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6년 12월 2016-11-30   2209

[통인] 세상에 ‘조그만 사건’은  없습니다 – 박준영 재심 전문 변호사

세상에 ‘조그만 사건’은 없습니다

박준영 재심 전문 변호사

 

글. 박유안 사진. 박영록

 

참여사회 2016년 12월호 (통권 241호)

 

중학교 때는 수재였다. 하지만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뒤 고등학교 시절은 가출을 일삼으며 방황을 거듭했고, 겨우 진학한 대학 공부도 뒷전이었다. 군대에서 만난 선임을 따라 신림동 고시촌에 들어가 고시공부에 매달렸는데, 사법고시 2차 시험을 앞두고 아버지도 돌아가셨다. 지금은 ‘뒤집기의 명수’, ‘공익변호사’, ‘재심 전문 변호사’로 활약 중인 이 남자. 그런데, 억울한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무료 변론에 매달리다 보니 자신의 생활이 어려워지고 말았다. 하지만 우리에겐 시민의 힘이 있다. “파산 상태에 빠진 이 변호사를 시민변호사로 만듭시다”라는 스토리펀딩이 마련되었고, 지난 11월 11일, ‘박근혜 게이트’가 다른 모든 뉴스를 집어삼키는 분위기 속에서도, 목표액의 5배가 넘는 5억 6천만 원의 펀딩 성과를 기록했다. 

변호사 박준영. 수원시 원천동, 다른 변호사 사무실도 많이 입주한 한 건물에 박 변호사의 사무실이 있다. 즐비한 간판들을 올려다보며 ‘여기 건물주가 박 변호사 월세는 안 올린다 그랬지…’ 하는 생각에 잠긴다. 한때는 여러 직원이 있었으나 이제는 묵은 짐만 어수선한 그의 사무실에 들러 사법피해의 최일선에서 약자들의 억울함을 달래고 있는 박준영 변호사를 만났다. 그를 시민변호사로 만들고 있는 시민 스토리펀딩의 힘이 앞으로 어떤 양상으로 펼쳐질지 사뭇 궁금했다. 

 

 

아직 40대인데, 인생의 곡절이 참 많았던 것 같다?

난 운이 좋은 사람이다. 개인사에 있어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 게 힘들긴 했지만, 사법시험도 간당간당 붙었고, 변호사로서 ‘사건 운’도 아주 좋았다. 남들이 공부 안 하던 2002년 월드컵 기간에 사법고시 2차 시험에 합격했다. 

‘사건 운’ 말씀하시니, 재심 사건들 얘기를 좀 해야겠다.

재심 사건이란 게 ‘다시 재판’한다는 뜻인데, 함부로 다시 재판하게 해서는 한정된 사법자원을 합리적으로 배분할 수가 없다. 국민 예산으로 뽑아 운용하는 판검사를 무작정 늘릴 수는 없지 않은가. 사법자원의 합리적 배분, 또 법적 안정성을 두고 볼 때 판결의 확정력은 의미가 크다. 쉽게 다시 다투지 못하게 하는 게 꼭 정의에 반한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과거에 반인권적 수사가 다반사였고, 근대 사법제도의 수용도 얼마 되지 않았다. 인간이 하는 수사이고 재판이니 오류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이런 우리의 사정을 감안하여 재심 사유를 완화해야 한다는 게 제 입장이다. 

 

변호사 개업 후 국선변호사로 생계를 유지하며, ‘제대로 된 사건 하나’를 만날 때를 기다렸다고 들었다. 

생활의 필요에 대한 압박은 변호사뿐만 아니라 모든 직업이 다 똑같다. 우리 사회는 인맥으로 통한다. 그런데 대학을 나오지도 않았고, 공부를 잘해 판검사를 한 것도 아닌 조그만 섬 출신의 나한테 사건 수임은 정말 어려웠다. 얼굴 좀 잘 생긴 것 말고는 큰 이점이 없었다. (웃음) 신뢰받는 얼굴, 아닌가? (본인도 웃음) 행정법 공부하며 전문영역을 갖추려고도 노력해봤지만, 실무를 안 해봐서 한계가 있더라. 주변에서 사무장 통해 사건 수임 하는 거 보면서 유혹도 많이 느꼈다. 그걸 통해 자기 영역을 확대하는 거라며 좋게 좋게 합리화하더라. 그런데 그 과정에서 리베이트 주는 건 엄연한 불법이다. 그런 불법이 관행으로 굳어져 있는데, 내겐 그게 부담이었다. “난 큰 사회적 인물이 될 거야”란 생각으로 그런 사무장의 유혹을 떨쳐냈다. 또 “쉽게 털고 가서는 배우는 게 없다, 어렵더라도 혼자 헤쳐나가자”는 생각이었다. 또 국선변호사는 해보고 싶었다. 전관이 아닌 이상 형사사건 맡아볼 일이 거의 없다. 사건 경험을 쌓고 싶었다. 

