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08월 2001-08-01   942

복고풍 대중가요 전쟁 같은 현실에 대한 역설

올 상반기 가요계의 화두는 단연 ‘복고’라 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엽기가수라는 신조어를 낳았던 싸이(Psy)가 미디어의 호들갑스러운 주목을 받았다. 지금은 박진영의 신보(新譜)를 둘러싼 공방전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그에 비하면 복고 바람은 오히려 차분해 보인다. 차분한 정도가 아니라 ‘복고’가 하나의 뚜렷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실감하지 못할 정도라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겉으로 보았을 때에만 그렇다. 그 속을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복고의 뿌리가 예상보다 깊을 뿐더러 나타나는 방식도 다양하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복고 열풍이 허약해빠진 음반 시장을 움직이는 가장 안전한 방식이라는 것도.

조성모, 핑클 등 너나 할 것 없는 복고 열풍

그렇지만 가요계의 복고 바람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시작됐다고 분명하게 말하기는 쉽지 않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복고’풍이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킬 만큼 강렬한 화제를 동반하지 못하고 어느 새 하나의 흐름으로 자연스럽게 굳어졌다는 점을 우선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친구>에서 <신라의 달밤>으로 이어지는 영화계의 복고풍이 갖가지 흥행 기록을 갈아치우면서 엄청난 돌풍으로 바뀌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가요계의 그것은 미풍이 아니라 무풍에 가까워 보인다. 또 하나의 이유로는 복고풍이 여러 갈래로 펼쳐지고 있다는 점을 들어야 할 것 같다. 무엇이 복고이고, 어디까지가 복고인지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에 혁신과 실험은 미덕, 복고는 퇴행으로 보는 시선이 더해지면서 가요계의 복고 바람은 ‘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모호한 실체로 남아 있는 듯하다.

청년문화의 복원, 성인음악의 부활이라는 이름으로 지속되었던(그리고 지속되고 있는) 포크의 뿌리 찾기와 계보 세우기는 ‘복고’의 명백한 징후였다. 지상파 방송까지 가담했던 포크 뿌리찾기 캠페인은 잊혀져 가던 과거의 맹장들을 다시 무대에 불러세우고, ‘명예의 전당’에 진입할 자격을 주었다. 작년 말과 올초에 집중되었던 헌정 앨범과 공연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김광석, 김현식, 들국화가 명예의 전당 주인이 되었고, 그들은 곧 ‘전설’, ‘향수’와 동의어로 받아들여졌다.

여기에만 그쳤다면 뿌리를 되찾고, 거장을 발굴하는 의식은 대중음악의 ‘역사 바로 세우기‘쯤으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복고 바람은 예기치 않은 곳에서 증폭되었다. 개작(리메이크)곡으로만 채운 조성모의 음반이 유례없는 성공을 거두면서 가수들이 새 음반을 낼 때마다 개작곡을 몇 곡씩 집어넣는 것이 관행처럼 굳어졌다. 1970, 80년대 곡으로 채운 핑클의 ‘Melodies & Memories’로 개작 열풍은 이제 정점에 다다른 듯 보인다.

편집음반은 ‘추억의 골든 히트곡’의 변종

헌정 앨범이나, 개작 앨범이 과거의 노래를 지금의 소리와 질감으로 되살리고 있다면, 이미연의 ‘연가’, 이영애의 ‘애수’로 이어지는 편집 음반은 ‘추억의 골든 히트곡‘의 변종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것 역시 복고풍에 포함시켜도 크게 무리가 없을 듯하다.

이렇듯 가요계의 복고 바람은 시작도, 방향도, 동기도 다르다. 당연히 이를 바라보는 시각도 다르고 평가도 다르다. 핑클의 음반에 실린 개작곡과 존경하는 선배에게 바치는 헌정 앨범에 실린 개작곡은 분명 다른 무게를 지닌다.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는 복고의 실체에 온전히 접근하기가 녹록치 않다는 뜻이다. 지금은 이질적 현상 사이를 관통하는 흐름, 그리고 그 속에 든 의도를 읽어내는 것이 최선으로 보인다. 왜 지금 복고인가?

복고가 현실을 부정하는 방식의 하나라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말은 부정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그렇다면 부정하려는 현실의 정체는 무엇인가. 가장 먼저 나올 수 있는 대답은 가요계의 빈곤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관행이 되어버린 개작곡 끼워넣기는 주류 가요계의 위기, 즉 더 이상 새로운 것을 찾아낼 수 없는 음반창작의 위기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경제적인’ 문제도 끼어든다. 개작곡은 끊임없이 불거지는 표절 시비와 음반 시장의 불황을 에돌아가는 고육지책이며 가요계에 대한 부정(비록 그들의 의도는 아니더라도)의 의미가 담겨 있다.

‘현실에 대한 부정’은 과거 맹장에 대한 존경을 담은 헌정 앨범에서도 나타난다. 헌정 앨범에는 비교적 다양한 음악이 공존했던 시절에 대한 향수가 어쩔 수 없이 반영되어 있다. 이것은 하나의 음악, 혹은 한 명의 가수만이 독주하면서 다른 취향의 음악이 자랄 싹을 애초에 잘라버리는 현실에 대한 환멸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시선을 가요계 밖으로 돌려보면 부정하려는 현실의 모습은 더 폭넓게, 결핍과 환멸의 그늘은 더 짙게 나타난다. 복고풍이 경제 불황의 산물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에 속한다. 구제금융사태에 접어든 이후, 대중문화 각 분야에서 복고풍이 눈에 띄게 나타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좋았던 과거로 퇴행함으로써 현실의 고단함을 위로받으려 한다는 진부한 이야기를 덧붙이고 싶지는 않다. 복고는 ‘위로’이전에 절박한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경제불황의 산물이자 전쟁 같은 현실에 대한 절박함

복고의 미덕은 무엇보다 ‘익숙함’에 대한 배려라는 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과거의 대상을 재현한다는 것은 그것을 둘러싸고 있던 감성, 사연까지 불러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황 이후에 닥친 우리의 현실은 기억해야 할 과거보다 변화무쌍한 생존의 방식에 적응하기에도 벅찰 만큼 숨가쁘게 전개되고 있다.

전쟁 같은 현실은 취향을 개발할 여유도, 의욕도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혹 남아 있을지 모르는 마지막 한 방울의 문화적 욕구를 짜내려고 해도 익숙함에 기대는 것 말고는 다른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 바로 그 점 때문에 가요계의 복고 바람은 현실의 부정을 넘어선 절박함의 표현이다. 안온한 향수로 포장된 생존게임. 가요계의 복고 바람은 그래서 하나의 거대한 역설이라 할 수 있다.

박애경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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