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0년 06월 2010-06-01   1317

나라살림 흥망사-로또로 정치인 뽑은 제노바공화국


로또로 정치인 뽑은 제노바공화국

정창수 좋은예산센터 부소장

로마시대 노예들의 고통을 잊게 해준 복권

로마시대의 이야기이다. 어떤 총독에게 노예 5천 명이 있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노예들이다보니 날이 갈수록 노동이 저하되어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 기발한 방법을 생각해냈다. 당시 노예 5천 명에게는 하루 일당으로 빵을 하나씩 주고 있었는데 총독은 그중 5분의 1씩을 빼앗았다. 그러면 천 명분의 빵이 되는데 그중 절반을 추첨을 통해 한 명에게 모두 준 후 노예 신분에서 해방시켜주고, 나머지 절반은 자신이 가진 것이다.

한마디로 새로운 착취의 방법을 고안해낸 것으로서 노예들은 식량을 더 빼앗기게 된 것이다. 그런데 노예들은 하루 먹기에도 그나마 모자란 식량을 빼앗겨야 하는데도 매일 이벤트에 열광하며 현실의 고통을 잊었다고 한다. 천 명분의 빵과 해방은 인생을 바꿀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에 현실의 고통을 잠시라도 잊게 된 것이다. 이것이 복권의 기원설 중 하나다.

복권에 대한 최초의 정확한 기록은 아우구스투스(기원전 63~기원후 14) 황제 때 시작된다. 황제가 자신이 여는 축하연회장 입장 티켓에 번호를 표시해 나눠주고 추첨을 통해 노예, 유람선, 저택 등을 주었던 것이다. 물론 이렇게 모아진 돈을 사회복지에 쓰기 위함이었다.

성서에도 복권의 이야기가 수십 차례 나온다. 민수기(26:55~56)에 “하느님이 모세에게 이스라엘 인구를 조사하여 추첨으로 땅을 나누어주라고 하셨다”라고 쓰여 있다. 하느님까지도 복권을 권장한 셈이 되는 것이다. 심지어 폭군으로 알려진 네로도 일종의 이벤트로 복권을 나누어주며 체제를 유지하고 재정을 확충하는 데 도움을 받았다.



바람둥이의 대명사 카사노바가 프랑스 복권 설계자

현재와 같은 근대복권의 효시는 1530년경 피렌체에서 등장한 ‘로또’다. 제노바공화국에서는 90명의 정치가 중에서 5명의 상원의원을 선출한 것에 착안해서 로또 5/90 게임이 복권으로 등장했다 한다. 치열한 정쟁보다는 공평하게 게임처럼 정치인을 뽑는 시스템을 선택한 것이다. 물론 그 90명은 모두 의원들이었다. 로또Lotto라는 단어는 ‘운명Lot’에서 유래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우리가 흔히 바람둥이의 대명사로 알고 있는 카사노바가 사실은 프랑스에서 복권을 처음으로 시작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카사노바는 루이 15세에게 파리 시의 재정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복권을 제안했고 책임자가 되어 2백만 프랑의 매출을 올렸다. 그 중 60만 프랑을 파리 시에 수익금으로 주었다. 공공정책의 하나의 모델을 보여준 것이다. 이때가 카사노바의 최대 절정기였다. 물론 당연히 이후에 여자 문제로 몰락했지만 말이다. 아마도 베네치아 출신이었던 카사노바가 이탈리아에서 유행하는 복권의 시스템을 알고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복권은 미국 식민지 개척의 자금으로도 쓰였다. 제임스타운을 건설했던 버지니아 사는 제임스 1세에게 건설자금을 위한 로또 발행을 승인받았고 당시 이 회사 수입의 절반은 복권에서 발생했다고 한다. 미국은 복권으로 모은 돈으로 시작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우리의 계契 중에 복권과 비슷한 것이 있기는 했다. ‘낙찰계’도 그렇고, 작백계나 산간계도 비슷한 경우다. 산통계는 통이나 상자 속에 계원의 이름을 써넣은 알을 넣은 후 그 통을 돌려 나오는 알에 따라 당첨을 결정하는 것이다. 작백계는 일정한 번호를 붙인 표를 100명 또는 1000명 단위로 팔고 추첨해 총매출액의 80%를 복채금으로 되돌려 주는 것이다. 현재 로또 복권도 삼분의 일 정도 돌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비교해보면 수익률이 상당히 높은 셈이다. 하지만 이외에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자본주의 발전이 더디었던 이유도 있었겠지만 신분제 사회라 복권의 평등주의적인 정서상 발전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1945년 일제가 군비마련을 위해 ‘승찰勝札’이란 이름으로 근대복권을 처음 발행했고 해방 이후인 1947년에는 대한올림픽위원회KOC가 올림픽 후원권을 발행했다. 요즘 발행하는 로또 645방식은 해외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사용해온 방식이다.



지방의원을 로또로 뽑는다면?

현대사회에서 복권은 ‘요행증후군’의 반영이기도 하다. 실질적으로 개인의 진보가 불가능한 사회 상황이 나타난 것이다. 복권의 구입자는 대부분 서민이어서 공익보다는 ‘소득의 역진성’과 ‘이중조세’만 야기한다는 비판이 많다. 얼마 전 미국에서 1400만 달러의 복권에 당첨된 사람이 10만 달러씩 세 군데의 교회와 NGO에 기부를 했는데 그 중 구세군에서는 “도박과 관련된 돈을 받을 수 없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구세군 측은 “평소 도박으로 거리에 나앉은 사람들을 상담해왔는데 이 돈을 받게 되면 한입으로 두말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참으로 본받을 만한 모습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23종의 복권이 발행되고 있으며 수백억 원이 넘는 상금을 걸고 있다. 그 돈은 서민의 주머니에서 나온다. 그런데 그것을 모두 정부가 진행한다. 필요성도 의심스럽지만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너무 과하다.

아무리 정부가 복권의 수익금으로 공공사업을 한다고 하지만 굳이 가난한 사람들의 돈을 모아서 시행해야 할 이유는 없다. 혹시 관료들의 영역을 확장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만 생긴다. 이런 심각한 현실에 대해 정치인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정치인들을 아예 로또로 뽑아버린다고 하면 어떻게 될지 매우 궁금하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상상이지만 아주 작은 지역에서는 한번 생각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우리의 지방자치가 그 정도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전제될 것이 있다. 바로 정치판을 ‘이권의 로또’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먼저 걸러내는 깨어 있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투표이고, 평상시의 변함없는 관심이다. 그러면 정치를 ‘명예의 로또’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그래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때는 더 이상 도박이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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