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0년 06월 2010-06-01   1185

김용민이 만난 사람-곽노현 서울시교육감 후보


“한 명도 포기해선 안되는 게 공교육”



김용민 시사평론가   
사진 김영광 사진가


지난 5월 14일.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후보 8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교육감 후보자들은 정당에 소속되지 않기 때문에 투표지에 표기될 순서를 추첨했다. 특정 정당을 연상시키는 번호면 유리하다고 판단했을까? 자기가 원하는 번호를 얻은 후보는 마치 선거에 승리한 듯 환호했다. “이건 한판승이다”라는 말까지 했다.

이 상황을 보도한 SBS뉴스는 민주진보진영 단일후보로 선정돼 7번을 선택한 곽노현 후보의 한마디를 옮겼다.

“번호 뽑기가 중요하다면 선거가 아니라 로또죠. 대단히 잘못된 거죠.”

지난 1월 참여연대를 포함한 200여 개 시민사회·교육단체는 ‘서울시 민주진보 교육감 범시민 추대위원회(추대위)’를 꾸렸다. 추대위는 ‘민주진보교육감 단일화’ 취지에 동의하는 후보들의 신청을 받은 후 단일후보 선정을 위한 경선을 결정했다. 3개월 여 간의 단일화 과정을 거쳐 4월 14일 서울시 민주진보 교육감 단일후보 경선에서 곽노현 후보가 단일후보로 선출됐다.

서울 교육감은 인생 역전하는 자리가 돼선 안 된다. 하지만 나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복마전伏魔殿으로 만들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막강한 권한 때문이다. 살펴볼까?

△ 55,000명에 이르는 교직원에 대한 인사 △ 연간 6조1000억 원 대의 예산 집행 △ 서울시교육청 본청과 11개 교육청 조직에 관한 지휘 △ 7개의 직속기관, 4개의 평생학습관, 17개의 도서관을 지도 감독 △ 고교신입생 배정 방식 결정, 외국어고등학교 추가 설치 및 사립학교의 공립학교 전환 여부 △ 0교시 수업 실시여부, 교사의 촌지 그리고 체벌에 대한 지침 그리고 징계 결정 △ 학원의 영업시간 제한 그리고 학원비 책정에 규정을 두고 관리 감독하는 것이다.

실로 대단한 자리이다. 청렴하려고 마음먹어도 한눈 판 사이, 비리의 사슬에 휘말릴 수 있다. 인사, 교육장, 과장 승진 청탁으로 총 1억 4600만 원을 받았다 구속된 공정택 직전 교육감. 이 사람이 보여준 ‘비참한 말로末路’가 상징적이다.



“‘고학력 팔푼이’ 만드는 나쁜 체제가 문제”

그렇다. 철학이다. 자기가 원하는 기호 번호를 얻었다고 한판승 운운하는 후보에겐 없을 법한 것이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후보를 5월 12일 오후 6시 서울 종로구 평동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만약 곽노현 후보가 당선된다면, 다수 서울 유권자들의 표심에 이명박 교육정책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가 담겼다고 봐야할 것이다. 현 서울 교육에 대한 곽노현 후보의 현실인식 그리고 진단을 살펴봤다.

“한마디로 10% 특권층을 위한 경쟁 만능 교육이다. 자율형 사립고 또 국제중을 신설해서 대물림 특권 교육을 확대하려 하고 있다. 일제고사를 실시해 전국 어린이를 한 줄로 세움으로써 점수 경쟁을 심화 시키고 있다. 그 결과 사교육과 사교육비가 확장되고 신장됐다. 아이들은 죽어가고 있다. 과장이 아니다. 학업부담에 따른 자살률이 갈수록 높아가고 있지 않은가. 아이만 고통 받는 게 아니다. 학부모도 잡는다. 그래놓고 결과는 학력 꼴찌, 청렴도 꼴찌다. 한국 공교육의 표준을 만들어야 할 서울 교육청의 현주소이다.”

여기서 주목되는 표현 하나가 있다. 서울 교육감 자리를 ‘한국 공교육의 표준을 만드는 자리’라고 한 것이다. 남들은 ‘교육 대통령’이라고 할 때 말이다. ‘공교육의 표준’은 무엇일까.

“기회균등이다. 공교육은 단 한 명도 포기해선 안 된다. 설령 가정과 부모가 포기했어도 공교육은 이 학생을 포기해선 안 된다. 그러려면 총체적 돌봄의 학교가 돼야한다.”

