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08월 2001-08-01   522

언론자유는 꿈이런가

작금의 세무조사에 정치적 의도가 있는가 없는가. 모름지기 정권이 하는 일에 의도가 없을 리 없다. 그것도 대개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려는 쪽으로 작용한다고 보면 그리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가령 YS의 손꼽는 업적으로 칭송받는 하나회 숙청, 금융실명제 실시 등도 권력기반 강화라는 의도가 개입돼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개혁이라는 큰 명분에서 볼 때 옳은 방향이기에 지지한다. 하나회를 거세한 그 자리에 자기 지역출신으로 군 고위직 인사를 도배해 맛이 갔지만, 그래도 무식하고 용감하게 칼을 휘두르는 쾌도난마의 숙청은 만성적 쿠데타의 우려에서 벗어나게 했다. 또 나중에 형해화되기는 했지만 금융실명제의 실시는 우리 경제체질의 건전화를 이루는 계기가 되었음에는 틀림없다.

이런 것을 볼 때 정치적 의도가 있고 없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이 얼마나 국민을 위한 개혁이고 철저하고 일관되게 진행되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사실 세상에 안 그런 것이 없다. 링컨의 노예해방도 흑인 노예들을 북군으로 가담하게 함으로써 남북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가 작용했다는 분석이 있지 않은가. 그러나 역사적 조류에서 보면 인권의 큰 진전을 가져온 노예해방의 의의는 엄연히 살아 있다. 링컨이 보여온 기조가 있었고, 그 연장선에서 이러한 조치가 나왔기 때문이다.

현 정권의 세무조사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분명 언론 길들이기의 측면이 있다. 이런 점에서 현 정권 인사들이 한사코 의도가 없다고 손사래를 젓는 것은 당당하지 못하다. 오히려 “정치적 의도가 있다. 그러나 얼마나 개혁을 위한 것인지 정당한 법집행인지 지켜보고 판단해 달라”고 적극적으로 치고 나와야 할 일이다. 사실 현 정권이 초기에 이른바 ‘위스키 또는 달러’ 식으로 언론을 회유하는 방식을 동원하지 않고 세무조사나 신문고시 등을 당당하게 추진했다면 상황은 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일찍이 수구신문의 지역감정 조장이나 색깔론 등은 모든 개혁의 걸림돌이었다. 이들의 물적 기반이 왜곡된 시장구조라는 것 또한 누차 지적되어 온 바였다. 신문개혁을 요구하는 시민단체가 결성된 지도 이미 3년이 지났다. 언론자유의 본질적인 면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정부로서 당연히 해야 할 개혁적 조치였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세무조사는 실기한 점이 없지 않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소수정권, 지역정권으로 출발해 사사건건 발목을 잡혔던 정권이 초기부터 신문을 상대로 정공법으로 나오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참다 참다 못해 또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어 칼을 빼든 셈이다.

문제는 이렇게 가는 세무조사의 이후 국면이 어떻게 돼야 할 것인지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것을 좀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상황은 이미 돌아오지 못할 강을 지난 듯하다. 그렇다면 사법처리가 불가피할 것이고 필경 보수신문은 악에 받친 채 복수의 칼을 갈 것이다. 그것으로 끝인가. 생산적인 승화의 방안은 없는가. 국회에 이미 제출된 정간법 개정안 청원, 그리고 계류중인 언론발전위원회 구성 안건들이 구체화되는 것이 유력한 방법이 될 텐데 정쟁으로 비화되는 이 소용돌이에서 당최 기약이 없다.

국민은 안중에 없는 신문권력의 완강한 기득권 지키기, 그리고 이들에 편승하려는 야당의 반사이익 추구, 철학이나 소신없이 정치적 타산 위주로 이 국면을 대하는 여권 일각의 인사들, 족벌 사주를 위해 전선에 동원되는 일선 기자들….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에 이어 사주로부터의 독립으로 나아가야 하건만, 지금 벌어지는 상황들은 안타깝고 안타깝다. 진정한 언론자유는 정녕 꿈인가.

정길화 MBC 시사교양국 차장 ·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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