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09월 2001-09-01   764

빵과 선교

빵과 선교


필자는 한국내 외국인 노동자를 지원하는 각종 종교·시민 단체들을 통해 한국 시민운동을 부분적으로 경험해왔다. 지난 몇 년간 필자는 건국대학교 사회교육원 부속 일요대학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한국 역사”를 강의했기 때문에,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시민·종교 단체들을 찾아다닌 적이 꽤 많았다. 필자에게 배우는 노동자가 월급을 떼였거나 비인간적 대우를 받았거나 산재를 입었을 때, 그들과 같이 상담소나 ‘외국인 노동자의 집’과 같은 단체를 찾아 가 말이라도 통하게 거들어주려고 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외국인을 도우려는 한국인 활동가들을 많이 만나게 되어 상당히 깊은 인상을 받았다.

다른 서양 국가에서 제3세계 외국인 노동자를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것과 비교할 때 한국 사회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 심리적으로 좀 닫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다. 보수적 언론매체들은 늘 “선진국”의 사례로 세상만사를 판단하면서도 ‘후진국’과 그곳 출신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은근한 멸시와 무관심을 퍼뜨린다. 제3세계 가난의 구조적인 이유를 설명해 주는 진보적 대중매체는 몇 되지 않는다. 그리고 ‘국가’와 ‘민족’을 내세워 ‘국민 경제’를 위해서는 어떤 행위도 다 합리화하는 관제(官製) 민족주의는 아직까지 의무교육의 중요한 내용으로 남아있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정권과 언론이 만들어 낸 무관심과 멸시의 장벽을 넘어 한국의 ‘일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를 뒷받침해주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봉사의 길에 나서려면, 실로 비상한 독립심과 판단력, 자각과 희생정신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각종 상담소에서 없는 여유와 시간을 다 써 가면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무보수로 뛰는 사람들은 현대의 선각자이자 영웅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이 사람들을 보면서, 필자는 한국이 언젠가는 ‘후진’ 세계에 대한 멸시와 ‘선진’ 세계에 대한 동경이라는 아류 제국주의적 정서의 함정을 반드시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그런 한편 외국인 노동자를 도와주는 일부 교회 단체를 접하면서 상당한 회의도 느끼게 됐다. 왜냐하면, 이 단체들이 외국인 노동자 구제 활동을 통해 이루려는 궁극적인 목표는 ‘선교’이기 때문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의료 서비스와 법률 상담 등을 제공하고 만남과 사교의 장을 마련해주는 것은 더없이 고마운 일이다. 교회 단체들이 마련해준 안식처 덕분에 배고픔을 해결하고, 교회가 가르쳐 준 기초 한국어 덕분에 가혹하게만 보였던 한국을 ‘제2의 고향’으로 여기기 시작한 사람들을 필자는 꽤 많이 만났다. 그러나, 몽골, 미얀마 등지에서 온 그들이 의료 서비스와 한글 교육을 받는 과정에서 ‘예배에 나와주었으면 좋겠다’는 끈질긴 권유(?)를 받고 적잖이 마음 고생을 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비록 몸은 이역만리 타향에 떨어져있지만 출신 국가의 전통적 종교 문화에 대한 애착은 아주 강했다. 그들은 교회 단체 봉사자들의 신앙심과 선교열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조건 있는 지원’을 받는 것이 자신의 문화와 신앙에 대한 배신을 뜻하는 것은 아닌지 뜨거운 고민을 하기도 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교회단체는 악덕 기업주와 경찰의 폭력을 막아 주었지만 대신 상당한 정신적 폭력을 휘두르는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과거 한국에서 서양 선교사들이 구사했던 ‘빵을 통한 선교’ 전략을 떠오르게 하는 이와 같은 ‘선교를 위한 지원’은 하루 빨리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박노자 오슬로 국립대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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