이 답에 이런 질문을 던졌다. “그러다 강남에서 호응 얻겠는가”라고. 따져보자. 2010년 서울대 합격자 고교 유형별 분석을 보면 서울지역 일반계 고등학교 가운데 강남 서초 송파 등 이른바 강남권 출신 학생의 서울대 진학률이 41%에 육박했다. 상식적으로 봐도, 기회균등 정책은 기회의 프리미엄을 쥔 쪽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고, 그렇다면 강남의 양해가 전제돼야 하는 부분이다. ‘출발선’이 꽤 앞서 있는 강남 교육특구로 애써 건너가 밤낮 없이 자녀를 뒷바라지하는 이들 부모가 ‘기회균등’ 원칙에 동의할까. 이에 곽노현 후보는 “강남 학부모가 유죄라고 생각하는가”라고 반문을 던진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강남 학부모에겐 잘못 없다. 문제는 나쁜 체제이다. 그 분들은 자식을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해야 했다. 하지만 이는 80% 실패할 수밖에 없고, 나머지 성공하는 20%도 굉장한 고통과 희생을 치러야 하는 구조이다. 누구라도 강남 학부모의 경제력과 정보력을 갖고 있으면 비슷하게 따라갈 것이다. 핵심은 이런 구조를 그분들도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엄마들에게 자신의 인생이 있는가. 애들 데리고 여기저기 학원 다니는 것, 허리띠 졸라매고, 돈 퍼붓는 현실. 이 분들을 비판한다고 풀 수 있는 문제일까?”

곽노현 후보의 서울 교육혁명은 강남 학부모의 대오각성 혹은 큰 틀의 양보를 요구하지 않는다. 교육의 모든 구조를 바꾸는 것에서 해법을 찾기에 그렇다. 이런 판단은 ‘인성 뒷전’ ‘경쟁 우선’의 굴레 속에서 자기 자녀를 ‘고학력 팔푼이’로 만드는 현재 교육 구조를 모든 부모가 반대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곽노현표 혁명의 요체는 자기 주도적 즉 자발적, 주체적 교육을 말한다.

“다 동조할 것이다. 창의성과 인간성도 빛나는 아이들, 이 아이들이 적성에 맞게 진로를 찾아 자기 길을 가는 것을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풀이 경쟁에서 이겨야 명문대에 가고, 이로써 학벌사회에서 인정받고, 나아가 불안한 경제구조에서 행복할 것이라는 평범한 도식을 모든 학부모들이 안타까워할 것이다. 그래서, 아이 뿐 아니라 엄마도 위하는 행복한 교육혁명, 엄마의 삶을 되돌려 드리는 인생혁명,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한다.”



공교육 살리기, 자기주도적, 자발적 교육으로

인성교육을 강화한다고 하면, 인성 증진을 위한 사설 학원이 생길 게 분명하다. 서울 교육의 최대 딜레마, ‘사교육’. 여태 아무도 해결하지 못한 이 문제의 획기적인 해법이 있는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사교육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 공교육에서 미진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학원에서 단기 교육을 받는 것. 이건 권장할 일이다. 문제가 되는 사교육은 선행학습이다. 남보다 앞서서 배워나가는 것이다. 이게 요즘 사교육의 주류를 이룬다. 이건 이중二重으로 나쁘다. 자기 수준으로는 해결 못하는 부분을 접할 때 흥미가 반감되고, 제대로 배울 나이가 되면 어디서 본 듯해 또 흥미가 반감된다. 지금 사교육이란 게 무엇인가. 엄마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타성적인 것 아닌가. 이게 문제다.”

곽노현 후보에게 던진 여러 질문 가운데 사교육 문제의 해법에 관한 답변이 가장 길었다.

“흥미로운 법칙, 두 가지를 발견했다. 사교육비 시장의 규모가 일제고사식 평가의 비중과 비례한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학교의 학생선발권을 인정하는 범위에 비례해 사교육 시장이 증가한다는 부분이고. 이명박 정부 들어 자사고가 서울에만 26개, 국제중이 두 개가 생겼다. 그러자 초등학교에까지 사교육비 붐이 일었다. 해법은 간단하다. 일제고사는 교과, 수업, 문제풀이의 획일화를 낳았다. 기계적 찍기 교육이 만연한다. 이러면 공교육이 사교육을 절대 못 이긴다. 사교육을 없애는 길은 사교육이 가르칠 수 없는 또 사교육의 도움을 받아 점수 올릴 수 없는 길을 뚫어야 한다. 창의식 교육이 답이다. 그러려면 협동식, 토론식 교육으로 가야한다.”

교육 혁명은 곧 평가 혁명을 수반한다. 그렇다면, 협동식, 토론식 교육은 무엇으로 어떻게 평가하는 것일까.

“지금 점수 평가는 일률적이다. 1점 단위, 0.5점 단위까지 본다. 참 잔인하다. 대학 수학능력평가에서 1점 구간에 1,000명 정도가 있다. 한 두 점만 틀려도 수천 등이 왔다 갔다 한다. 학생을 우월감과 열등감으로 양극화시키는 이런 구조, 폭력이다. 또 야만이다. 게다가 그걸 전국별, 지역별, 학교별 석차로 매겨 공개한다. 결과가 아닌 과정을 보는, 점수가 아닌 서술에 의한, 상대가 아닌 절대 평가여야 한다. 이건 결국 창의성 교육을 하자는 것이다. 이러면 어디 감히 사교육이 끼어들 여지가 있겠나.”

문제는 교육현장이다. 최고 세 자리 숫자만 넣으면 끝날 평가를, 종이 한 장 분량의 서술형 평가문으로 만들어 내라고 할 경우, 교사들이 좋아할까. 대충 또는 건성 하는 식의 또 다른 타성을 부르지 않을까.

