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08월 2001-08-01   689

언제나 시대정신을 노래하고파

가수 강산에

“시민의 힘이 커지면 그 사회는 평화를 찾아가는 것 같아요. 유럽 선진국을 봐도 그렇잖아요? 자기 권리를 찾는 일이나 타인의 인권을 존중하는 것은 평범한 시민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죠. 시민단체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우리 사회도 많은 시민단체의 노력으로 이런 궤도에 막 오른 것 같아요.”

금융노조 파업 1주년을 맞아 열린 ‘금융노동자 어울림 한마당’의 예행 연습을 끝내고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문 강산에 씨는 시민사회에 대한 생각을 이렇게 꺼내놓는다.

1997년 말 4집 앨범인 ‘연어’를 마지막으로 훌쩍 무대를 떠나 미국의 사막을 헤매다 올초 돌아온 그. 요즘 들어 시민사회단체가 주최하는 공연장에 자주 등장한다. 공연의 주제는 더없이 묵직하고 진지하지만 그는 장소가 어디든, 관객이 누구든, 어김없이 시원스런 노랫가락으로 사람들의 긴장된 마음을 풀어준다.

시민사회가 공익성과 융통성 모두 갖췄으면

“시민단체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일반 시민들의 의식이 깨어나야 해요. 그걸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예술입니다. 사람들의 의식을 자극하고 생각의 여지를 열어주잖아요. 아티스트(그는 ‘가수’라는 말보다 이 말을 즐겨 쓴다)가 해야 할 일이 바로 이런 시대정신이 불타오르도록 끊임없이 문제제기하는 것 아닐까요?”

시대정신. 그가 지금껏 불렀던 노래를 더듬어보면 이 말의 속뜻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1992년 그 어떤 민중가요 못지않은 ‘…라구요’라는 노래 한 편으로 분단세대의 심금을 울렸다. ‘넌 할 수 있어’는 총학생회 선거 때면 대학 교정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나오는 노래였다. 그뿐인가? 그는 ‘돈’이라는 노래로 한국 자본주의의 천민성을 비웃기도 하고 ‘태극기’를 불러 대한민국을 삐딱하게 곯려주기도 했다. 구제금융사태로 모두가 힘겨운 고개를 넘어갈 때는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제목이 긴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한 곡으로 사람들의 가슴에 희망의 물꼬를 터주기도 했다.

“한국 사회는 사람관계가 복잡해요. 세대마다 경험도 다르고요. 전쟁을 겪은 세대와 그렇지 못한 세대만 해도 다르잖아요? 게다가 서로가 돈, 명예, 지위 등을 따지며 껍데기 같은 겉모습에 집착하면서 살아가죠. 이런 걸 뛰어넘어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한 적이 있어요. 제 결론요? 그건 노래죠.”

사실 그는 지금 한국 사회가 돌아가는 모습에 대해선 잘 모른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한국을 떠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요즘 사회보다 자연에 더 마음을 빼앗긴 상태다. 2년 반 동안 미국의 드넓은 사막에서 겪은 고요와 적막, 그리고 자연에 대한 경외감이 그의 사슴 같은 눈에 고스란히 감돌고 있다. 선배가 남미 아마존에서 가지고 온 선물이라며 까만 반지를 보여주는 얼굴엔 맑은 웃음기가 돈다. 만약 가수가 아니라 ‘시민운동가 강산에’라면 어떤 분야에서 일해보고 싶냐고 묻자 별로 생각해 보지는 않았지만 굳이 고른다면 “환경”이라며 겸연쩍은 표정으로 대답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자연과 환경을 파괴하기만 했잖아요. 요즘은 자연을 살리면서 개발하는 방향으로 바뀌는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아예 자연과 일치되고 싶어요.”

그가 느끼는 한국 사회의 변화는 엄청난 정도란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닫힌 사회 같았지만 인터넷 등을 통해 정보가 공유되면서 무척 급하게 열린 사회로 달려가는 것 같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앞으로도 자극받아야 할 부분이 많다는 생각이다. 음반작업이나 한일 교류 공연 등으로 일본에 자주 발걸음을 했던 강산에 씨는 한국과 일본의 시민사회를 이렇게 비교했다.

“일본의 시민사회는 우리보다 한결 성숙해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사회생활에서 공공성을 무척 강조하고 실제로 지키고 있어요. 시민들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세심하게 배려하고 행동하죠. 반면 숨쉴 틈조차 없어 보여 갑갑해요. 그런데 우리 사회는 정형화된 사회 시스템도 없고 공공성도 떨어지지만 사람들 사이에 융통성이라는 게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두 사회의 장점들이 만났으면 해요. 공익을 지켜나가면서도 융통성을 가지고 있다면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공연의 취지 살릴 수 있는 무대 부탁

건강한 사회의 조건으로 공익성과 융통성을 꼽았지만 사실 강산에 씨는 ‘자유’의 가치를 그 무엇보다 소중히 여긴다. 그의 노래를 꾸준히 들어온 이라면 음반에서 단 한 번도 자유라는 낱말이나 이를 주제로 한 노래가 빠진 적이 없음을 눈치챘을 것이다. 오죽하면 5집의 ‘쾌지나칭칭’에선 “태어나다 자유롭게, 깨어나다 자유롭게”라고 외치겠는가.

이제 그는 ‘자유롭게’ 우리 사회의 통념 깨기에 나서려고 한다. 일명 ‘불량아 강산에’. 우리 사회가 여전히 보수적이고 경직된 시각을 갖고 이른바 ‘건전한’ 쪽으로만 몰아가는 것이 맘에 들지 않는단다. 숨길 수 없는 ‘삐딱이’(3집 제목) 기질이 되살아나는 것일까. 돈에 목숨 걸고 쥐꼬리만한 권력 앞에 설설 기며 “착하게 살자” 만이 유일한 사회철학인 이 땅이 탐탁치 않아서란다. 올 하반기에 나올 앨범은 이런 것들을 꼬집는 ‘불량끼’가 가득할 것이라고 귀띔한다.

“마음껏 노래할 수 있도록 최선의 배려를 해달라!” 시민사회단체가 주최하는 공연에 대한 그의 주문사항이다. 공연의 목적과 의도가 좋더라도 거기에 초대되는 가수를 수단화해서는 안 된다는 염려가 배어 있었다.

“시민들에게 공연의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선 먼저 가수들이 열정을 다 바쳐 노래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춰주었으면 좋겠어요. 외국의 경우 무대에 대한 투자를 많이 해서 에이즈 퇴치나 기아구호 등을 위한 공연에 세계적 가수가 와서 기꺼이 최선을 다하잖아요? 관객들도 공연을 즐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공연의 취지에 동감하고 후원하게 되고요. 우리도 이제 그런 공연을 할 수 있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

무더운 여름날, 그의 노래처럼 “예럴랄라” 흥얼거리며 더위를 식혀보는 건 어떨까. 그러면 곧 다시 떨쳐 일어서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저마다의 길을 힘차게 갈 수 있지 않을까.

최경석(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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