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0년 06월 2010-06-01   1410

아주 특별한 만남-탁현민 회원


“대중문화란,
 현실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상상력”



탁현민 회원과의 아주 특별한 만남


이경휴 수필가, 참여연대 자원활동가

한낮이면 여름이다. 봄을 건너뛴 듯한 날씨가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한다. 거리는 반라 차림의 젊은이들로부터 봄옷을 단정하게 입은 사람들까지 뒤섞여 물결친다. 가로수들 또한 신록의 시절을 끝내고 녹음으로 향해 가고, 새순 위에 눈이 내린 듯 흰 꽃을 얹고 있는 산야의 이팝나무도 도심의 새로운 손님이다. 반갑고 설렌다, 담장을 타고 넘어오는 보랏빛 수수꽃다리 향내까지도.

굳이 싯구절을 인용치 않더라도 애순을 밀어올리기 위해, 꽃을 피우기 위해 엄혹했던 겨울을 어찌 모르리오만 그래도 눈앞에 펼쳐진 세상은 아름답다. 하물며 청계천도, 서울광장도, 하천변의 산책로와, 인도로 밀고 들어온 실개천까지도. 하지만 시각이 한없이 즐거운 사이 정신은 아득히 몽롱해진다.

눈부신 햇발과 산들거리는 바람이 기분 좋게 만나던 날 오후, 공연기획자가 아닌 ‘공익기획자’를 만났다. 저절로 ‘사람의 격’에 대한 인터뷰가 될 것 같아 가슴이 훈훈했다.
잔뜩 기대하면 들어선 홍대 근처의 갤러리 찻집. 대낮의 햇살과 찻길이 그대로 배경이 된 그곳에서 그는 먼저 인터뷰가 가능한 시간부터 제시했다. 갑자기 마음이 조급했지만 그의 이력을 보면 그럴만하다.

탁현민(37세) 회원.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외래교수, 공연기획자, (주)P당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대중문화 비평가…. 페이지를 넘길 정도의 이력 중에 듬직 듬직한 것만 몇 개 골랐다. 하지만 어떤 직함보다도 자랑스럽고 친근감이 드는 건 참여연대의 전직 간사였다.

‘돌청’(청바지)에 ‘P’자가 새겨진 감청 반팔 티셔츠 끝자락에 타투가 살짝 드러났다. 검은 뿔테 안경 너머로 눈빛은 형형했고 팔목을 감싸고 있는 큼직한 시계는 세대를 가름하기 어려웠지만 목소리만은 강단에 선 교수님이다. 강의에 그대로 몰입되는 분위기다. 일단 긴장부터 풀자 싶어 지난 10일 홍대 부근의 브이 홀에서 공연했던 북 콘서트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상상력과 저항성으로 미래는 진보한다

‘탁현민의 한 권으로 읽는 문화 다큐- 『상상력에 권력을』’을 출간하면서 지인들과 함께 한 토크 콘서트 형식의 출판기념회였다. 음악의 자존심, 윤도현, 김C, 강산에를 비롯하여 고재열(독설닷컴, 시사IN기자) 김영규(다음기획 대표)님과 어우러진 대중문화 제대로 즐기기의 난장이었다.

“프로모션 차원의 일종의 마케팅 행사였죠. 책을 산 독자들을 위해 음악 듣고 재미있는 얘기 하고 놀다 갔으면 좋겠다 싶어서였죠. 기존의 출판기념회 형식을 달리 한 겁니다”

다시 되물었다. 어떤 독자층을 겨냥했으며 굳이 저자라는 직함까지 달아야 할 만큼 욕심이 많은가를. 독자층이라는 말에 ‘저항’을 느꼈는지 강의 수준으로 열강을 쏟았다.

“독자층? 글쎄요,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내 의사를 직접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공연의 주체는 내가 아니고 무대에 서는 사람들입니다. 공연이란 공간은 무대나 가수를 통해 비유나 은유로 표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때로는 내가 직설로 이야기해야 할 필요를 느끼기에 책을 내는 거죠.”

이어 대중문화에 대한 변론으로 강의는 계속되면서 요점 정리를 해갔다.

