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9년 10월 2009-10-01   1142

칼럼_청신한 하늘 혼탁한 현실



청신한 하늘 혼탁한 현실


박영선 『참여사회』 편집위원장


우주의 어떤 빛이 창앞에 충만하니
뜨락의 시린 귀또리들 흙빛에 몸을 대고
기뻐 날뛰겠다


가을의 서정을 느껴보시라고 김 선생께 보내는 편지의 첫 구절을 이시영 시인의 ‘가을’로 열어보았습니다.
진흙밭처럼 혼탁하기만 한 현실을 외면하고 싶어서일까요.
요즈음 유난히 청신하기만 한 가을 하늘을 올려 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옹색한 마당 한구석에서도 때가 되면 튼실한 열매를 매달고 담장 너머 행인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기특한 유실수들도 우리의 헛헛한 마음을 위로해주고 있지요.
인간의 뿌리인 자연이 우리의 상처를 위로하는 것은 당연지사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김 선생. 언제까지 우리는 하늘이며, 햇살, 바람
그리고 그 모든 것의 합작품인 꽃이며 나무에게만 따스한 위안을 받아야만 할까요.


그리 상심할 필요가 없다구요? 그래요. 한 두 해도 아니고 매번 거듭되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인사청문회 때마다 위장전입, 탈세, 병역비리, 부동산 투기 등 불법과 각종 의혹으로 얼룩진
공직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확인하게 되는 것은 큰 고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청와대는 이번 개각의 기준을 도덕성으로 잡았다지요. 딴에는 검증을 할 만큼 했다고 자신했는지,
“상당히 많은 부분을 알고 있었다.”, “웬만한 문제는 다 확인했다.”고 하더군요.
인사 검증의 결과는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라고 하는 대통령 실장의 발언으로 요약됩니다.
그러고서도 국민들에게는 ‘법치’ 운운하며 ‘준법’을 강조하고 ‘불법행위 시 엄중 처벌’을 하겠다고 협박을 해대겠지요. 여러모로 ‘거꾸로’ 사회입니다.

만약 이번에 드러난 다운계약서 체결, 위장전입, 소득세 탈루 등이
“국무위원으로 활동하는데 결격사유가 될 만한 문제는 아니라고 판단했다.”면
아예 앞으로는 아예 국무위원의 자격을 그렇게 한정하는 게 어떨까요. 더 가관인 것은 ‘이중 잣대’문제였지요.
한 마디로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스캔들’입니다. 일일이 거론하고 싶지 않지만,
위장전입을 이유로 엄중하게 추문(推問)을 하며 공직 후보자들을 낙마시켰던 이들이 이제 와서는
“과거에 별 죄의식 없이 관행적으로 이루어졌던 일들” 뿐이라며 말을 바꾸는 것은 추태 그 자체였습니다.  


김 선생이 잘 알다시피 저는 평소 공직자나 선량을 뽑을 때 ‘도덕성’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것을
마뜩치 않게 여기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적격여부를 따질 때 또 다른 중요한 기준인 정책 능력에 대한 검증은 아예 도외시되곤 했으니까요.
무엇보다 헌법에 국민의 의무라고 또렷이 새겨있는 납세나 병역이 도덕성 기준의 중요한 지표라는 점이 우리 사회의 후진성을 대변하는 듯해서 견딜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해서 저는 공직자를 선출함에 있어서 도덕성 문제는 아예 거론할 필요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왔지요.
그래야지만 ‘인권이 뭔지 모른다.’는 인권위원장이나 여성부의 업무를 ‘직원을 통해서만’ 알고 있는
여성부 장관 후보자 같은 이가 다시는 발붙일 일이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몇 번의 인사청문회 파동을 거치게 되면 결국 도덕성만이라도 갖춘 공직자라도 나타나길 염원하게 되지요. 
그런데, 김 선생. 제가 요즈음 가을 하늘을 자꾸 올려 보는 진짜 이유는 한나라당 등 일부에서 강변하는 바, 도덕성은 ‘새로운 시대의 잣대가 될 수 없다’는 논리가 알게 모르게 세태로 굳어버릴 거 같아서랍니다.

우리 아이가 일류 학교에 갈 수 있다면, 우리 집값이 오를 수 있다면,
그래서 혹시 우리가 중산층이 될 수 있다면 기꺼이 모든 비난을 감수할 수 있다는 용감(?)한 처신이
우리 사회 1퍼센트만이 아니라는 징후가 여기저기에서 발견되곤 하니까요.
동아일보 등에 실린 사설이 대표적이잖아요. 그럴 리 없다구요? 일부의 시각일 뿐이라구요? 그래야지요.
아무리 거꾸로 가는 세상이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버티고 지켜야 하는 게 있겠지요.
제 심란함이 군걱정이길 염원할 뿐입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라’는 한가위에 우울한 얘기만 꺼내놓고 말았군요.
다음 달 편지에선 명랑한 소식을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참, 좋은 소식이 한 가지 있는데 전하지 않았네요. 참여연대 후원의 밤 말이에요.
우리 회원들과 후원자들의 십시일반으로 알찬 결실을 거두었답니다. 행사도 잔칫집마냥 흥겨웠구요.
요즘 유행하는 ‘우애사회’의 일단을 경험했다면 지나친 과장일까요?
후원금 잘 받았어요. ^ ^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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