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4년 05월 2014-05-02   2290

[여는글] 노이라트의 배

노이라트의 배

여는글-이미지-web

 

어찌해야 할 지 모르겠다. 그 아이들의 운명에 생각이 미치면 심장이 아프다. 아이들 부모형제를 떠올리면 미안하고 죄스럽다. 행여 그 분들과 만나더라도 눈을 마주치지 못할 것 같다. 모두들 같은 심정이겠지만, 내 마음을 어떻게 추스를 수가 없다. 비통함, 안타까움, 미안함, 분노, 부끄러움의 감정이 온통 뒤범벅이다.  

 

깊은 비극의 시간이 흐른 뒤 이 참사는 어떻게든 수습될 것이다. 소란스럽게 사고 원인과 책임 소재를 따질 것이고 그에 따라 관련자들이 머리를 조아리고 사과를 하고, 또 민·형사적 또는 정치적 책임을 질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과 업계는 이런저런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고는 두 번 다시 이런 엄청난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안전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다짐할 것이다.  

 

한국 현대사의 응축, 세월호 사건

 

이번에는 다를까? 이런 비극을 또 겪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우리의 절절한 희구와는 달리 이번에도 결국 다르지 않을 거라는 게 내 이성적 판단이다. 돌이켜보면 지난 수십 년간 우리는 대형사고가 터질 때마다 언제나 대책을 세우고 반성을 했다. 서해 페리호 사고,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지하철 사고 등등. 하나같이 끔찍한 사고였고, 그래서 다시는 이런 비극을 되풀이하지 말자고 안전대책을 세웠다. 그러나 달라진 건 하나도 없었다. 이번엔 다를까? 감히 말하기 두렵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다 잊어버릴 것이다.

 

이 비극의 밑바닥에는 한국사회의 현대사가 작동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겉으로는 민주주의 제도를 실시하고 일인당 국민소득도 삼만 달러에 가까운, 멀쩡하고 잘사는 나라이지만 그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전혀 행복하지 않다. 오히려 불행하다.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유일한 원리는 잘사는 것이다. 사회경제 제도와 정부정책은 성장지상주의 원리에 따라 만들어지고 운용되며, 우리 모두의 최종목표도 돈벌이다. 기업은 효율성이 경영의 유일한 잣대이고,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얼마나 돈을 버느냐에 좌우되고, 심지어 문학·역사·철학의 발전 방향도 돈벌이, 즉 문화콘텐츠 사업이다. 정권의 성패도 경제성장에 좌우된다. 그러니 돈이 되지 않는 것은 존중받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게 되었다.

 

사회를 지탱하고 개인의 삶을 완성시켜주는 기본가치들은 이제는 장식물로도 쓰이지 않는다. 정직, 양심, 정의, 무조건적 사랑, 이런 것들은 입에 담기에도 쑥스럽고 시대에 뒤떨어진 말들이 되어 버렸다. 경쟁에서 살아남기가 개인 삶을 이끄는 유일한 가치 지향이 되어버렸고, 공동체 이익과 마땅한 직업윤리를 추구하는 개인은 그야말로 개인적 일탈일 뿐이다. 모든 집단이 공익보다는 이런저런 집단이기주의에 좌우되고, 정치인이나 관료, 언론인이나 지식인할 것 없이 모두 사명감과 직업윤리가 없다. 안전한 나라 만들기는 엄청난 시간과 돈과 노력을 투자해야하는, 돈벌이 관점에서 보면 아까운 비용지출일 뿐이다. 우리 사회가 돈벌이와 성장지상주의의 미망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어찌 오늘의 이 비극이 앞으로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을 거라고 믿을 수 있으랴.

 

인간은 비극의 반복을 막을 수 있을까

 

20세기초 오스트리아의 경제학자이자 철학자인 노이라트Otto Neurath는 논리실증주의자의 진리 토대주의를 배에 비유하며 비판한 적이 있다. 우리는 지금 대양 한가운데에서 고장 난 배를 수선하면서 항해를 계속하는 선원들의 처지와 같다. 수선을 하지 않고 배를 돌려 기항지의 조선소에서 배를 근본적으로 수리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목적지에 다다를 때까지 아무런 조처 없이 항해를 계속한다면 배는 침몰하고 말 것이다. 이 배의 선원들은 항해를 계속하면서 수리를 할 수밖에 없다. 갑판에 물이 새면 쉼 없이 물을 퍼내면서 남는 나무판자 하나를 떼어내거나 물에 떠다니는 판자들을 건져 일단 수리할 수밖에 없다. 하나가 고장 나면 하나를 고치고 다른 하나가 또 고장 나면 다른 하나도 고치면서 말이다. 그것도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조금이라도 방심한다면 배 밑바닥에는 곧 바닷물이 차오르고 배는 침몰의 위험에 빠질 것이다. 그게 우리 인간의 운명이다.

 

나는 여전히 이번 비극에도 우리 사회는 크게 바뀌지 않으리라 예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비극의 반복을 막고 안전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고장 난 나라를 수선하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그것은 노이라트의 배를 탄 인간의 운명이 내리는 윤리적 명령이다.

 

 

김균

경제학자. 현재 고려대 교수이자 참여연대 공동대표. 노년이 지척인데 아직도, 고쳐야 할 것들이 수두룩한 미완의 삶에 끌려 다니고 있음. 산을 좋아함.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