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08월 2001-08-01   2041

검열의 역사는 표현의 자유를 위한 투쟁의 역사

검열의 역사는 표현의 자유를 위한 투쟁의 역사

기억하는가? 가수 이미자의 ‘동백아가씨’가 "왜색적"이라는, 김민기의 ‘아침이슬’이 "불순하다"는, 그리고 송창식의 ‘고래사냥’이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부를 수 없었던 시절을.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한 편의 희극과도 같은 일들이 우리 사회에서는 ‘보편적인 상식’으로 통하던 시절이 있었다. 돌이켜 보면 헛웃음이 나오지만 당시에는 꽤나 공포스러웠던 국가권력의 검열. 그러나 이것은 결코 지나간 옛 추억(?)이 아니다. 21세기인 지금도 표현의 자유는 늘 감시당하고 통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검열의 역사는 바로 인간 사회의 역사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검열이 지배권력의 가치관을 기준으로 사회적 다양성을 억압함으로써 권력을 유지해나가는 과정이라면, (시대마다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든 지배권력은 사회 구성원들의 사상과 표현을 통제하기 위해 일상적으로 검열을 활용해 왔다.

권력의 일상적 억압장치로써의 검열

특히 한국 사회와 같이 다양성보다는 국가 및 민족주의에 바탕을 둔 획일성이 우선하는 사회에서 검열은 더욱 튼튼한 기반을 가지게 마련이다. 굳이 군사독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아직도 국가보안법과 같이 정치 이념을 바탕으로 한 검열이 ‘국가안보’, ‘공공질서 유지’ 등의 미명 아래 버젓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이 이 땅의 현실이다.(국가보안법 상의 ‘이적 표현물’과 관련된 검열 사례는 헤아릴 수조차 없이 많다).

하지만 민주화라는 시대 변화에 따라 최근에는 정치적 기준보다 도덕적 기준에 의한 검열이 활성화하고 있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풍양속’, ‘공중도덕’ 등의 명분을 내세운 도덕적 검열은 상대적으로 기준이 추상적이고 그만큼 사회적 판단도 불명확하기 때문에 검열당하는 이들의 저항을 쉽게 물리칠 수 있다. 또 삶 전반을 검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강력하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도덕적 검열은 대부분 성 표현물(흔히 ‘음란물’이라고 불리는)을 대상으로 한다.

서구에서 성 표현물에 대한 사회적 검열이 본격화된 것은 ‘포르노그라피’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게 된 19세기이다. 유럽에서는 1500년부터 1800년 사이에 당시의 종교적, 정치적 권위를 비판하기 위한 표현 수단으로 성 표현물이 사용되었다. 인쇄술의 발달과 함께 성 표현물이 귀족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까지 퍼져나가자 교회와 국가가 검열과 규제를 시작했다. 성 표현물에 대한 검열은 문화의 대중화와 민주화에 대한 지배권력의 대응수단으로 나온 것이다.

도덕적 보수주의와 성 표현물 검열

한편 유교 중심의 도덕적 보수주의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서 성 표현물에 대한 공개적인 검열이 시작된 것은 1970년의 ‘마야사건’에서 부터다. 스페인의 화가 고야(1746∼1828)의 명화인 ‘나체의 마야’를 인쇄하여 성냥갑에 붙여 판매한 것이 음화 제조에 해당한다고 하여 기소된 사건이다. 대법원은 이에 대해 "명화집에 실려 있는 그림이라 하더라도…공공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판매 목적으로 사용한 것이라면…음란화시킨 것이다"고 판단하여 음란물로 규정했다.

1975년에는 염재만의 소설 『반노』의 음란성 여부가 사회적 논란이 되었다. 대법원은 표현이 사회 정서를 해칠 정도로 노골적이지 않고 작품 전체의 맥락상 예술성이 인정된다는 이유로 『반노』를 음란물로 인정하지 않았다. ‘반노사건’ 이후 음란성에 대한 한국 사회의 법적 판단은 "사회 일반의 객관적 기준, 건전한 성적 도의감정, 전체적 판단" 등의 기준을 갖기 시작했다.

성 표현이 대중화 및 상업화됨에 따라 1990년대에 들어 성 표현물과 관련된 사건들은 빈번해지기 시작한다. 1994년 마광수의 소설 『즐거운 사라』의 음란성이 인정되었으며, 장정일의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가 1997년 음란물제조판매죄로 기소되어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이외에도 이현세의 『천국의 신화』, 장선우의 『거짓말』, 싸이의 『Psy From Psychoworld』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많은 표현물들이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최근에는 인터넷 공간에 대한 검열도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이미 미술교사인 김인규의 웹아트, 자퇴생 모임인 ‘아이노스쿨’의 홈페이지, 양심적 병역거부 사이트, 동성애자 커뮤니티 등 주로 사회적 소수자들의 공간이 인터넷내용등급제와 청소년 보호를 이유로 폐쇄됐다.

중요한 것은 각각의 법적 판단이 아니라 성 표현물에 대한 한국 사회의 억압적 검열장치와 그 사회적 효과일 것이다. 현재 헌법, 형법을 비롯하여 청소년보호법, 정기간행물법, 전기통신기본법 등에 성 표현에 대한 지나친 규제 장치가 마련돼 있다. 행정기관에 의한 검열 역시 까다로운 정도를 넘어 월권 수준에 가깝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나 음란폭력성조장매체대책시민협의회 등과 같은 단체들도 청소년 보호 등을 내세워 대중문화에 대해 감시의 눈을 번득이고 있다.

검열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기 검열이다!

그러나 지나친 검열은 장기적으로 사상 및 문화의 다양성을 위축시켜 사회 발전과 민주화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법적 행정적 검열에 앞서 개개인이 자기 검열을 하게 함으로써 권력의 통제를 일상화하고 정당화할 것이 확실하다.

검열의 역사는 표현의 자유를 위한 투쟁의 역사이기도 하다. 검열에 대한 욕망이 커질수록 우리는 "왜 표현의 자유가 중요한가?", "왜 표현의 자유가 민주사회의 기본적인 권리인가?"를 끊임없이 되물어야 한다. 표현의 자유란 이미 허락된 표현이 아니라 금지된 것들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이자 권리라는 사실과 함께 말이다.

이원재 문화개혁을위한시민연대 정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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