“솔직히 선생님의 분발이 필요하다. 그러나 어려운 일이 아니다. 교사 모두에게는 초심이 있기 때문이다. 노자의 ‘도덕경’에 있는 말이다. ‘위대한 스승이 지나간 자리에서 학생들은 말한다. 우리가 해냈다고.’ 교사의 타성은 학생의 미진함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학생이 창의 발전적으로 성장한다면 그때도 교사가 매너리즘의 늪에 있겠나. 게다가 이건 공교육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전문적으로 교육학을 공부한 교사가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전문성을 발현할 수 있는 장이다. 사교육 강사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 하는 것을 도맡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사교육은 사교육, 공교육은 공교육의 고유 영역을 지키게 된다. 바람직하지 않나. 지금 같은 공장식 교육에서는 상상도 못할 그림이다.”



“창백한 지식인? 내 안에 근육 있다”

걱정이 들었다.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이 반추됐기 때문이다. 단지 야당 성향의 교육감이 추진한다는 이유로, 일당이 독점해버린 국가, 자치단체, 도의회가, 무상급식 등 복지 정책을 덮어놓고 반대하고, ‘색깔론’까지 제기하고 있으니 말이다. 현 집권세력과 철학이 판이한 곽노현 후보의 교육정책에 과연 암초가 없을까?

“창백한 지식인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내 안에는 근육이 있다. 무슨 이야기냐. 그동안 나는 최강자의 권한 남용과 부패에 맞서 싸워왔다. 그리고 최약자의 권익 신장을 위해 싸워왔다. 최강자를 법의 지배 아래에 묶어두고, 최약자를 법의 보호 아래 두게 했다. 그 두 가지 다 일정한 근육이 없이는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바탕 정치적 쟁투도 불사하겠다는 이야기일까.

“하지만 정부와의 마찰은 최소화하는 게 옳다고 본다. 왜냐하면 학생, 학부모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교육에 있어서는 기본적으로 학생의 이익을 최우선에 두고, 그 학생의 이익을 최우선하는 학부모의 이익을 차우선하면, 정부와의 마찰의 여지를 줄일 수 있다고 본다. 그러려면 타협과 조정이 필요하다. 나는, 의견이 갈리는 상황에서 타협과 조정을 거쳐 합의에 이른 것이라면 무조건 선으로 본다. 나는 그런 면에서 매우 적합하다. 원칙은 있지만 접근 방식이 매우 유연하기 때문이다.”

이렇게도 물어봤다. “만약 한나라당 후보인 오세훈 씨가 서울시장이 되고, 곽노현 후보가 교육감이 됐다고 치자. 곽노현 후보의 무상급식 공약에 대해 오세훈 시장이 반대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그 문제에 대한 해법은 간단하다. 한나라당도 제한적 무상급식을 한다는 것 아닌가. 따지고 보니 수혜 대상이 80%이다. 나는 그걸 내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20%는 교육청이 예산을 절감 또 절감해서 감당하도록 할 것이다. 나는 한나라당이 상류층으로 부르는 그 20%도 국민이라고 생각한다. 남 보다 세금을 더 많이 내면서도 이들에게 밥값까지 따로 내라고 할 수 있나. 이건 복지에 대한 몰이해이다. 빈곤층만 수혜의 대상이 된다는 인식은 그릇됐다. 이건 복지의 의미를 왜곡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곽노현 후보가 강조한 표현이 있다. 맑은 물, 깨끗한 공기, 수려한 도시 외관 같이 모두가 누리는 혜택, 바로 ‘보편적 복지’이다.

“밥 뿐 아니다. 학습 준비물도 그래야 한다. 학교는 보편적 복지의 대표적 장이 돼야 한다. 희년이 돼야 한다.”

희년禧年, Jubilee이란 말도 나왔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규정이다.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난 50년마다 돌아오는 해인데, 이때 땅과 집 회복, 자유 선포, 노예 해방, 부채 면제의 혜택을 온 이스라엘 사람이 누리는 것이다. 학교의 희년은, 가정 형편의 격차를 학교에서만은 전혀 느끼지 않게 하자는 논리이다. 학교에서만은 모두가 최상의 존재로 예우 받도록 하자는 이야기이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임대 아파트와 자가 아파트가 혼재돼 있다. 그런데 이 동네 유일한 초등학교에서는 임대와 자가 어린이들끼리 따로 놀고 따로 밥 먹는다고 한다. 천진한 이 아이들 사이에 선을 누가 그었을까. 어른들이다. 어른들은 교육 정책을 통해 선 그린 정도가 아니라 이제는 벽을 쌓기까지 한다. 그리고 영구히 서로 소통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이게 바로 양극화의 시발점 아니겠나. 장담컨대, 이 벽을 부수는 허무는 자가 이번 교육감 선거에서 ‘한판승’을 거둘 것이다. 말종적 교육에 넌더리를 내는 시민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6월 2일, 서울시민의 선택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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