 

그런 말씀 들으니, 국선이 참 좋은 제도 같다. 변호사는 돈벌이 하며 경험도 쌓고, 피고인은 도움도 받고.

그렇지 않다. 국선 제도도 많이 바뀌어야 한다. “경험 쌓는다”는 말이 피고인에게는 아주 기분 나쁜 말이 될 수도 있다. 자기 인생이 걸린 사건인데, 경험이라니? 지금은 변호사들이 ‘돌려먹기’로 하고 있는데, 가령 문제점이 있을 때 선배나 동료들의 조언으로 보완해가는 ‘공공변호청’ 같은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가진 것 없는 시골 섬 출신인데다 사시 공부할 때 “없는 사람 도울 수 있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했던 나인데도, 정작 국선 변호할 땐 어려운 사람 돕는다는 생각보다는 경험이나 돈벌이 생각이 더 컸다. 

 

변호사만 되면 떵떵거리고 살게 되는 걸로 알았는데, 그게 아닌가 보다.

그런 시대는 지났음을 이제 인정해야 한다. 경쟁하며 살아야 한다. 공인중개사들의 일을 변호사도 할 수 있게 된 판결에 대해 대한변협이 환영 성명을 내기도 했는데, 아무리 권리 분석을 잘 하고, 법 논리를 구성할 수 있다 해도 할 게 있고 안 할 게 있다. 대부분이 서민인 중개사들의 밥그릇에 손을 대는 그런 ‘지저분한 짓’은 해선 안 된다. 그렇게 따지면 법무사가 소액사건 소송 대리하면 왜 안 되는가? 행정사가 행정심판 대리권 갖는 건? 그런 건 반대하면서 다른 쪽은 건드리는 건 모순이다.

 

마침 오늘 펀딩이 마무리되는 날이다. 그에 맞춰 파산콘서트도 시작한다고 들었다. 큰 매듭을 짓는 날이니, 감회가 남다르겠다.

그렇다. 일단 시원섭섭하다. 펀딩 글이 올라가 있다 보니 날마다 신경이 무지 쓰였는데 끝난다니 시원한 거고, 마침 최순실 국면을 맞아 다시 탄력 받는 측면이 있었는데 끝내야 하는 건 또 좀 섭섭하다. 그간 서로 눈 마주치는 소규모 만남으로 뒤풀이도 곁들여 시민들을 만났는데, 이젠 ‘파산콘서트’라고 해서 대규모로 만나야 해서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다. 

 

펀딩 목표액 1억을 가뿐히 넘기고 5억까지 넘길 땐, 날마다 각오가 달라지셨을 것 같다.

행복하지만 무거운 책임감도 느낀다. 금액도 금액이지만 시민들의 큰 기대와 응원을 보며 어떻게 부응할지 생각이 많아졌다. 내가 어떤 위치에 서서, 어떤 변호사 활동을 펼쳐야 할지 부담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제 시민들의 성원과 기대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으니 시민들이 박 변호사님 코를 꿴 거 아닌가? 

 

앞으론 영락없이 ‘시민변호사’로 활약하셔야 할 거 같은데?

그렇다. 지금도 피곤한데 더 피곤해질 거 같다. (웃음) 애가 셋이고, 한창 놀아줘야 할 때인데, 그걸 못하니 힘들다. 무엇보다 내가 자식들과 행복해야 한다고 늘 생각했는데…. 재심이란 게 쉽게 성과가 나는 일도 아니고, 리스크도 굉장히 큰 일이다. 세밀하게 들여다보며 오랜 시간을 쏟아 부어야 한다. 흉악범, 성폭력범에 대한 변호도 필요하다는 논리에 대해서도 후원자들과 얘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미처 꺼내지 못했다. 

 

 

참여사회 2016년 12월호 (통권 241호)참여사회 2016년 12월호 (통권 241호)

박준영 변호사가 재심 변론을 한 삼례 3인조(좌)와 다음 스토리펀딩 <하나도 거룩하지 않은 파산 변호사>를 함께하는 박상규 기자와 법원을 나오는 모습(우).
 

