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6년 05월 2006-05-01   1003

오월은 푸르구나

꽃이 피는가 하더니 신록의 계절, 꽃보다 더 아름다운 새잎의 계절. 이 생명의 계절에 새잎과도 같은 어린이를 위한 기념일이 있는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는 천도교 대교당이 있고, 그 담장 한 켠에 ‘어린이 운동의 발상지’를 알리는 작은 탑이 있습니다. 대교당은 1920년대에 지어진 근대 건축유산입니다. 그 무렵 천도교는 식민지 조선에서 가장 개혁적인 종교였습니다. ‘개벽’을 주장하는 종교였으니 당연한 일이지요. 〈개벽〉이라는 이름의 잡지는 당연히 천도교에서 발간한 것이었고, 당시 가장 진보적인 잡지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개벽’이란 뭔가요? ‘벽을 여는 것’, 바로 ‘새 세상을 여는 것’입니다.

여기서 문득 핑크 플로이드라는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과 미국의 알란 파커 감독이 함께 만든 ‘더 월’이란 음악영화가 떠오르는군요. 이 영화에서도 벽은 억압적 기성질서를 뜻합니다. 핑크 플로이드가 천도교의 ‘개벽’에 대해 알았더라면 아마 감탄하며 ‘더 월’에 인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당시의 ‘개벽’에는 어린이를 존중하는 것이 포함되었습니다. 이를 위해 어린이날이라는 것도 만들어졌습니다. 잘 알다시피 어린이날은 소파 방정환 선생이 만들었지요. 사실 ‘어린이’라는 말 자체도 1921년 소파 선생이 처음으로 만든 것입니다. 당시 어린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소파 선생은 어떻게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어린이 운동을 하게 되었을까요? 그 배경에는 천도교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소파 선생은 천도교 교령이었던 의암 손병희 선생의 사위였습니다.

천도교의 가장 큰 가르침은 ‘인내천’, 곧 ‘사람이 한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만도 놀라운 것입니다만, 여기서 나아가 사람에 여자와 아이도 포함시켰습니다. 남자 어른만이 ‘사람’이던 시절에 말입니다. 어린이를 사람으로, 곧 한울로 모셔야 한다고 해월 최시형 선생은 가르쳤습니다. 평생 ‘도망자’로 살아야 해서 늘 보따리를 싸 놓고 있었다던, 그래서 ‘최보따리’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던 해월 선생은 참으로 낮은 곳에서 희망을 기르친 큰 스승이었습니다.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어린이날만 되면 아직도 이 노래가 떠오릅니다. 그리고 하얀 뭉게구름이 피어난 파란 하늘 아래 싱그런 풀밭 위로 뛰어가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 시절 초등학교에서는 어린이날이 되면 학생들에게 빵을 줬습니다. 지금도 어린이날이라고 해서 빵을 나눠주나요? 시나브로 탐스런 빵보다는 싱그런 풀밭이 훨씬 귀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어린이들은 푸른 오월을 맨발로 온몸으로 느끼며 자라야 하는데 말입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 것이 아닙니다. 하얀 뭉게구름도 있어야 하고, 파란 하늘도 있어야 하고, 싱그런 풀밭도 있어야 합니다. 신록이 자라 한여름의 녹음이 되듯이, 어린이가 자라 어른이 됩니다. 건강한 어린이가 건강한 사회를 만들겠지요. 어린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크게 모자랍니다. 모든 어린이들이 싱그런 풀밭에서 실컷 꿈을 차올리는 날이 곧 오기를 이 봄에 다시금 기원합니다.

홍성태 <참여사회>편집위원장, 상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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