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6년 03월 2006-03-01   1049

한미자유무역협정, 섣부른 OECD 가입 꼴 피하려면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체결 협상에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까지 올해 상황도 10년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할 때 못지 않다. 돌아가는 모양새는 지금이 오히려 더 치명적인 상황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때와 지금의 가장 큰 차이는 미국과 유럽연합 등 거대 제국 및 유사제국이 개발도상국의 반발 속에서 지지부진한 다자협상의 교착상태를 양자협상을 통해 돌파하기 위해 앞다퉈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한미자유무역협정 협상의 배경은 경제적 동기보다는 정치적 동기(이를테면 북한 위폐 문제로 6자회담을 망치고 있는 미국 달래기)가 몇 배로 강한 인상을 주고 있다.

경제적 동기는 아무리 후하게 점수를 주려고 해도 좀처럼 발견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자동차와 전자제품의 수출 급증은 신화에 불과하다. “미국 자동차 수입관세가 2.5%에 그쳐 수출 증가 효과는 미미하고, 이미 한국 업체들은 미국 현지 생산과 우회수출 등으로 무관세 효과를 보고 있다”는 언론 보도만 봐도 그렇다.

값싼 수입품이 들어와야 물가도 안정되고 소비자 후생도 높아진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미국 소비재의 대부분이 이미 중국, 동남아 등지에서 생산돼 관세인하와 물가 하락 효과가 없다”는 설득력 있는 반론에 부닥친다.

예상되는 피해는 분명하다. 세계무역기구가 벌이는 ‘도하개발의제’ 다자간 협상의 농산물 분야에서 미국과 한국은 상극이다.

우리나라는 농산물에 일정 수준 이상으로 관세를 매길 수 없도록 하자는 이른바 ‘관세상한선’ 제도 도입에 반대하는 반면, 미국은 찬성한다. 미국이 요구하는 농산물 관세 인하 폭은 농산물 수출국 중에서도 가장 크다. 미국은 ‘민감 품목’을 전체 품목의 1%로 국한하자고 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10% 이상으로 하자고 요구한다.

민감 품목은 한 나라의 농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수입이 증가할 경우 피해를 볼 위험이 커 관세인하의 예외로 취급하는 농산물이다.

스크린쿼터(국산영화 의무상영)도 그렇다. 2002년 제작된 국산영화는 78편이다. 반면 수입영화는 256편으로 국산영화의 3배가 넘는다.

이런 상황에서 스크린쿼터 축소는 국산영화 제작의 급감을 초래할 게 분명하다. 자국산영화, 수입영화가 각각 293편, 347편으로 엇비슷한 수준인 일본 정도라면 스크린쿼터 축소를 논의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금융, 보험, 통신, 의료, 법률, 회계 등은 한미자유무역협정으로 국내법과 제도가 뿌리째 흔들리게 될 분야들이다.

스크린쿼터 축소는, 방송법에 규정된 지상파 및 케이블방송의 국산 프로그램 의무상영 비율을 축소하거나 폐지해야 한다는 미국의 요구로 이어질 게 분명하다. 미국은 외국방송 재송신에 대한 상한선 규정을 없애라고 한다.

지상파 방송에 대한 방송광고대행 독점으로 지역방송 종교방송 및 신문 등 인쇄 출판매체들이 균형발전 할 수 있는 순기능을 해온 한국방송광고공사 역시 아무런 보완장치 없이 해체될 가능성이 높다. 이 모든 것이 지금까지 미국무역대표부(USTR)의 줄기찬 요구사항이었다.

의료 분야에서 미국의 요구는 한마디로 의약품의 지적재산권 공고화와 높은 약값의 유지로 모아진다. 전국경제인연합회조차 지난 1월 ‘한미자유무역협정 쟁점사항과 대응과제’에서 “보건복지부가 건강보험 재정적자에 대응하기 위해 2002년부터 추진중인 약제비 절감방안과 관련, 투명성에 미국이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래에셋증권의 1월 23일 보고서는 (미국의 요구로 변화가 예상되는 분야로) △건강보험 약가 산정방식 △약가 재평가, 대체조제, 참조가격제 등 현재 시행되거나 추진 중인 제도에 대한 제동 △의약품 허가·유통 관련 규정 등을 꼽고 있다. 국내의 광범위한 의약품 소비자 후생이 한미자유무역협정 체결로 인해 나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실제로, 미국은 싱가포르와 맺은 자유무역협정에서 지적재산권 보호기간을 20년(세계무역기구 기준)에서 50년으로 늘렸다.

미국-오스트레일리아 자유무역협정에서는 호주 국민들이 중요한 의약품에 값싸게 접근할 수 있도록 호주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는 제도인 ‘의료급여제도’를 무역장벽으로 간주했다. 이로써 미국 의약업체들이 언제든 호주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 수 있게 됐다.

의약품 관련 미국의 요구는 △스크린쿼터(국산영화 의무상영일수) 축소 △미국산 쇠고기 금수 조처 해제 △미국산 자동차 배기가스 기준 완화와 함께 한미자유무역협정 추진의 선결과제였다.

그런데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은 지난 1월 26일 스크린쿼터 축소를 발표하며 “(나머지 선결과제들도) 이미 해결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어떻게 해결됐는지는 오리무중이다.

FTA 조항의 공개와 검증 필수

미국은 통상 분쟁에 대해 세계무역기구의 분쟁해결 절차가 아니라 양자간 별도 해결절차를 두자고 양자 FTA 협상에서 주장해 이를 관철시켰다.

미국이 입김을 강하게 불어넣을 수 있는 세계은행 산하 투자분쟁해결국제센터나 유엔 산하 국제무역법위원회가 대표적인 별도 절차다.

세계무역기구 분쟁해결기구는 강대국을 법정으로 데려가 나름의 공정한 판결을 받을 수 있는 수단이었고, 한국은 그 혜택을 보고 있는 대표적인 나라다.

섣부른 OECD 가입과 이에 따른 자본시장 개방이 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사태를 낳았다면, 정치적 동기가 강한 한미자유무역협정 체결 협상의 결과는 무엇일까. 정부는 과연 협상에서 쏟아지는 미국의 요구를 감당할 수 있을까.

재앙을 막는 유일한 예방법은 협상을 통해 마련되는 한미자유무역협정의 조항 한 글자, 한 글자가 사전에 공개되고 검증되는 것이다.

조준상 한겨레 기자/전국언론노조 민주언론실천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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