“어떤 층을 겨냥한 게 아니고…. 대중문화에서 대중을 물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수의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건 군중이죠. 군중과 대중을 혼돈하고 있습니다. 대중이란 철저하게 자신의 미래를 결정지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프랑스 대혁명 이후 투표권을 가지게 된 후부터 근대적 대중이 탄생합니다. 그전에는 노예였죠. 그럼 오늘날 대중문화에서 대중은 누구인가? 그들은 미디어나 자본에 구속되지 않고 그들 스스로 대중문화를 즐기고 향유할 수 있는 사람, 굳이 그들을 위해서 쓴 책 혹은 그들이라고 인지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도발적인 질문입니다. 대중과 대중이 아닌 군중이 공존하는 시대입니다.”

1분 질문에 10분의 답변이 명강으로 이어지는 느낌이었다. 결론적으로 그는 대중문화는 시대의 저항성을 담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밥 딜런Bob Dylan, 존 레논John Lennon의 저항적 노랫말을 인용하며 예술가는 자신의 정치적 신념이나 사회적 의견을 예술에 담아내어야 하는 책무가 있다고 항변했다. 존 레논의 이매진Imagine 가사처럼 국가가 종교가 교육이 없다면 사람들은 평화롭게 살 수 있다는 상상력과 저항성이 미래를 진보시키고 그것이 대중문화가 존재하는 이유라고.




『상상력에 권력을』탁현민, 더난출판, 2010




미디어와 싸우는 대중문화

그럼 우리나라의 경우에 그 저항성이 발현되었던 시기는 언제였으며, 현 정부가 문화를 어떤 관점으로 보고 다루고 있는지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한국의 저항운동을 70-80 년대로 뭉뚱그릴 수 있습니다. 70년 초 김민기를 시작으로 정태춘·박은옥, 노래를 찾는 사람들… 이들의 민중음악이 주류시장에서 일정부분 상업성을 획득했던 시기가 있었죠. 저항적 문화가 만들어지고 대중들에게 전파되었던 시기입니다. 그러나 90년 대 초, 학생운동이 와해되면서 대중음악은 철저히 무너졌고 미디어로부터 완벽하게 흡수되어 버립니다. 70-80년대가 정치세력, 정권과의 투쟁이었다면 그 후부터 지금까지는 미디어와의 싸움입니다.”

그는 책에서 이런 현상을 ‘길 잃은 한국의 대중문화’라는 부분에서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대중과 문화는 소외되고 ‘연예’산업과 ‘미디어’ 스타만 존재하는 우리의 대중문화 현주소를. 이어 현 정부의 문화정책에 대한 의견을 차분하게 피력했다.

“현 정부의 탄압은 이보다 더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 공연에 나오는 가수들은 별로 그런 부분에 연연해하지 않습니다. 일정 부분 단련 되었다고 할까요. 그 이전 노무현 정부 때도 윤도현 밴드 같은 경우는 이라크 파병 반대 1인시위까지 했지요. 그들은 친노진영의 가수가 아니라 사회적·정치적 이슈에서는 늘 자신의 목소리를 내어왔습니다. 저 역시 그렇고요. 지금이라도 사회적 함의를 담은 공연이라면 누구든 상관없이 공연을 할 수 있답니다. 비록 이명박 대통령을 위한 공연이라도….”

우스개 삼아 ‘좌파 성골’의 엘리트 코스를 거쳤다는 자기소개서를 내놓았다. 성공회대-참여연대-오마이 뉴스-다음기획으로. 좌중은 웃음꽃이 피어났다. 내친 김에 지난 5월 13일, 청계광장에서 있었던 ‘조전혁 콘서트’로 웃음 꽃다발이 던져졌다. 콘서트의 공식명칭은 ‘대한민국 교육살리기 희망나눔 콘서트’였다. 조전혁 의원은 전교조 교사 명단 공개로 스스로 전교조의 저격수가 되었지만, 공연기획의도를 몰랐던 출연진이 공연시작 전에 출연거부를 하는 바람에 완전히 저격을 당하고 말았다.

“제가 공연을 빨리 끝내는 사람이지만 26분 콘서트는 도저히 못 따라가겠더라고요. 간만에 크게 웃었죠. 그런 공연은 왜 저에게 안 맡기는지…. 사회적 메시지가 있는 공연을 준비할 때는 어떤 패러다임이 필요한지 조전혁 의원이 제대로 보여준 의미 있는 공연이었죠.”

악동 기질이 다분한 발언이라 또 한바탕 모두 웃고.