 

주로 형사사건 피해자 구제에 매달리셨는데, 이런 분야에서 특히 반인권이 자행되고 정의가 무너지고 있는 이유가 있나?

첫째는 ‘관계’다. 대표적 전관 로비 의혹인 홍만표(검사장 출신 변호인) 사건에서도 보이듯 법조계에 팽배한 관계의 비리가 있는 죄를 감추고 정의에 반하는 결과를 만들어낸다. 이런 법조 비리의 피해자는 바로 관계의 피해자인 셈이다. 

둘째는 사람을 똑같이 보지 않는다는 거다. 수사과정에서 사회적 약자들은 함부로 취급당하고 모욕 받고 맞는 등 반인권적 수사에 시달린다. 그 끝에 허위자백을 하는 걸 보면 보호받지 못하고 도움받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형법의 정의는 무색하다. 만인이 법 앞에 평등하려면, 뭔가 부족한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그 부족 부분을 채워주는 배려를 해야만 한다. 

셋째는 제도의 형식적 운용 탓이다. 사회적 약자들이 반인권적 수사를 피할 수 있도록 마련했다는 ‘진술거부권’을 정작 행사하는 이들은 누군가? 재벌이나 정치인들 아닌가! 수사과정에서 허위자백 했던 걸 재판에서 번복한다? 판사가 “조서 보니 불리한 진술 안 해도 된다는 진술거부권을 고지 받았는데, 왜 그런 진술을 했나?”라고 다그칠 수 있다. 진술거부권이 부메랑이 되어 날아와 사회적 약자들을 치는 것이다. 2006년 말 ‘영장실질심사에 국선변호인 면담’이 의무화되었는데, 10분 면담으로 어떤 실질적 조력을 받을 수 있단 말인가? 이 경우도 진술 번복하면 “변호인 조력 받았는데 왜 자백했나?”라고 오히려 부메랑이 되어 날아온다. 

 

제도를 만든다고 저절로 운영되는 게 절대 아니다. ‘신뢰관계자 동석 제도’도 그렇고, ‘국민참여재판’, ‘소년참여재판’, 법원행정처가 장려하는 ‘통고처분’도 그렇고, 사회적 약자의 변론권 보장을 위해 ‘재심 청구 시 국선변호인 선임’을 의무화하자는 의견도 그렇다. 다른 나라에서 좋은 건 다 베껴 왔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운영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현실과 동떨어진 채 형식적인 보고서만 남발되는 상황이 안타깝다. 형사사건만 수천 건 했기 때문에 이른바 ‘블루칼라 범죄’는 내가 꽉 잡고 있다. (웃음) 

 

현장에서 워낙 잔뼈가 굵으신 터라, 그런 현실적이지 않은 의견들을 계속 제도 속에 담기만 하는, 이른바 전문가들의 행태에 대해 아주 비판적인 것 같다.

현장을 알아야 인권을 제대로 얘기할 수 있다. 재심은 책에 나오지 않는 상황들의 연속이다. 내 머릿속에서 옳다고 느낀 게 그대로 운용되는 경우도 많다. 현실을 굳이 이론에 맞추려고 할 것 없다. 사례 경험을 많이 하다 보니 책에 담긴 이론들을 창의적으로, 발전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이 길러진 게 아닐까.

 

철저히 현장 중심의 변론 활동을 해온 게 어쩌면 시민변호사로 거듭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도 같다. 사법현실 개선에 대한 의지는 이미 충만한 거 같은데?

내 힘이 커지면 발언력이 높아지지 않겠나? 재심 사건이 무죄로 판명되고 진범이 잡히고 하면서 사회적으로 널리 공론화가 되면, 내 경험에 비추어 벼려낸 제안들에도 힘이 실리기를 기대한다. 난 개인적 이익을 위해 제도의 개선을 원하는 게 아니다. 공인중개사 얘기는 이미 해드렸고, 국선변호 관할권을 대한변협이 가져간다는 엉뚱한 소리에 대해서도 “그럼 나눠먹기 된다”고 정면 비판한다. 내가 속한 단체의 이익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게 아니다. 판사나 검사의 입장을 신경 써야 하는 일반 변호사들과도 난 다르다. 이제 영리 목적으로 사건 수임을 안 하니까 말이다. 이제 오로지 시민들에게 뭐가 좋은 제도인지만을 생각하고 얘기하면 된다. 그렇게 시민들의 발언력이 커지고, 참여연대 같은 단체들이 힘을 보태면 진짜 좋은 제도 하나 만들 수 있지 않겠나.

