100억 달러에 이르는 세금체납액을 해결하기 위해 2007년부터 매년 전년도 세금 체납액이 10만 달러 이상인 개인과 기업 가운데 금액으로 순위를 매겨 상위 500위까지의 명단을 온라인에 공개했다. 물론 세금 체납자에게는 사전 통지를 보내 지금이라도 세금을 내면 명단을 공개하지 않겠다며 폭로를 근거로 위협을 전한다. 이렇게 해서 추가로 회수한 세금이 10여 년 동안 3억 3천 6백만 달러에 이르는데, 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데는 연간 13만 1천 달러면 충분하다고 하니 미국의 다른 20개 주가 비슷한 프로그램을 바로 시작했다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이제 구미가 당기는가. 그런데 수치심을 본격적으로 적용하기 전에 기억해야 할 점이 있다. 기업이나 정부가 적극적으로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수치심 유발 상황을 개인의 죄책감으로 돌려 손쉽게 해결된 듯 착각을 일으키는 경우인데, 이런 경우 정작 문제의 근원은 전혀 해결되지 않았는데도 자신들은 할 일을 다 한 것처럼 태연하게 하던 일을 그대로 하는 상황이 벌어지곤 한다. 참치 조업 장비에 걸려 목숨을 잃는 돌고래 문제가 드러나면서 참치 산업이 비난을 받았는데, 이후 죄책감을 느낀 개별 소비자가 통조림 참치를 사먹지 않으며 스스로 죄책감을 더는 방식으로 의사를 표현했고, 이후 참치기업들은 돌고래를 해치지 않았다는 친환경 라벨을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는 소비자들의 선택할 자유를 보장하면서 죄책감을 느끼는 소비자의 구매 습관만 바꾸는 방식이라 정작 근원적인 해결을 해야 할 기업의 수치심은 드러나지 않고 소비자 각각의 죄책감만 남게 되었다. 개인의 행동은 일부 바뀌었으나 산업 전체의 변화를 이끌어내지는 못했고, 경제적 이유를 비롯해 친환경 라벨이 붙지 않은 상품을 구매하는 이들도 여전해 결과적으로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앞서 비난의 양날을 살펴봤듯, 수치심 역시 죄책감과 구분하여 공동체의 문제 해결에 집중할 필요가 있겠다. 

물론 비난과 수치심 두 가지 방법 모두 염치와 명예라는 가치가 인정받는 곳에서 제대로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 두 가지 방법 모두가 적용된 사태가 한국사회의 한가운데에 놓였으니, 어쩌면 곧 두 책에 새로운 사례가 추가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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