비무장지대에서 전 세계인의 축제인 음악페스티벌을 꿈꾸다

앞서 말한 어떤 패러다임이 필요한 사회적 공연에 대하여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공연이란 절대로 선점, 선동하는 형식이 아닙니다. 풀어내는 방법일 뿐이죠. 쉽게 얘기해서 공연을 통해 세력을 규합하거나 의사를 전달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공연은 충분히 형성되어있는 세력, 또는 불만과 감정을 풍화시키는 형식입니다. 이걸 가지고 무엇을 성취하겠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공연을 통해 목적을 이루려고 하니, 사람들도 모이지 않고 가수도 오지 않습니다. 조전혁 콘서트가 그런 경우였죠. 대중이나 가수들의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 상태에서 ‘연예인 빨’로 밀고 나가려면 그렇게 되는 겁니다.”

조전혁 콘서트를 통해 훌륭한 학습효과를 얻은 셈이다. 더불어 시민사회단체가 주최하는 공연들에 대한 안타까움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더 철저하게 깨어지고 부서지고, 피부에 와 닿는 아픔,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솟아나야 사람들이 모이게 된다”고. 알면 자연스럽게 모이게 되지, 모여서 알게 해서는 안 된다는 공연의 형식에 대하여 거듭 강조했다. 시민단체가 늘 고민하는 과제에 밑줄을 긋는 지적이었다.

“시민사회단체와 대중예술인은 친밀하게 지내야 합니다. 그렇다고 그들을 활용하라는 게 아니고 그들이 나서는 건 가장 마지막 단계라야 합니다.”

“그럼 다 깨어지고 망가지도록 보고만 있으라고요?”

마음이 급해 이야기를 끊었다. 빙긋 웃으면서도 말투는 비장했다.

“나는 대중예술인이 선방을 날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러지 못 하죠.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예술가의 역할이지만 미래를 그리기에는 시대가 너무 어둡습니다. 70년대 존 레논이 노래한 이매진의 가사가 지금도 유효하고 앞으로도 유효할 것처럼 예술가의 저항성과 상상력이 미래를 끌어가는 힘이 될 것입니다. 대중예술인과 사회변혁운동은 그렇게 만나야 합니다.”
인상 깊었던 공연과 올해의 공연 계획에 대하여 여쭸다.



“작년에 있었던 노무현 대통령 추모 공연 <다시 바람이 분다>였죠. 추모 공연을 앞두고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추모의 의미만을 담아야할지 연대와 공존도 함께 모색해야 할지….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 내린 결론은 헌정공연으로 올리기로 했죠. 최상의 구성과 최고의 시스템으로 가장 아름다운 공연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뒤 노무현재단 창립공연이 있었고. 올해도 역시 노무현 대통령 서거 1주기 추모콘서트를 진행 중입니다. 그리고 5월 29일 봉은사에서 열리는 4대강 콘서트 <강의 노래를 들어라>를 마지막으로 끝을 냅니다. 더 이상 공연 안 하려고 합니다.”

지치고 힘든 표정이기보다는 미묘하고 복잡한 감정이 얽혀있는 듯했다. 꿈을 펼치듯 이야기를 이어갔다.

“장기간의 계획을 세우기는 현실이 너무 어둡지만 그래도 우드스탁 페스티벌 같은 걸 꿈꾸죠. 사회적 의제를 설정해 놓고 3박4일 간 음악페스티벌을 벌이는 겁니다. 한국 땅에서 중요한 의제는 뭐니뭐니 해도 통일 아닙니까. 장소는 판문점이나 비무장지대로 하고. 아마 전 세계인의 축제가 되겠죠.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가 해체 되는 순간이니까요.”

이미 손에 손을 맞잡고 꿈꾸듯 함께 공연장으로 따라 가는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참여연대에 대한 자유발언을 부탁했다.

“참여연대는 저에게 첫 직장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는 곳입니다. 공연기획도 그곳에서 처음 시작했고, 아마 그 공연이 성공하지 않았다면 나는 이 길에 서있지 않을 걸요. 일을 하는 방법, 처리하는 방식, 사람을 대하는 마음가짐 등등. 그곳에서 참으로 많은 걸 배웠습니다. 지금은 여러 상황이 어려워져서 안타깝습니다. 2008년 촛불 때는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잡혀갈 때 아무런 도움을 못 줘서 가슴 아팠고, 후원금 내는 일 밖에 못하는 게 더욱 미안합니다. 설령 자체 내의 어려움이 있더라도 참여연대 내에서는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건강함이 있다고 믿고 확신합니다.”

가슴 따뜻한 고백이다. 사랑의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함께 걸어가는 것이라는 글을 떠올리며 비무장지대 공연장을 향해 함께 걸어간다.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