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8년 10월 1998-10-01   758

하이에나 방송의 대통령 길들이기

하이에나 방송의 대통령 길들이기

새해 초 김대중 대통령이 국민회의 문화관광위 소속 국회의원들을 불러놓고 말했다.

“언론을 통제하고자 마음먹는 것은 독약을 한 사발 마시는 것과 같다."

2,500년 전 중국 위나라 ‘사추’라는 사람이 말했다.

“부유하면서 교만하지 않은 자가 흔치 않고, 교만하면서 망하지 않은 자가 없었다."

지금, ‘부유한’을 ‘권력’으로 바꾸어 언론인 정경희 선생이 말한다.

“권력을 쥐고 있으면서 교만하지 않은 자가 흔치 않고, 교만하면서 망하지 않은 자가 없다."

최근 국민회의의 후퇴한 방송법안을 보고 『미디어오늘』을 통해 현정부에 보낸 경고 메시지다.

분명 현정부는 후퇴하고 있다. 방송개혁의 시금석인 통합방송법만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KBS, MBC 등 방송사 규제기구인 ‘방송위원회’ 구성과 운영에 행정부의 영향력을 확대시켰고, 언론통제의 창구였던 구공보처의 부활을 꿈꾸는 자들이 행정부와 국회에 존재하고 있다.

특히 지난 시기 방송의 주변부를 맴돌던 이들이 정권교체 후 방송의 중심으로 등장하면서, ‘방송의 단맛’에 길들여지고 그러면서 ‘언론개혁 없이 사회개혁 없다’는 말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방송개혁의 핵심이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라면 DJ정부는 YS 그 이전 독재정권과 마찬가지로 방송을 정권유지의 도구로 이용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미 방송은 권력을 향한 해바라기 근성을 버리지 않고 있고, DJ정권은 이를 적절히 이용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오히려 역이용당하고 말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 이후 방송과 권력은 어떻게 유착하고 있는지 사례를 통해 알아보자.

97년 12월–방방곡곡 김비어천가

전국에 ‘김비어천가’가 울려 퍼진 것은 개표가 막바지에 다다른 12월 19일 새벽 3시. 방송3사는 김대중 당선예상자 일대기를 한차례 내보낸 뒤 아침부터 저녁까지 <특별기획 1, 2, 3(KBS)>, <선택 ′97 위대한 국민과 함께>, <다큐멘터리 특집 당선자 일대기(MBC)>, <새 시대를 연다 1, 2, 3(SBS)> 등의 프로그램을 집중 편성해 같은 내용을 하루종일 되풀이했다.

방송3사는 ‘이 시대의 횃불’ ‘이 시대의 희망’이라는 수사를 동원했으며 심지어 김 당선자가 정계은퇴 선언을 번복한 것에 대해서조차 “시대가 그를 다시 불러들였다"고 주창했다.

수십 년 ‘반DJ’로 일관해온 화면에 느닷없이 ‘겨울에 활짝 핀 인동초’ ‘북악에 핀 인동초’라는 민망한 예찬이 쏟아진 것이다.

98년 1월–사람도 뉴스도 국민회의 앞으로

“선진국치고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방송사의 주요 책임자를 일시에 보직 변경하는 나라가 몇이나 될까?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방송사의 주요 포스트가 덩달아 바뀌는 이런 현상은 누가 뭐라 해도 방송이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이지 않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라 할 수 있다."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양승목 교수의 지적이다.

집권여당이 바뀌자 정당을 출입하던 기자단의 대이동이 있었다. 한나라당을 출입하던 기자 100여 명 중 절반 가까이가 이삿짐을 싸서 줄줄이 국민회의 당사로 옮겼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나라당으로 출입하던 각 언론사 국회반장들도 하나 둘씩 국민회의로 ‘주소’를 바꾸었다. 정권교체의 기현상으로 표현되는 정당기자의 대이동. 이날부터 한나라당 기사는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탄식이 당 관계자뿐 아니라 담당기자들에게서도 터져 나온다.

