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08월 2001-08-01   916

표현의 공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폐쇄조치’사이트 그후

아침에 멀쩡하게 잘 있는 걸 확인하고 학교로 혹은 회사로 갔다가 저녁에 돌아왔다. 그런데 멀쩡하던 자기 집 대문이 다른 누군가에 의해 못질을 당해 다시는 들어갈 수 없는 상태가 돼 버렸다고 가정해 보자.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사를 가 버릴 것인가 아니면 담을 넘어가서라도, 벽을 부수고라도 들어가서 자신의 공간을 지키려고 할 것인가.

자유의 공간이라 부르는 인터넷에서도 멀쩡하게 살고 있던 사람들을 별 이유도 없이 길거리로 내몰아 버리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자기 집을 되찾기 위해 싸우고 있는 이들의 이유 있는 저항을 들어봤다.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답답해하는 것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문제일 수 있다. 당당하게 싸우고 있는 그들을 만나보자.

지난 7월 13일, 일간지 사회면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개인 홈페이지에 본인과 부인의 누드사진을 게재, 논란을 일으켰던 충남 서천군 김모 교사가 광주 신세계백화점 주최 신세계미술제 공모전에서 다른 2명과 함께 최종수상자로 선정된 것으로 확인됐다."

기사의 주인공인 김인규 교사는 현재 검찰에 기소되는 등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는 이유로 직위 해제된 상태다. 재판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일이고, 무죄 판결을 받는다 해도 언제 복직이 될지도 모른다.

예술 혹은 외설, 그 터무니없는 이분법

지난 6월 그의 홈페이지는 ‘청소년이 봐서는 안 될 음란사이트인 것 같다’는 신고 이후 단 한 번의 통고도 없이 일방적인 폐쇄조치를 당했다. 임신한 그의 아내와 찍은 누드사진에서 성기가 노출됐다는 것이 문제였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서는 이 공간을 음란물로 분류했고, 법적 강제력을 지니지 않은 삭제 요청을 받은 한국통신은 해명 기회도 주지 않고 폐쇄해 버렸다.

"갑자기 홈페이지가 안 열리는 거예요. 이리저리 한참을 수소문한 끝에야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았어요. 최소한 운영자에게 한 마디 말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사과는커녕 관례대로 한 것일 뿐이라고 대답하던데요."

한 차례 폐쇄 이후 김인규 교사는 폐쇄 조치 재심을 요구했고, ‘청소년유해사이트’임을 표시하면 복구시켜 주겠다는 답을 받았다.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었다. 결국, 문제가 되는 사진을 전부 삭제한 뒤에 사이트는 복구됐다. 재판에서 무죄 선고를 받고, 정당성을 부여받게 되면 100% 복구된 사이트를 유지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면서. 인권운동사랑방을 비롯한 33개 단체에서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표현의 자유 침해와 인터넷 사용의 자율권 침해’로 규정하고 홈페이지 완전 복구를 요구하고 있다.

"어리다구요? 이 사회가 어린 거겠죠!"

"우선은 황당하단 생각밖에 안 들어요. 작년 11월에 문 열고 나서 하루 500명 정도씩 꾸준히 왔다 갔거든요. 일 터진 뒤에는 1000명쯤 들어와요. 2만 명 넘는 사람들이 다녀간 이 곳이 폐쇄될 거라곤 생각도 못 했어요."

중학교에 들어가지 않고 홈스쿨을 선택한 김진혁 군. 학교 밖에 있는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기도 했고, 자기는 학교가 싫어 떠났지만 후배들에게는 좀 더 나은 상황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욕심에서 아이노스쿨을 열었다. 그러나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아이노스쿨이 학교를 지나치게 비판하고, 잘 다니고 있는 학생들의 자퇴를 선동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고 엘림넷에 폐쇄할 것을 요청했다. 김진혁 군 역시 단 한 번의 통고도 받지 못한 채 갑자기 열리지 않는 홈페이지 앞에서 망연자실할 밖에.

"제가 어리다는 게 폐쇄하고 무슨 상관이에요? 나이 어린 사람은 홈페이지 운영을 하면 안 된다는 게 말이 되나요?"