 

참여사회 2016년 12월호 (통권 241호)

 

사법제도 개선과 관련한 시민의 힘, 어떻게 발휘될 수 있을 것으로 보나?

사법이든 행정이든 모든 제도는 밑바닥의 현실을 잘 반영한 공론화가 우선 되어야 한다. 사법과 관련한 교육도 꼭 필요하고 가능하다고 본다. 무기수 김신혜 씨 사건 스토리펀딩 하면서 적법절차, 알리바이 입증 책임, 무죄추정의 원칙, 위법한 압수수색, 증거능력, 재심의 필요성 등에 대해 기사와 댓글을 통해 시민들과 계속 대화하고 많은 의견을 나누었다. 그래서 처음엔 “마땅히 유죄를 받아야 할 사건 같은데 왜 재심을 해야 하느냐?”는 의견이 주였지만, 결국엔 그런 교육의 과정을 통해 “당신 말이 옳았소. 설사 다시 유죄로 확정되더라도, 절차가 실체를 왜곡시킬 수 있었으니 재심은 꼭 필요해 보인다”는 의견이 모였다. 그런 법 교육이 벌어진 것처럼, 여러 각각의 분야에서 아래로부터 알아나가는 교육의 과정이 곧 건강한 사회의 과정 아니겠나.

 

시민단체와 함께하는 사회교육의 모범 같은 걸 구상하는 건가?

현행 시민단체의 활동도, 아래로부터 구체적 사례들에 기반해 여론과 합의를 형성해 국가기관에 전달하는 역할에 있어서는 모자란 게 많다. 참여연대가 많은 사법감시를 해왔지만, 정치적인 이슈나 이념, 가치에 매몰된 점은 아쉽다. <이슈에 너무 집중해서는, 소외받고 상처받은 사람들을 자꾸 궁지로 내모는 결과를 낳는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 사건을 ‘작은 사건’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그들이 겪는 고통과 억울함에 있어 작고 큰 것이 어찌 나뉘겠나>. 난 이미 이슈가 된 사건, 페이스북에서 태그가 잔뜩 걸린 사건들에는 아무리 참여하라 그래도 참여 안 한다. 작은 사건들을 파고들어 공론화해 큰 사건으로 만들어야 뭐가 바뀌어도 바뀐다. 재심사건들이 딱 그렇다. 

 

스토리펀딩 이후를 설계하신다고 했는데, ‘공익변론재단’ 같은 기구 얘기도 들린다.

쉽지는 않다. 어디에도 기댈 데가 없는 형사사법 피해자 구제를 위해 후원금이나 변호사들도 모아야 하지만, 문제는 이런 기구에 국가기관으로서의 공권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조사를 위해 사람들을 부르고 공문서를 열람하는 권한 말이다. 과거사진상조사위까지는 아니더라도 국가인권위 산하의 조그만 그룹으로라도 공권적 기관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고위공직자 비리를 다루는 공수처 얘기 하지 않나. 일반 서민들의 세계에는 그보다 사법비리들이 더 많다. 사법, 수사, 재판에 대해서는 아무런 견제가 없는 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이젠 시스템으로 보완해야 한다.

 

 

자, 이제 백전노장의 풍모가 느껴지시는가? 그렇다. 박준영 변호사는 외로운 독불장군이다. 하지만, 법조계를 향해, 전문가들을 향해, 심지어 시민단체를 향해 거침없이 내뱉는 이 이단아의 독설은 여느 자기배설 위주의 독설과 달리 힘없는 약자들을 향한 애정으로 따뜻하다. “목소리만 크고 ‘보여주기’에만 능숙하고 처절하게 싸워 이겨보고자 하는 의지를 점점 잃어가는 듯한” 우리의 시민운동 진영도 이 베테랑의 일침에 깊이 귀 기울여 마땅하겠다. 소외된 약자들도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평등하게 대접받는 진정한 사법정의의 그날을 하루라도 앞당기려면 말이다. 

 


글. 박유안
기웃기웃 번역가. ‘알트’ 출판사에서 일하는 그는 “까칠해도 친절하게”가 삶의 모토이며, “쟌 모리스를 번역한 작가”로 기억되길 바란다. 밤엔 주로 땅고 추며 논다. 맘 놓고 춤 출 좋은 세상을 염원한다.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