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6년 04월 2006-04-01   1230

흙과 건강

흙은 생명의 터전이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흙도 흙 나름이다. 모든 흙이 다 생명을 키워내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떤 흙이 생명을 키워내는, 그러니까 우리의 건강을 증진시키는 흙이며 어떤 흙이 그렇지 않은 흙일까?

‘반지의 제왕’이라는 영화를 많은 이들이 보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보면 사람의 병과 상처를 치유하는 요정들이 나오는데, 이들은 깊은 숲에 산다. 한편 인간 세계를 파멸시키려는 악의 마왕이 사는 곳은 용암이 들끓는 땅의 끝이다. 이들이 인간을 죽이기 위해서 동원하는 죽음의 병사인 오르크들은 땅 속에서 광산과 제련소를 연상시키는 과정을 통해서 탄생한다. 이 죽음의 세력과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싸움이 붙었을 때 인간을 도와주는 것은 저주를 받아 숲의 동굴에 숨어있는 영들이든, 오래된 나무의 정령들이든, 어쨌든 숲과 식물을 대표하는 힘들이다.

이 영화뿐 아니라 많은 예술작품들과 종교에서 숲과 식물은 인간의 삶을 도와주며, 땅 속 깊은 곳에는 인간의 생명을 파괴하는 힘이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런 상징들은 실제를 상당히 잘 반영하고 있다.

생명의 터전, 흙

원래 흙은 식물에서 나온 것이다. 처음 이 지구상의 흙은 수중에서 발달해온 식물체의 씨앗 가운데 수면 위로 솟은 암석에 떨어진 것이 살아남게 되면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 식물체는 비바람에 깎여 잘게 부서진 암석 가루 사이에 뿌리를 내려 탄소동화작용을 하면서 뿌리를 뻗어가기 시작해 암석을 더욱 빠르게 부수어갔다. 그러다가 씨앗을 남기고 죽은 식물체가 암석 가루 사이에서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어 씨앗에게 양분을 공급하면서 지상에는 기름진 흙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런 노력이 적어도 20억 년 이상 계속되면서 생겨난 것이 이 땅의 흙, 즉 지구를 덮고 있는 표토층이다.

점점 더 무성한 식물들이 지표면을 덮으면서 공기 중 산소 농도가 높아지고, 산소를 이용해서 에너지를 만들어 살아가는 생물들이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면서 그 정점에 우리 인간이 존재하게 되었다. 인간의 생명은 태양과 물, 이산화탄소를 이용해서 영양분을 만들어내고 부산물로 산소를 내는 식물에 의존한다. 이 식물은 자기에게 필요한 영양분이 들어있는 흙이 있어야 살 수 있으니, 그런 의미에서 흙은 생명의 터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렇게 건강한 흙은 지구 표면을 몇 ㎝에서, 기껏해야 몇 십 m정도의 두께로 살짝 덮고 있을 뿐이다. 그보다 더 깊이 들어가면 중금속과 방사성 원소가 함유된, 생명을 키워내는 게 아니라 죽일 수 있는 흙이 나오기 시작한다. 어떤 곳에서는 석탄과 석유가 나오는데, 우리에게 손쉬운 에너지를 공급하는 이런 토양 심층부 물질 역시 우리 생명에는 해를 준다. 석탄과 석유가 연소되면 여러 가지 오염물질이 나오는 것은 상식이지만, 석유 부산물인 여러 가지 화학물질 역시 가볍게는 내분비계 교란으로부터 심각하게는 맹독성을 지녔거나 생식세포 이상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점점 밝혀지고 있다. 더 깊이 들어가면 중금속층에, 더 들어가면 방사성 광물질층이 나온다.

흙이 건강해야 사람도 건강하다

‘흙은 생명의 터전’이라고 편안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지표면에서 몇 m이상 땅을 파지 않았으며, 유해물질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일이 없었던 옛날의 일이다. 지금의 인간은 지하철 공사다, 고층 빌딩 공사다 해서 몇 십 m씩은 일상적으로 파헤치고 있다. 이때 땅속 깊이 있던 흙이 노출되어 대기 중에 건조되어서 바람에 불려 가면 중금속과 방사능이 섞인 먼지가 인근에 있는 사람들의 호흡기를 통해 몸으로 들어간다. 또 석유를 파헤쳐서 연료로 쓸 뿐 아니라 그 부산물로 농약, 제초제, 방부제, 페인트 등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을 정도로 무수한 독성 화학물질을 만들어서 쓰고 있다. 이런 화학물질은 그 자체로 상온에서 끊임없이 유해 기체를 발산하지만, 불에 타게 되면 그 독성이 수백, 수천 배로 강화된다. 이런 기체들이 그대로, 혹은 물에 녹아서 흙을 오염시킨다.

식물과 토양 미생물의 작용으로 무수한 미량원소와 치유물질을 담고 있는 흙에서 사람이 지내게 되면 인체의 신진대사가 촉진되고 면역력이 증강하며 해독작용이 원활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여러 가지 유해물질로 오염된 흙에서 생활하게 되면 건강이 나빠지고 죽음을 앞당기게 될 것이다.

아마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이런 사실을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것이다. 대기오염으로 인해 토양까지 오염된다는 사실은 우리가 언론매체를 통해서도 자주 접할 수 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추론을 하게 된다. 오염된 흙이나 물은 건강에 나쁜 것이다. 대기 중에 여러 가지 오염물질이 많아서 지표면의 흙이나 물이 오염되어 있다. 그러니까 땅 속 깊은 곳에서 흙을 파오거나 물을 퍼 올리면 오염을 피할 수 있을 것이며, 우리에게 건강을 보장해줄 것이다.

이런 생각에서 지하 암반수가 상품화되어 팔리고, 어떤 어린이집에서는 놀이터의 모래를 깊은 곳에서 퍼 온 ‘깨끗한’ 것으로 쓴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는 말은 이런 경우에 쓰는 말이다. 깊은 곳의 물이나 흙에는 대기 중에서 스며든 오염물질이 확실히 적을 것이다. 그 대신 땅 속 깊이 존재하는 중금속과 방사능에는 훨씬 더 많이 오염되어 있다. 어느 쪽이 더 나쁜지는 흙의 구성에 따라 다르겠지만, 실험 삼아 소위 지하 암반수와 수돗물을 각각 그릇에 담아 붕어를 넣어보면, 수돗물에서는 붕어가 천천히 죽어가지만, 지하 암반수에서는 훨씬 빨리 죽는 경우도 있다.

개발과 자원획득이라는 명분으로 발전된 기술을 앞세워 점점 더 깊이 땅을 파헤치고 강 과 바다 밑의 땅까지 파헤쳐 들어가는 지금, 점점 더 죽음의 요소가 강한 물질들이 우리의 생활권역을 농도 짙게 뒤덮어가고 있는 지금, 흙이 건강과 생명의 터전이라는 말은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 식물체가 다양하게 존재하며, 농약 등 유해화학물질을 써서 관리하지 않는 건강한 숲을 되살리고, 깊은 땅 속을 함부로 건드리지 않음으로써 흙의 건강을 되찾아야만 흙이 진정한 우리의 생명의 터전이 되어줄 것이다.

이진아환경 건강 관련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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