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08월 2001-08-01   848

너도 반말해봐, 되게 재밌다!

나는 상담소 사무실에서 ‘원사’라 불린다. ‘원하는 것을 찾는 사람’의 준말이기도 하고, ‘원래 사악한’의 준말이기도 하다. 후자는 ‘착한 여자’ 콤플렉스에 대한 저항의 뜻을 담고 있는데 남들은 나에게 후자의 의미가 더 어울린다고 한다.

상담소에는 스물여섯 살부터 마흔아홉 살까지의 사람들 8명이 일하고 있고 모두 별칭을 가지고 있다. 이름 대신 별칭을 서로 부르며, 말은 존대하든지 안 하든지 편한 대로 한다.

따지고 보면, 우리 사회에 여성 차별, 가부장제만큼이나 뿌리깊은 것이 ‘나이 차별’, 즉 ‘연령주의’다. 예전에 한 사회단체에서 활동을 할 때는 어리다는 것이 정말 죄라는 생각까지 한 적이 있다. 어리기 때문에 하고 싶은 말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고, 찬물도 순서가 있다는 말에 때로는 난감했다. 아마 지금 내가 여성운동을 하고 있지 않다면, 청소녀·청소년들과 함께 연령주의 철폐 운동을 벌이고 있지 않았을까.

내가 매우 따랐던 한 교수는 학교에서 동료 교수들과 다툴 때 부득이하게 영어를 쓴 적이 있다고 했다. 그는 좀 파격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인데 어떤 문제를 놓고 나이 든 교수들과 논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럴 때는 우리말로 싸우는 것이 힘들다는 것이다. 국어는 너무 위계적이어서 나이가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 사이에 공평한 논쟁이 안 된다는 말이다. 반말도 서슴지 않는 상대에게 “그러니까, 선생님 제가 말씀드리는 까닭은…” 이렇게 얘기하자니 속이 터지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평등한 영어를 쓰면서 싸웠다고 했다.

이른바 ‘운동권’ 사회에서도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것이 바로 선후배 간의 관계다. 선후배 관계는 서로를 알고 관계를 맺게 하는 끈이며 대단히 괜찮은 그 어떤 것으로 포장되어 있다. 그러나 ‘선배’라는 말 한마디가 덮어버리면 안 될 많은 것들을 덮어버리고 감정적으로 만들어 올바른 판단을 못하게 한다. 호칭을 비롯하여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상대와 나의 관계를 설정하며 권력관계를 보여준다.

우리 상담소 식구들은 많은 연령 차이에도 불구하고 매우 평등한 관계를 맺고 활동하는 편이다. 이것은 호칭에서 시작한 ‘나이주의’를 넘어서려는 우리들의 의식적인 행동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누군가 한 명에게 소외감을 줄 수 있는 단순노동(우편발송, 복사 등)을 몰아 떠넘기지 않는다. 각자 맡은 영역이 나뉘어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우리 안에서 민주적으로 조정한다.

팩스를 보내거나 복사를 하는 일은 스스로 해결한다.

처음에 우리가 별칭을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 40대 이상인 세 사람은 곧바로 이에 동참하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이로 따지면 딸 뻘의 동료가 “김말숙 선생님”에서 갑자기 “에스프!” 라고 당신을 부르기 시작한다면 낯설고 거북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젊은 활동가 몇몇이 시작한 별칭 부르기는 어느새 상담소 전체에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다. 이것은 의사소통 문화의 변화도 함께 이뤄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다. 별칭 부르기는 단순히 이름을 다르게 부르는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여기에는 정치적 의미가 숨어 있다.

“너도 해봐! 내가 경험한 것처럼, 그동안 네가 얼마나 나이와 선배의 권력을 가지고 너보다 나이 어린, 혹은 후배에게 부당한 권력을 휘둘렀는지 깨닫게 될 거야.”

원사 한국여성민우회 가족과성담소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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