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6년 03월 2006-03-01   1166

물이 봄을 알리네

입춘 지나 정월대보름을 지나니 봄이 멀지 않았구나. 대동강 물이 풀리는 우수가 오고,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경칩이 온다. 그로부터 보름이 지나면 춘분이라. 계절은 갈수록 봄이로세.

봄은 바람을 타고 오는가.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김동환은 ‘산 너머 남촌에는’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민족을 배신한 친일시인으로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처벌받았으며, 그 뒤 납북되어 생사조차 알려지지 않은 가련한 삶. 그러나 27세 되던 1927년에 발표한 ‘산 너머 남촌에는’은 봄을 노래한 잔잔한 시로 여전히 애송된다. 1965년에는 박재란의 가요로, 다시 1975년에는 엄정행의 가곡으로 널리 불렸다.

사실 봄은 물을 타고 오지 않는가. 조선 때의 ‘유산가’는 봄 산의 정취를 “층암 절벽상(層岩絶壁上)의 폭포수(瀑布水)는 콸콸, 수정렴(水晶簾) 드리운 듯, 이 골 물이 주루루룩, 저 골 물이 쏴쏴, 열에 열 골 물이 한데 합수(合水)하여 천방져 지방져 소쿠라지고 펑퍼져”라고 읊었다. 겨우내 높다란 빙벽으로 얼어 있던 강촌의 구곡폭포가 어느 날 문득 콸콸 쏴쏴 맑은 물이 쏟아지는 수정렴으로 변한다. 봄은 이렇게 물을 타고 온다.

물은 생명이다. 1932년 발표한 좪인간의 대지좫에서 생떽쥐베리는 이렇게 썼다. 사하라에 추락해서 갈증으로 죽어가던 생떽쥐베리는 베두인이 물을 입에 조금씩 흘려 먹여줘서 겨우 살아났다. ‘물은 생명이다’는 말에는 당시의 무서움, 그리고 베두인에 대한 고마움이 절절히 담겨 있다. 정말 그렇다. 현대 과학이 밝혀주었듯이, 모든 생명은 물에서 만들어졌다. 분명히 물은 생명의 원천이니, 그냥 생명이라고 해도 좋으리.

봄을 만물이 소생하는 생명의 계절로 만드는 것은 물의 힘이다. 햇볕을 쬐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땅 속에 얼어 있던 물기가 녹기 시작한다. 그렇게 돌같이 딱딱하게 얼었던 흙이 푸들푸들하게 녹으면서 파릇파릇 새싹이 돋기 시작한다. 이윽고 생명활동을 멈추고 죽은 듯이 움츠리고 있던 나무들도 뿌리로 물기를 빨아들이면서 끝가지까지 봄물이 올라 생기를 띄게 된다. 머지 않아 온세상이 봄물에 젖어 은은히 빛나게 되느니.

오래 전에 성철스님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는 말씀으로 사람들을 깨우치고자 했다. 그 얼마 뒤 산악인이자 환경운동가인 이장오는 좪산은 산이 아니요 물은 물이 아니로다좫는 책을 내서 사람들을 깨우치고자 했다. 성철스님이 우리 안의 불성의 불변을 깨우쳐 견성의 길을 가르치고자 했다면, 이장오는 우리의 무지와 오만과 욕심이 세상을 파괴하고 있는 참담한 현실을 알리고자 했던 것.

오늘날 우리는 성철스님의 법어와 이장오의 보고에 모두 귀와 눈을 크게 열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나의 가치와 능력을 잘 알아야 ‘웰빙’에 이를 수 있고, 또한 나를 둘러싼 자연을 잘 지켜야 ‘웰빙’을 이룰 수 있으리니. 서로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것은 사람 사이의 관계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아닌 모든 존재 사이의 관계에도 해당될 터. 세상 만물 사이를 끝없이 돌면서 생명을 기르는 물의 가르침에 푹 젖어 보고 싶네.

홍성태 「참여사회」 편집위원장, 상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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