MBC 한나라당 출입기자 김은혜 씨는 “언론이 권력 교체시마다 정권의 사랑을 받으려고 브레이크 없이 달려나갈 때, 정권 대신 국민의 사랑을 받으라고 질책하는 취재원들의 원성에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98년 3월–방송에 ‘권력에 대한 비판’은 없다

오랜 기간 야당생활을 해온 정치세력은 한 번도 언론으로부터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비판다운 비판’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정권교체를 이뤄내자 언론의 태도는 돌변했다. 대접받는 정권은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며 언론을 개혁대상에서 제외시키며 소위 ‘언론에 대한 불간섭 원칙’을 세웠다. ‘불간섭 원칙’ 천명에 따른 방송가의 화답은 권력에 대한 무비판으로 이어진다. 검찰은 3월 23일 DJ 비자금 수사를 발표하면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와 청와대·한나라당 인사들 모두에게 무혐의나 기소유예 처리를 했다. 방송뉴스에선 검찰의 수사발표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도됐다. MBC <뉴스데스크>만 ‘어정쩡한 종결’이란 제목으로 “이번 수사는 숱한 의문점을 남긴 채 정치적 해답을 제시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고 보도했을 뿐, KBS와 SBS 뉴스는 단순사실만 보도했다. 대부분의 신문에서 검찰의 이런 발표가 법의 논리를 무시한 정치적 해법이라고 지적한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방송노조 관계자들은 “방송뉴스에서 비판이 사라지는 것은 경영진의 살아남기 전략의 일환"이라고 꼬집었다.

98년 3월–방송사 사장 및 부사장 임명 파문

3월 19일 KBS 홍두표 사장이 전격 사표를 제출하고 일부 신문에 사장 및 부사장 내정설이 퍼지면서 방송사 인사 파문은 시작되었다. 내정설에 대해 KBS 노조, 언론노련 등은 곧바로 성명을 냈다. 방송의 독립성 보장을 약속한 새 정부가 이사회 등의 공식 절차를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후임 사장은 물론 부사장까지 내정·통보하는 식이라면, 새 정부의 언론개혁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KBS 부사장의 경우에는 사장이 임면권자인데도 불구하고 새 사장이 선출되기도 전에 내정됐다면 새 정부 또한 방송사 인사에 일일이 개입했던 과거 정권과 전혀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권력의 후원 또는 배려를 받은 사람이 권력의 비판과 감시에 아무래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이런 폐습을 고치지 않는 한 방송이 제 기능을 하는 날은 참으로 요원할 것이다.

98년 4월–바자회 생중계 ‘충성경쟁’해프닝

“KBS, MBC, SBS 방송3사가 국민회의 바자회 행사를 생중계하기로 했으므로 긴급 편성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현업 PD들은 반발하며 “국민회의는 당 행사에 방송을 이용하지 말라"는 성명을 발표하고, 제작거부 태세에 돌입했다.

그러나 바자회 생중계 사건은 국민회의의 요구에 의한 것이 아니라 KBS, MBC, SBS 방송3사가 경쟁적으로 중계하려 한 것으로 밝혀졌고, 국민회의측에서 철회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이 사건으로 방송의 권력에 대한 ‘충성경쟁’과 ‘짝사랑’은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방송사가 망신을 산 ‘충성경쟁’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국민회의가 실업기금 마련을 위한 바자회를 계획하자 SBS가 행사경비 일체와 운영인력 제공을 조건으로 독점중계권을 달라고 제안하면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어 MBC도 동일한 제안을 국민회의측에 요구했다. 국민회의측은 SBS와 선약한 사항이라며 MBC의 제안을 거절했으나 MBC가 재차 요구하자 SBS측의 양해를 얻어 양사가 공동중계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이 사실을 전해 들은 KBS도 방송3사 가운데 KBS만 빠질 수 없다며 공동방송에 참여시켜줄 것을 국민회의측에 요구했다. 구체적인 내용이 알려지지 않은 채 현업인들의 반발로 불똥은 국민회의측으로 튀었고, 이에 대한 방송사측의 해명을 요구하자 SBS는 “국민회의 측이 방송3사에 공동중계를 요청했다"는 식으로 발뺌했으며 KBS는 “밝힐 수 없다"며 침묵으로 일관했다.

98년 8월–‘행정부 권한 확대’ 통합방송법 후퇴

방송사를 규제하는 방송위원회의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을 경우 방송독립은 곧장 침해를 받는다. 기존 공보처 방송업무를 이관받을 방송위원회가 행정부의 영향력 아래 놓일 경우 KBS, MBC 등 방송사에 각종 규제를 가했던 구공보처의 행태를 답습할 수밖에 없다.

국민회의는 8월 말 당정협의를 거쳐 정부여당 방송법안을 확정했다. 확정한 방송법안에 방송위원회의 조직, 운용과 관련해 행정부 간섭의 길을 터놨다. 방송위 조직과 운용에 관한 사항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함으로써 행정부 간섭의 통로를 열었으며, 그것도 모자라 방송위원회 설립준비위원회를 만들어 방송위원회 사무처 구성 주도권을 문화관광부에 넘겼다.

