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4년 05월 2014-05-02   1947

[특집] 정당공천제를 폐지하면, 정치가 개혁될까?

특집 선거, 불편한 진실을 말하다

 

정당공천제를 폐지하면,
정치가 개혁될까?

 

정하윤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실행위원

 

 

참여사회 2014-05월호

 

\2014년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난 대선에서 논쟁 주제였던 정당공천제 폐지 문제가 쟁점으로 다시 등장했다. 지난 2012년 대선 과정에서 당시 안철수 후보는 ‘정치가 민의에 반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기초공천 폐지를 제안했고, 문재인 후보뿐만 아니라 박근혜 후보까지 정치개혁의 방안으로 정당공천제 폐지를 공약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박근혜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공천제 폐지 공약에 대해 어떠한 해명도 하지 않았고, 민주당과 안철수는 정당공천제 폐지를 ‘국민과의 약속’으로 제시하면서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했지만 지난 4월 10일 그 약속을 깨뜨렸다. 새정치의 목표로써 정당공천 폐지와 공약 이행을 내세웠지만 1년 이상 소모적인 논쟁만 지속되었고, 어느 누구도 약속을 지켜내지도 못했고, 약속을 파기했다. 새정치민주연합으로서는 명분도 실리도 지켜내지 못한 결과를 초래했다.

 

정당공천제, 폐지만이 능사일까?

 

정당공천제 폐지는 의제설정부터 잘못된 논쟁이었다. 정당공천제 폐지에 찬성하는 측에서는 정당공천제가 정치발전을 저해하기 때문에 이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지방선거에서는 지역 편향성이 문제시되고, 중앙 이슈가 쟁점화되기 때문에, 정당공천제를 폐지한다면 이러한 폐단을 근절하고 지방정치를 활성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방정치 발전에 정당이 걸림돌이 되었으며, 정당공천제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가? 정당공천제 폐지는 지역주의, 중앙 중심의 지방분권 등 한국정치의 고질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마스터키가 아니다. 문제는 정당공천이 정치적 폐단의 핵심이 아님에도 기득권층이 정당공천이 마치 정치개혁인 것처럼 프레임을 만들고, 시류에 편승하면서, 그것이 국민의 의견인 것처럼 왜곡하는 데 있다.

 

물론 정당공천제가 문제가 없는 제도는 아니다. 정당공천제는 지역주의 선거환경에서 특정 정당의 독점으로 지방정치가 중앙에 예속되는 것을 고착화시킬 수 있고, 공천 헌금으로 인해 고비용 선거를 조장함에 따라 부패를 심화시킬 수 있다. 또한 중앙당 중심의 하향식 정당공천제가 지방의 생활 자치를 정치화시키고, 자치 행정의 비능률을 초래하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그러나 정당공천제가 폐지된다면 지방 토호土豪들이 난립할 것이고, 선거 비용이 더 많이 초래될 뿐만 아니라 유권자로서는 후보 선택에 있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지름길이 사라지게 된다. 지방자치는 지방 ‘정치’가 아닌 지방 ‘행정’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지자체는 중앙으로부터 예산을 잘 얻어내는 것뿐만 아니라 공공재의 가치 있는 배분 역할도 담당해야 한다. 지방정치에서 정당은 이러한 배분과 관련된 책임 정치 실현에 중요한 기제다. 정당은 능력 있는 후보자를 공천하여 선거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유권자의 선택을 받게 하는 중요한 정치적 기능을 수행한다.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정당을 정치 영역에서 배제시키는 것은 책임의 소재지를 없애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한국 정당이 과연 책임정치를 실현하면서, 정치개혁의 주체가 될 능력이 있는가? 그동안 한국의 정당은 갈등과 대립,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 운영 양상을 보이면서 정치개혁의 주체가 아닌 대상으로 간주되었다. 한국의 기득권 정당은 대부분 정권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창당과 해산이 유동적이었고,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이 이루어졌으며, 지역과 연고주의에 의존하여 생명을 유지했다. 기존의 한국 정당들은 스스로 권력을 만들어내는 힘이 부족해 정책이나 이념을 중심으로 한 경쟁 구도를 창출하지 못했다. 결국 정당이 정치실패의 책임을 떠맡게 되었고, 그간의 정치개혁은 정당기능의 정상화 혹은 활성화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정당을 약화시키고 권한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정치개혁이 진행되었다. 정당이 이념과 정책을 중심으로 경쟁하면서 유권자를 결집시키고 지지를 획득하면서 대표성과 책임성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정치개혁이 진행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정치개혁은 이와 반대되는 양상을 보여 왔다. 그러다보니 악순환이 지속될 수밖에 없었다.

 

정당을 활성화하는 정치개혁이 필요하다

 

정당공천제 폐지 문제는 정치개혁 논의의 일부일 뿐이며, 정당공천제에 문제가 있다면 우선 공천 과정을 투명하게 함으로써 올바르게 작동할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정치의 기능을 정상화할 수 있는 맥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기능이 있다면 순기능을 할 수 있도록 개선하고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하는데, 오작동 한다고 그 기능을 없애버린다면 그것이 가지고 있는 가치마저 사라지게 하는 것이 된다.

 

정당의 대의 활동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의사가 제대로 전달될 수 있고, 이념·정책적으로 다양한 정치세력들 간 정당한 경쟁이 보장되는 제도적 맥락을 갖추어야 한다. 다양한 세력들 간 경쟁이 이루어지려면 우선 결사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는데 한국의 제도는 오히려 자유를 제약하는 방향으로 설정되었고, 문제의 근원을 다루기보다는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규제조항을 만드는 데만 급급했다. 또한 제도가 기득권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어 다양한 정치세력들이 정당으로 발전하고 경쟁하면서 정치권으로 진입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현행 정당법에서는 수도 소재 중앙당과 5개 시·도 단위 당원 등 정당설립조건을 명시하고 있는데, 이는 지방정당의 결성뿐만 아니라 정당 간 경쟁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선거제도의 경우에도 국회의원과 지방의원 선거에서 소선거구제 중심의 지역구 선거가 주를 이루고 정당투표를 통해 일부 비례대표 의원을 선출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기득권 정당의 독점구조를 공고화하고 신진세력의 진입을 어렵게 한다. 따라서 정치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면서 지방정당 활동을 허용하고, 비례대표제를 확대하는 것이 정치개혁에서 더욱 중요하다.

 

정당은 대의 민주주의에 있어 정치의 생명선이며,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이다. 정치개혁은 정치행위자들의 기능을 살리고 강화하는 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천을 통해 유권자에게 정치적 지위를 인정받는 정당 본연의 기능을 강화시켜야 한다. 특히 정당의 대표성과 책임성 강화를 위해 정당들 간 다원적 경쟁을 가능케 하는 정치 제도 개선이 무엇보다 시급할 것이다.

 

정하윤

이화여대 지역학박사. 미국 기후변화 정치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 관심 분야는 환경정치이며, 녹색당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하여 현재 소수정당과 소수정당의 정치제도화를 가로막는 제도적 제약 등으로 관심분야를 확장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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