사이트 운영자가 아직 가치관이 확립되지 않은 미성년자라는 것도 폐쇄이유라는데 진혁 군은 흥분했다. 아이들을 옭아매는 교육을 하는 학교도 문제지만, 학교를 떠난 아이들은 문제아들이라고 생각하는 편견이 더 문제다.

"자퇴생들이 모이는 곳이 아이노스쿨만은 아니거든요. 다른 데는 괜찮은데 왜 이것만 문제냐고 그랬더니, 신고가 들어와서 그렇대요. 말이 안 되잖아요. 기준도 갖고 있지 않으면서 누가 문제인 거 같다, 그러기만 해도 폐쇄해 버리고."

학교에 대해 지나치게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폐쇄됐다는 것에도 동의할 수 없단다. 다른 청소년사이트가 연예인 이야기 같은 걸로 도배질되어 있는 것에 비하면 훨씬 도덕적이고 건강한 사이트라 확신한다고.

그들의 아름다운 저항

누가 봐도 명백히 문제가 있는 비도덕적인 공간에 대한 검열이나 조정은 자신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단다. 검열 방식이 문제고, 폐쇄 조치를 취하면서 합리적이지 않은 태도를 보이는 것이 문제지 검열 자체는 필요악이라고 본다고. 그와 얘기를 나누는 동안 정작 가치관 확립이 안 된 것은 진혁 군이 아니라 이 사회가 아닐까 싶었다. "끝까지 싸워야죠! 저는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언제인가부터 우리들 사이에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어요. 이반 커뮤니티가 사라진다는 얘기요. 원래 소문이 그렇잖아요. 뭐뭐 카더라, 그랬다던데…, 이런 소문이 퍼지자 불안해하기 시작했고 조사해 봐야겠다고 생각한 거예요."

동성애자 모임 ‘끼리끼리’의 우이현주 씨는 인터넷에서 이반 커뮤니티가 받고 있는 검열과 폐쇄 조치 등에 대응하기 위해 피해사례 접수를 받기 시작했다. 사례를 수집한다는 공문을 보내고 얼마 뒤 ‘다음(daum)’의 카페 두 곳에서 연락이 왔다. ‘동성애자 소띠 모임’과 81년생 모임인 ’81클럽’이었다. 음란 카페라는 신고가 들어왔다며 카페는 폐쇄되고 말았다. 세이클럽의 사이트 하나도 폐쇄를 당했단다. 미러링 사이트도 갖지 못한 이들은 게시판에 오른 갖가지 정보며, 그들이 나눈 모든 이야기를 몽땅 잃어버리고 말았다.

"다음이나 세이클럽에 어떻게 된 일이냐고 메일을 수차례 보냈는데도 단 한 통의 답변도 없어요. 게다가 폐쇄된 카페의 운영진들도 연락이 안 되구요. 그들이 익명성 뒤에 숨으려는 건 너무 당연해요."

도대체 뭐가 음란하다고 생각된 걸까. 세상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모든 것을 비정상, 이상(異常)으로만 바라보는 사회에 살던 그들은 그렇게 온라인에서도 밀려나고 말았다.

"아르바이트생 3명이 10만8000건을 심사하고 있더라구요. 거기서 도대체 무슨 제대로 된 판단이 가능하겠어요?"

인터넷에도 분명히 없어져야 할 유해 사이트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절차가 문제고 소통 과정이 문제란다. 우이현주 씨는 다른 사이트의 폐쇄와 달리 동성애자 사이트의 폐쇄는 생존권이 걸린 문제라고 말한다.

"우리는 오프라인에서도 소수로 탄압받는 사람들이에요. 온라인에서조차 자신이 어떤 사람이라고 말할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다는 건, 죽으란 소리나 마찬가지거든요."

그는 동성애자들의 온라인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다. 누구도 자기가 지닌 생각 때문에 차별받거나 혹은 처벌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인권의 기본이다. 이를 지키려는 그들의 노력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참고로 진보넷(www.jinbo.net)으로 접속하면 김인규 교사(http:// home.megapass.co.kr)와 아이노스쿨(http://www.inoschool.net)의 미러링 사이트(mirroring site, 복제 사이트)를 볼 수 있다.

김은주 본지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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