또 방송위원회 사무처에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최소한의 공무원을 둘 수 있다”는 독소조항도 그대로 두었다. 이 조항을 없앨 수 없다면, 최소한 “필요한 경우 방송위원장이 해당 부처에 공무원 파견을 요청할 수 있다"는 정도로 제한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묵살됐다. 결국 방송위원회를 문화관광부 산하기관쯤으로 취급하고 있으며, 갈 곳이 없어 떠도는 구공보처 관료들이 대거 방송위원회로 넘어오는 사태가 우려되고 있다.

문화관광부의 요구에 따라 외주제작 프로그램과 국내 프로그램의 편성비율을 대통령령으로 정하고, 방송사 자료제출 요구권을 방송위, 정보통신부 이외에 문화관광부에도 부여하도록 시안을 수정했다. 더구나 방송위원회에서 가장 중요한 방송위원 구성과 관련, 여당과 야당의 비율이 10대 4인 위원선임방식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는 김대중 대통령의 공약에 정면 배치되는 것이다. 공약은 “방송위원 구성은 원내 교섭단체간의 합의로 추천한 20인을 대통령이 위원으로 임명토록 할 것이며, 한 정당이 전체 위원의 과반수를 추천할 수 없도록 한다”이다.

98년 9월–“공보실을 키워서 공보처를 부활하라”

김대중 정권은 언론장악의 통로로 이용된 공보처를 폐지함으로써 언론자유와 언론독립의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폐지한 지 7개월도 지나지 않았는데, 구공보처의 핵심 기능을 총리실 산하 공보실로 이관시키는 방안을 추진해 ‘공보처 부활’을 시도하고 있다.

김종필 총리는 기자간담회에서 구공보처의 신문, 방송, 해외 홍보업무를 정부 공보실로 옮겨 일원화하는 방안을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고 밝혀 ‘공보처 부활’ 의도가 아니냐는 빈축을 사고 있다.

98년 9월–방송청문회 실시 불투명

정부여당이 문민정부의 방송실정에 대한 청문회를 개최키로 했다. 방송청문회는 그동안 확장 일변도로 일관해온 문민정부의 방송정책을 심판하는 것이다. 파국을 맞고 있는 방송시장의 책임자를 규명해내고, 지역민방과 케이블 텔레비전 인허가 과정의 비리를 캐내는 것이다. 그러나 방송청문회는 경제청문회와 연관되어 실시가 불투명하다. 이로써 방송청문회 주장이 여대야소 정국을 만들기 위한 전략적 카드로 이용된 것이라는 분석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경제청문회도 어려운 판에 방송청문회만 실시하는 건 어렵다"는 말로 비켜가고자 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동안 숱한 의혹이 제기됐으면서도 은폐의 철옹성 속에 엎드려 있던 방송실정을 진실의 양지로 끌어낼 수 없는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지난 대선 이후 9개월 간의 방송계를 돌아보면 두 가지 중요 논점을 찾을 수 있다. 하나는 방송의 정권을 향한 해바라기 근성의 적나라한 표출이고, 또 하나는 정부의 방송에 대한 간섭욕구가 스멀스멀 기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언론을 통제하려고 마음먹는 것은 독을 한 사발 마시는 것과 같다"고 했으나, 한 가지 빠진 것이 있다. 방송의 단맛에 길들여지는 것도 독을 마시는 것과 같다는 점이다. 또 대통령이 방송독립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하더라도, 방송법을 통해 실현되지 않으면 결국 ‘무늬만 방송독립’이 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다르다’는 점이다.

권력에 의한 방송통제는 방송사 인사로 이뤄진다. 사장을 누가 임명하는가, 방송사 이사를 누가 임명하는가의 문제다. 현재 방송법에 의하면 KBS 사장은 KBS 이사회 추천으로 대통령이 임명하고, KBS 이사회는 방송위원회 추천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MBC 사장을 임명하는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는 방송위원회와 국회가 절반씩 추천하여 방송위원회가 선임하게끔 되어 있다. 결국 방송위원회를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방송독립이 좌우된다고 할 수 있다.

방송위원회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는 방송법에 담기게 된다. 방송법 투쟁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 정부여당 법안대로 간다면 방송위원회의 독립과 방송독립의 명제는 또다시 표류하게 될 것이다. 이제는 지난 10년 간의 투쟁 결실을 이루어야 할 때다.

최종숙 전국방송노조연합 대외협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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