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4년 05월 2014-05-02   810

[정치] ‘불신 공화국’ 대한민국

‘불신 공화국’ 대한민국

 

이용마 MBC 해직기자

 

 

민낯을 드러낸 정부와 언론

 

할 말이 없다.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꽃다운 10대들이 차디찬 주검이 되어 차례로 올라오는 모습에 우리 사회의 ‘어른들’로서 어떻게 얼굴을 들 수 있겠는가. 며칠 동안 바닷물 속에 있었다고 하기에는 믿기 힘들 정도로 깨끗한 상태의 시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슬픔은 이제 분노로 바뀐다.

 

실상이 그랬다. 세월호 침몰 이후 생존자 구조 활동은 없었다. 사고 직후 이들을 구조할 천금 같은 시간대에 정부는 우왕좌왕했다. 사실상 아무런 조치도 없이 배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세월호의 침몰과 함께 우리의 희망, 정부에 대한 믿음도 더불어 침몰했다. 정부의 구조 활동은 ‘구조’가 아니라 그저 ‘시신 인양’ 작업이었다.

 

그런데도 소위 주류 언론은 평소처럼 정부의 발표만 반복했다. 구조가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실종자 가족들의 하소연은 정부의 공식 발표에 묻혀버렸다. 사고 직후 하루 2~30명의 잠수부만 투입하고도 500명이 넘는 구조인력이 투입된 것처럼 부풀렸다. 박근혜 대통령의 현장 방문은 오로지 생색내기에 그쳤고, 실종자 가족들의 불신은 증폭되었다. 오죽하면 실종자 가족들이 다시 청와대로 가자며 시위에 나섰겠는가. 그동안 국민들에게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 알려온 정부와 언론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이쯤 되면 굳이 실종자 가족이 아니라도 정부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커지는 것이 자연스럽다. 일부 정치인들과 고위 공무원들이 사고현장 주변에서 보인 부적절한 행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정부의 늑장 대응과 엉성한 재난관리시스템에 대한 지적은 지극히 온당한 것이다. 다소 거칠더라도 국민의 원망과 분노를 받아내는 것 또한 정부가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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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국민의 상반된 인식

 

대통령은 세월호 침몰과 같은 국가적인 재난사태의 총책임자이다. 대통령이 현장에 가서 직접 진두지휘를 하지는 못할지라도 국가의 최고 수장으로서 사태수습의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재난사태는 대통령에게 시련의 시기이기도 하지만 거꾸로 국민적 신임을 얻을 중대한 기회이기도 하다. 분노에 쌓인 실종자 가족들이 “청와대로 가자”고 외친 것도 바로 이런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런데 국민들과 달리 박근혜 정부에는 그런 인식이 부재한 것 같다. 대통령은 책임의 한 당사자가 아니라 그저 심판관일 뿐이다. 대통령은 ‘똑바로 하라’고 지시와 명령만 내리고, 모든 책임은 일선 현장에 있는 소위 ‘아랫것’들이 져야 한다. 갈팡질팡하는 정부의 무능에 대해 대통령이 사과는커녕 공무원들에게 책임을 묻겠다며 채찍질만 하는 이유일 것이다. 대통령이 직접 선발한 국회의원과 장관급 인사들의 부적절한 행태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소위 “빽” 없는 직업 공무원들의 실수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목을 치는 것도 국민을 기만하는 행태이다.

 

6.4 지방선거가 코앞에 다가와서일까. 국민들의 불신과 분노마저 조작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처음에는 실종자 가족들을 위로하는 것처럼 불필요한 유언비어를 단속하겠다고 하더니, 여당의 한 최고위원은 “종북좌파에 의한 정부 전복론”을 제기했고, 실종자 가족을 반정부 시위에 참여한 선동꾼으로 모는 여당 의원도 등장했다. 국방부에서는 “4월30일 이전에 큰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둥 북한 관련 ‘비공식 정보’를 이례적으로 공개하면서 북한의 4차 핵실험 징후로 국민을 위협했다. 대통령까지 도망간 선장을 공개적으로 살인자로 지목하며 정부로 향한 비난의 표적을 돌리기에 급급하다. 청와대는 또 다시 언론 통제를 시도하고, 공영방송은 실종자가 아직 120여명이나 남은 상태에서 세월호 보도량을 대폭 줄이기 시작했다.

 

민심이반의 심각한 조짐

 

이런 모든 행태는 정부에 대한 불신을 오히려 더 증폭시킬 뿐이다. 이명박 정부 이후 권언일체가 된 언론은 국민이 아닌 정권이 원하는 것만 전달해왔다.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을 ‘불신 공화국’으로 만든 주범은 바로 현 정부와 언론이다. 지금 정부와 언론에 대해 표출되고 있는 국민의 불신과 분노는 그 연속선상에 있다.

 

하지만 무소불위의 국정원도, 검찰도, 언론도, 청소년들의 안타까운 주검 앞에 더 이상 정부의 무능을 숨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결과 이번 사고가 남의 문제가 아니라고 인식한 국민들 사이에서 민심이반의 심각한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집권 이후 철저히 여론조작으로 일관해온 박근혜 정부가 중요한 시험무대에 들어섰다.

 

이용마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관악산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부지런함의 공존 불가를 절실히 깨닫고 있는 게으름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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